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글: ‘시선의 방향’
1. 연극과 영화에서
2. 회화 평면에서
3. 사회에서 - 시선과 권력
작은 목소리로 낮게 웅성거리는 사람들, 겉옷과 가방을 조심스레 정리하는 바스락 소리, 몇 자리만을 남기고 가득 찬 좌석. 이곳은 연극이 시작하기 직전의 객석 한가운데이다. 편안한 자세를 찾아 바로 앉고 발치에 짐을 내려놓는다.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극의 시작을 기다리는 이 순간에 허겁지겁 들어와 허리를 숙이고 자리를 찾아 다른 이들이 무릎을 비켜준 틈으로 들어가 앉는 누군가가 있다. 마지막으로 급하게 들어온 이 사람은 본 공연이 시작되기 전 잠시간의 주인공이다. 커다란 공연장 공간에서 일제히 한 방향을 바라보고 앉은 많은 사람들 중 적어도 그 뒷줄에 앉은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인식한다.

이내 객석을 밝히던 조명이 꺼지고 막이 오른다. 극이 시작되면 관객들은 금세 자신의 존재를 잊고 다른 시공간으로 진입한다. 이제부터 이 극장 공간은 극장이 아니게 된다. 여기 있는 모두는 극중 인물들은 알아챌 수 없는 외부의 어딘가, 하지만 아주 가까이에서 극 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한다. 그러다 배우가 다가와 앞 열에 앉은 관객에게 말을 걸면 순간 모두가 자신의 여기와 지금을 인식한다. 동떨어진 두 세계가 급작스레 만난다. 연극이라는 약속으로 이곳은 이제부터 다른 세상이라고 치기로 했음에도 배우와 관객이 어쨌든 물리적으로 같은 시공간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교류가 가능해진다.
무대를 향하는 의자들이 계단식으로 놓인 극장과 비슷한 공간이지만 무대 대신 스크린이 있는 영화관에서는 어떨까? 영화배우들은 상영이 이루어지는 영화관에 있지 않다. 배우와 관객이 약속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먼 시공간에 위치한다. 대신에 관객들은 카메라를 통해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그 장면 안으로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은 채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영화관에서도 배우와 눈이 마주쳐 순간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연극과 다른 점은, 영화배우는 관객을 실제로 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이 글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뒷줄에 앉은 사람들은 높은 곳에, 앞줄에 앉은 사람들은 낮은 곳에 앉아 있어 일제히 앞쪽의 무대를 바라보도록 만들어진 이 공간에 아직 조명이 켜져 있어 스스로와 서로의 존재를 잊어버리기 전에는 누군가 일어서서 객석 사이로 지나가기만 해도 짧은 시간이나마 바라봄의 대상이 된다.
다음 편에서는 회화 평면에서의 시선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