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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의 몸에서 파편 너머로: 개인전 《파츠》를 통해 돌아본 2019-2020 작가 황수연의 행보 | ARTLECTURE

형식의 몸에서 파편 너머로: 개인전 《파츠》를 통해 돌아본 2019-2020 작가 황수연의 행보


/Insight/
by 주예린
형식의 몸에서 파편 너머로: 개인전 《파츠》를 통해 돌아본 2019-2020 작가 황수연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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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1/14일 학고재 디자인 스페이스에서는 황수연 개인전 《파츠》가 막을 올렸다. 3칸 남짓의 작은 한옥 지붕 아래 열린 개인전은 작가의 최근 작업변화를 집약하는 전시였다. 재료가 갖는 물성과 형식에 대한 관심은 황수연 작업의 전 과정을 관통한다. 《파츠》는 작가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인 ‘종이 조각’에서 출발해 2020년 누크 갤러리에서 공개한 ‘그림 조각’, 그리고 파츠에서 공개한 ‘홀로그램 종이’ 조각 작업까지 오며 일어난 ‘물성의 변화’를 한눈에 보인다. 이전 행보와 함께 작가의 이전 작업의 소통 방식을 짚으며, 처음 선보인 ‘홀로그램 종이 조각’ 속 조형요소 변화에 집중하려 한다. 작업 재료가 변함에 따라 작가가 재료에 ‘몸’을 부여하고 이를 조각으로 옮긴 방식에 주목할 것이다. 이후 전시를 통해 꾸준히 변화를 보인 황수연 작업의 맥을 짚으며 마무리하려 한다.

물성이 변한 자리에 들어서는 조각의

오랫동안 재료를 이해하고 재료의 성질을 바꾸는 일은 황수연 초기 작업에서부터 발아한 관심이다. 작가는 재료가 가진 기존의 성질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재료를 손질했다. 2007, 2008년 두 번에 걸쳐 제작한 A4 드로잉에서는 국제 표준 규격의 A4용지를 새까맣게 칠해 종이의 질량을 바꿨고, 더 단단한(2014-2016)에서는 얇고 가벼운 알루미늄 호일을 뭉치고 망치질해 묵직한 덩어리로 바꿨다.(1) 반복적인 행위를 가하며 재료가 변하는 과정은 재료를 겪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겪으며 관계를 다져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황수연이 갖는 형식적인 관심은 재료에 관한 이성적인 실험이라기보다는, 재료와 호흡하고 겨루는 과정에 가깝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고, 작가는 재료의 성격이 변한 자리에 을 부여한다. 무게와 질량이 변하고, 취약한 재료가 단단해져 홀로 설 수 있게 되며 종이는 몸을 얻는다. 얇고 규정화된 용도의 종이가 그것만으로 조각이 되는 순간이다.

종이 조각 X(2019-2020)파츠의 첫 포문을 연다. 여느 종이 조각 시리즈처럼, X또한 모르고 멀찍이서 본다면 대리석 조각으로 보일지 모른다. 얇은 종이를 서로에게 기대고 접착해 세운 조각은 두꺼운 부피의 몸을 가진 꽤 전통적인 조각의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한편,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 다가갔을 때 조각은 달리 보이며, 두 가지 물성을 얻게 된다. 전통적인 조각 재료의 무늬와 부피를 취하되, 실제 종이의 결과 두께도 남겨두어 한 몸 안에 두 가지 물성이 양립하게 된다.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질량 사이에 간극이 발생한 것이다. 간극을 안은 몸은 여러 형상을 암시하지만, 관객 앞에 서며 결국 하나의 생명체로, 사람의 모습으로 발화한다. 작가의 종이 조각 시리즈는 명확한 대상을 지칭하지 않아도, 늘 휴먼 스케일에 가깝거나 나름의 표정을 짓고 있다. 종이 조각들은 결국 전시 허밍 헤드(2019)에서 얼굴의 자격을 부여받으며, 실제 사람을 조우하듯 배치되기도 했다.

 


황수연, X, 2019-2020, 종이에 인쇄, 접착제, 125(h)x77.5x70cm

출처: 학고재 디자인 스페이스 파츠(2020) 보도자료



황수연, () 나태(머리)/() 두 개의 몸과 두 개의 구름, 2019, 프린트, 스테인리스 스틸/프린트, , 62.5x52x60cm/173x130x207cm

출처: 두산갤러리 허밍 헤드(2019) 전시 전경



 

마이크로 소통: 종이를 매개로 좁혀가는 거리

작가에게 종이는 특별히 중요한 재료로, 스스로는 종이는 신체와 힘을 겨루는 재료(2)라고 표현한다. 작가는 종이와 겨루며 가까이서 바라본 종이의 성질에 주목했고, 종이의 세심한 결과 질기면서도 얇은 부피는 곧 전환의 대상이 되었다. 고유의 속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지만, 종이 위에 수차례 반복적인 칠을 올리며 결을 무마하고 제련한다. 흑연으로 단정히 매만진 종이는 특유의 흰색과 질감을 모두 잃으며 완전히 다른 겉모습을 얻게 된다. 다가가서 바라보아야 보이는 희미한 결과, 역설적이게도 분명히 살아있는 두께는 이 재료가 여전히 종이의 몸을 갖고 있음을 보인다. 종이 조각이 얇은 두께가 만든 역설적인 부피에 집중했다면, 이후 그림 조각에서 작가의 관심은 종이의 얇고 납작한 부피로 돌아온다.

그림 조각 녹는점연작 역시 까맣게 칠한 종이가 갖는 이중적 속성을 유지한다. 다만 종이 조각과 비교할 때 훨씬 납작해져 본연의 종이에 더 가까운 질량을 갖는다. 납작한 화면에 뾰족하고 둥근 조각들이 붙은 모습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시험한다. 이 지점에서 관람자는 뾰족한 형태를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고, 비로소 종이의 두께와 종이가 만들어내는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황수연의 그림 조각은 파편으로 한 화면을 만들어내며 미시적인 관찰(3)(4)을 요구한다. 멀리서 그림 같던 한편의 이미지가 다가갈수록 자기 질량을 드러내며 을 얻는 것이다. 이후 관람자를 가까이 끌어들이며 밀접한 소통을 요구하는 방식은 종이의 성격을 더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졌고, 전시에서 공개하는 온수연작의 종이는 질감과 색감 모두 변하며 황수연 특유의 마이크로 소통방식을 극대화한다.

 


황수연, 녹는점, 29.6x19cm, 2020, 흑연, 종이, 스테이플러

출처: 누크 갤러리 박광수 황수연 2인전 기대는 그림(2020) 작품이미지



황수연, 녹는점, 2021, 흑연, 종이, 53x67cm

출처: 학고재 디자인 스페이스 파츠(2020) 보도자료


 

파편의 부피와 질량의 극대화

녹는점의 조각이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를 위해 잘 정돈된 파편으로 존재했다면, 온수연작(2020) 속 조각은 제각기 개성이 더 두드러진다. 파편끼리의 연결이 더 느슨해지고, 조각마다 질감과 색감이 모두 달라지며 이제 완성된 하나의 이미지는 해체되고 없다. 납작하게 달라붙었던 파편 조각들은 가벼운 홀로그램 종이, 비닐종이로 돌아오며 고유의 무게와 질감을 되찾았다. 이전 녹는점의 조각이 관람 거리에 따라 철재에서 종이로 전환되는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면, 온수속 파편들은 무척 얇은 질감으로 반사되거나 투과하며 거리에 따라 왜곡되어 다른 몸을 갖는다. 더 가벼운 질량의 종이를 선택하며 이제 속성의 전환은 (작가가 직접 재료를 제련하던 것과 달리) 재료 자체의 성질에서 일어난다. 작가는 긴 시간을 들여 단색으로 종이를 다듬는 대신, 조각 간의 호흡을 고려하며 배치하는 추상 화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색상과 질량이 모두 다른 조각은 멀리서 반짝이는 추상 이미지처럼 보이고, 다가갈 때 개별 질감을 드러낸다. 단색의 깔끔한 이미지로 정돈되는 대신, 개별 파편들은 작가의 손을 타고 만들어진 종이 질감이 아닌 진짜 고유의 질감을 뿜어내게 된다. 종이 안에서도 더 얇은 종이가 흔들리는 모습은 파편의 외곽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녹는점에서 한 발 더 따라붙어 본 종이 내부에는 자잘한 점까지 보인다. 형태와 질감에서 비닐, 홀로그램 종이의 본질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단색으로 통일하며 재료의 속성을 전환하고, 다시 속성의 가장 정수를 들여다보게 하는 관찰방식은 물성 그 자체를 향한 미니멀리즘 조각가들의 흐름과도 유사하다.(5) 형식에 대한 관심이 다시 내부의 속성으로 이어지며, 황수연의 몸은 만들어진 몸에서 재료 그 자체로 돌아오게 된다.

 


황수연, 온수, 2020, 종이, 비닐, 30.5x24cm

출처: 학고재 디자인 스페이스 파츠(2020) 보도자료

 


황수연, 온수, 2020, 종이, 27x17cm

출처: 학고재 디자인 스페이스 파츠(2020) 보도자료


 

종이 조각 X(2019-2020)에서 출발해 흑연으로 제련한 그림 조각녹는점연작(2020)을 거쳐, 온수연작(2020)까지 바짝 붙으며 미시적인 관찰을 심화할 수 있었다. 형식에 대한 관심이 몸으로 발화하고, 다시 관심이 물성의 내부로 이어지며 몸은 곧 재료이자 조각이 되었다. 종이 재료의 속성은 밖에서 안으로 전환되며 작가의 형식과 물성에 관한 관심을 종합했다. 작가는 재료와 직접 조응하던 위치에서 한발 물러났고, 역으로 관람자는 가장 재료와 가까운 밀접한 곳까지 따라붙게 되었다. 내부가 곧 몸, 그리고 전체가 된 다음, 이후 작가의 관심이 향할 곳을 기대해볼 수 있다. 작업의 형태는 변해도 속성의 변화와 형식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차후 행보에서 이어질 것이다. 전시는 29일 막을 내리지만,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작가의 후속 작업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황수연

작가 황수연은 서울에 거주하며 서울을 기반으로 작업한다.

현재 전시(1,2월 중 전시)

(1/14-1/29) 학고재 디자인 스페이스 개인전 파츠

(1/5-2/6) 갤러리 스나크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

최근 2년 주요 전시

2020

(코로나 연기 개관학고재 디자인 스페이스 개인전 파츠

7인의 지식인웨스서울

2019

머테리얼 매니페스테이션두산갤러리 뉴욕

허밍 헤드두산갤러리서울

젊은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국립현대미술관과천

금호영아티스트: 16번의 태양과 69개의 눈금호미술관서울

참고사항

(1) 두산갤러리 뉴욕, 《Material Manifestation》 전시 보도자료, 뉴욕: 두산레지던시, 2019.

(2) 박미란 큐레이터, 《파츠》 전시 리플렛 “잠시, 부분이 전체가 된다” 중 “황수연과의 대화(2020년 11월 26일) 인용”, 서울: 학고재 디자인 스페이스, 2020.

(3) 박미란 큐레이터, 《파츠》 전시 리플렛 “잠시, 부분이 전체가 된다”, 서울: 학고재 디자인 스페이스, 2020.

(4) 본문 중 ‘미시적’이라는 표현은 리플렛 중 ‘(황수연의 조각은) 미시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언급한 것을 의역했습니다.

(5) 미니멀리스트들은 캔버스에서 회화적 속성을 모두 제거하고 그저 하나의 사물로 돌려놓았고, 이후 사물의 본질적 속성에 집중하며 사물에서 ‘물성’으로, 포스트-미니멀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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