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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기대 Anticipation of a Contingency | ARTL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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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한 바이오 기업이 수천 년 전에 멸종된 메머드를 복원하겠단 계획을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의 특이성은 쥬라기 공원식의 낡은 상상력보다는 그 목적의 참신함에서 비롯한다.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 메머드의 서식지를 조성해, 이로 하여금 초목 생태계를 되살려 기후위기를 극복하게끔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떠오르는 일련의 의문들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어쨌거나 그 기업은 이 계획으로 이미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 받았다고 하니, 어쩌면 몇 년 내에 털 달린 코끼리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현재로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실상 단 한 가지 뿐이다.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하나의 언설이, 이 쉽사리 납득가지 않는 부활을 합리화시키고 세속화시킨다는 것. 대체 무엇이 이 기적을 바라게 하는가. 

그 힌트는 이 프로젝트의 보도자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메머드를 되살리기 위해, 영구동토에서 발견되는 메머드 사체의 DNA를 추출해 아시아 코끼리의 생식세포와 결합시켜 인공자궁을 통해 이를 잉태시키겠다는, 그 매끈한 설명에서 말이다. 이 얼토당토않은 계획이 그럴싸해보이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그와 같은 “복구가능”의 감각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라지거나 변형된 무언가를 되살리는 일에 이미 숙달되어 있다. 말하자면, 가령, ‘CTRL+Z’ 같은 것. 클라우드 컴퓨팅이 대중화된 이후 실수로 파일을 날리는 일 따윈 점점 줄어들고, 아무리 스마트폰을 초기화한대도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삭제된 대화는 복구가능하다. 온라인에서 잊힐 권리는 언제나 임시적으로만 주장되며, 온전히 죽는 게임 캐릭터 또한 존재하지 않고, 지나간 타임라인은 언제든 편집가능하다. 구겨진 차체는 말끔히 펴지고 피부는 재생되며 치아는 표백된다. 막대한 자본이 투여된 장르물에서 세계관이 확장될 때마다 가장 먼저 번복되는 것은 대량의 죽음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앞서, 코로나가 종식되면 우리의 일상이 회복될 것이란 어떤 믿음, 섣불리 구체화된 적 없는 기대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이처럼 복구할/될 수 있다는 감각으로 충만한 일상 속을 살고 있다. 그러니 안전하게 저장된 파일을 열듯 얼음 속에 고이 보관된 DNA를 불러내어 망가진 세계를 원상복구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또한 일견 ‘가능’할 성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각은 애초에 불순하다. ‘되살리기’의 감각은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고 저지른 죄를 무마하며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 있길 바라는 욕망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메머드가 되살아나고 다시 번성한다고 한들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지구가 온전하게 리로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함께, 우리가 없던 시간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따라서 기술을 통해 이 감각을 충족시키는 것은 세련된 회피전략에 다름 아니다.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복구된 것 또한 없다. 언젠가는 다 되돌릴 수 있을거란 주입된 감각 속에서 문제의 해결은 끊임없이 유예된다. 그리고 이는 제국주의 역사관에 의해 면밀하게 검토된다. 과거를 취사선택하여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결정 짓는 선형적인 서술 속에서 지배계급-남성들은 역사의 주체로서 이 세계의 시공간을 자신들의 ‘의지’ 아래 복속시킨다. 그들에게 있어 역사의 재서술이란, 억압되고 누락된 목소리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미 파괴된 것을 자신들의 권능으로 부활시켜 마치 없던 일처럼 만들 수 있다는 집요한 프로파간다인 것이다. 회복될 수 없는 것은 회복할 수 없다. 이 간명한 사실을 수용하는 것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움켜쥐고 있던) ‘시간’이라는 패권을 놓아버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기실 아무도 모르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절망할 참이라는 사실 말이다. 복구가능하다는 믿음에 매달릴수록 이 사실은 더욱 명백해보인다. 따라서 지배자들이 제 스스로 역사를 포기하길 기다리느니, 그 무능이 이미 까발려졌음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주체를 발명해내는 것이 더욱 가능한 선택일지 모른다. 문제를 유예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고도화시켜온 그들의 되살리기 수법은 머잖아 더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이 전시는 사건의 흐름으로 정립되는 역사의 인과성을 폐기하고, 개인이 속수무책으로 맞닥뜨리는 현재적 우연성에 기댄다. 사회제도와 역사적 맥락의 틀 안에서 필연적인 결과를 상상하고 유의미한 대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예상 속에서 윤리적-미적 주체로서 자신의 의지를 행위로써 구현하는 것. 물론 이 태도는 어쩌면 엘리트주의적 접근이나 관조적인 시각쯤으로 비판 받을 수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예술로 하여금 매혹적인 환상-으로 가장한 착각-을 더이상 불러일으키지 않게 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다시 말해, 오로지 우연에 기댄다는 것은, 상실된 아름다움을 회복할 수 있으며 역사의 반복성이 우리를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기대를 접는 일이다. 지금 여기 기댈 것은 마주치는 개인들 뿐이다. 그리고 이는 서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곁을 발견하는 생동일지 모른다. 아무 것도 되살아나지 않는 세상에서 새롭게 살아가기. 그러면 어떤 우연이 일어날지 이 전시는 기대한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비평 라운드업
일정: 11월 4일 금요일 오후 2시 (비공개) 
참여 비평가: 이연숙, 윤원화, 이여로, 김얼터 
www.addingpages.com 웹사이트와 도록을 통해 11월 초 비평문 공개 예정  
내용: 동시대 기획 전시가 조망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비평 라운드업은, 전시라는 하나의 현장 혹은 사건을 여러 시선이 함께 구성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시도이다. 다시 말해, 감상될 수 있는 완결한 대상이라기보다는, 감상으로 비로소 구성되는 전시를 상상하면서, 비평가들은 전시 주제 자체가 아닌 전시 테마를 염두에 둔 비평글을 전시 웹사이트를 통해 관객들에게 공개/공유할 예정이다. 


참여작가: 신민, 시린 세노, 이민지, 장서영, 노예주
전시기획: 조은비 (독립 큐레이터) 
공간 디자인  테크니션: 권동현 
그래픽 디자인: 박연주 
주최: d/p 
주관: 새서울기획, 소환사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메세나협회, 우리들의낙원상가
 전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2년도 시각예술창작산실 우수전시 선정작입니다.
  Accepted  2022-10-14 09:35

*This program is subject to change by the Organizer's reasons, so please refer to the website or the Organizer's notice for more information.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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