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작가소개 시리즈>
한 계절에서 다음 계절에서 넘어갈 때 쯤,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 있다.
거리의 화단의 식물들은 대거로 정리되고 새로운 식물들이나 혹은 벽돌들이 그 자리를 다시 채운다.
각이 잡히고 깔끔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도시의 식물들, 하지만 그들 또한 하나의 생명이 아닐까?
작가 여인혁은 자연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작업으로 풀고 있다.
그 작업들 중 하나가 <도망치는 꽃>이다.
<도망치는 꽃 1세대, Arduino, aluminium frame, led, flower, 240 x 240 x 700, 2017>
도시 재생사업을 담당해오던 그는 출퇴근하며 거리를 바라보다가 풀나무 꽃들이 없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가로수 잔디가 밀려버리고 깔끔한 벽돌로 바뀌는 걸 보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이것이 과연 우리와 자연이 올바르게 관계를 맺는 방식인가?”
그의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인간으로부터 인위적으로 소비되고 버려지는 자연에게 자유를 주기 위하여 스스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식물을 만들었다. 그 결과물이 1세대인 <웃고 말하고 반짝이며 쏘다니는 꽃>이다.
하지만 그는 1세대를 거쳐 2세대, 3세대를 만드는 과정 중에서, 이 또한 자신의 인간중심의 사고로 자연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자연이 움직이고,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이, 이 자연 또한 ‘기계적으로 변하게’되면서 비자연적인 식물이 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는 이 작업을 조화를 사용하여 만들게 되었고, <도망치는 꽃>이라는 제목으로 짓기 시작하였다.
<도망치는 꽃 2세대, Arduino, aluminium frame, led, flower, 150 x 150 x 700, 2017>
그의 작업은 자연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하여 의문을 제시한다. 즉, 우리가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면 자연은 인위적이게 되고 비자연적으로 변하게 된다. 하지만 자연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공존해야 할 지구의 한 생명이다. 그것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핵심이다.
작가는 비단 이 작업을 통하여 자연과 우리와의 관계 뿐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는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역할’에 집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의 관계에 있어서 분리되어 있다는 에고적인 망상, 그리고 서로를 소비하고 이용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누군가보다 더 이득을 얻어야 하고, 이해관계가 더욱 커지고, 사회적 가면을 쓰게 된다. 어떠한 관계를 통제하고, 갑과 을의 관계를 논하는 등, 관계 자체가 작위적이고 인위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사람, 혹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과도 소중한 관계를 맺어가며 살아간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가 이용하거나 소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공생해야 할 ‘생명’ 이자 ‘존재’이다.
메리 올리버는 이러한 생명과 존재의 존엄성, 소중함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유로이 뛰어다니는 개들이 나무라면, 평생 목줄에 묶여 얌전히 걸어다니는 개들은 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개들은 인간의 소유물, 인생의 장식품밖에 안 된다. 그런 개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광대하고 고귀하고 신비한 세계를 상기시켜주지 못한다. 우리를 더 상냥하거나 다정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목줄에 묶이지 않은 개들만 그걸 해줄 수 있다. 그런 개들은 우리에게만 헌신하는 게 아니라 젖은 밤이나 달, 수풀의 토끼 냄새, 질주하는 제 몸에도 몰두할 때 하나의 시가 된다.
우리 개개인과 다른 모든 것 사이엔 끊어질 수 없는 무수한 연결 고리가 존재하고 우리의 존엄성과 기회들은 하나다. 머나 먼 하늘의 별과 우리 발치의 진흙은 한 가족이다.“
- 메리 올리버
<도망치는 꽃 3세대, Arduino, aluminium frame, led, flower, 140 x 140 x 700, 2018>
작가는 <도망치는 꽃>을 통하여 우리와 자연, 그리고 이 세상과 존재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하여 의문을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자연은 과연 외부 한정적으로, 분리된 개체로써 존재하는 것일까?
스스로를 대하는 것만큼 소중히 자연을 품는 마음을 갖는 것, 모든 존재와 함께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 더욱 아름다운 공생의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