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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 | ARTLECTURE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

/The Performance/
by 이채령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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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배경은 스페인 어느 시골 마을의 작은 집. 막 과부가 되어 집안에 군림하는 독재자 베르나르다 알바와 그의 다섯 딸, 미치광이 할머니 마리아 호세파, 그리고 하녀들이 무대에 선다. 두 번째 남편인 안토니오가 죽고 난 뒤 그의 상을 치르기 위해 베르나르다와 집안의 여자들은 검은 상복을 입고 햇빛을 피해 8년 동안 집안에 갇혀있어야 한다. 가부장적 가치관을 체화한 베르나르다의 폭압 아래, 다섯 자매들은 상복 밑으로 들끓는 욕망을 숨긴 채 어두운 미래만이 기다리는 현실에 절망하고, 유일하게 아버지가 다른 앙구스티아스가 동네의 젊은 청년 뻬뻬 로마노와 약혼하게 되면서 자매들의 욕망은 수면 위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스페인 극작가 로르카의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하여 2018년 초연을 올렸고이후 뜨거운 반응 아래 정동극장에서 재연으로 돌아온 작품남배우의 비중이 압도적인 뮤지컬 시장에서 보기 드물게 남성 배우 없이 오직 여성 배우들로만 구성되어 개막 전부터 큰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다.


배경은 스페인 어느 시골 마을의 작은 집막 과부가 되어 집안에 군림하는 독재자 베르나르다 알바와 그의 다섯 딸미치광이 할머니 마리아 호세파그리고 하녀들이 무대에 선다두 번째 남편인 안토니오가 죽고 난 뒤 그의 상을 치르기 위해 베르나르다와 집안의 여자들은 검은 상복을 입고 햇빛을 피해 8년 동안 집안에 갇혀있어야 한다가부장적 가치관을 체화한 베르나르다의 폭압 아래다섯 자매들은 상복 밑으로 들끓는 욕망을 숨긴 채 어두운 미래만이 기다리는 현실에 절망하고유일하게 아버지가 다른 앙구스티아스가 동네의 젊은 청년 뻬뻬 로마노와 약혼하게 되면서 자매들의 욕망은 수면 위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급기야 가장 젊고 아름다운 아델라가 뻬뻬와 사랑을 나누면서 금기를 깨고 셋째 마르띠리오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델라의 죄를 고발한다베르나르다는 총을 들고 나가 도망치는 뻬뻬를 향해 쏘고연인이 죽었다고 생각한 아델라는 굳게 닫힌 문을 넘어 목을 매달고 자살한다.

 

강렬한 텍스트와 세련된 연출을 바탕으로 좁은 무대 안을 플라멩코와 손뼉과 발 구르는 소리로 가득 채우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작품 자체만으로도 진한 인상을 남겼지만초연 이후 뮤지컬 어워드에서 3관왕에 오르고 열렬한 호평을 이끌어낸 것은 이 공연이 단순히 공연의 면에서 높은 퀄리티를 가진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자극적인 스토리만으로는 관객의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살아남기 힘들다가부장적 세계관을 응축시켜놓은 베르나르다 알바의 좁은 집 안에서 웅크린 다섯 자매의 욕망은 남성 배우 위주로 돌아가는 좁디좁은 뮤지컬 업계의 현실과 대응하여 배역을 입고 있는 배우들의 실제 몸으로 옮겨간다작은 무대에서 억눌린 자매들배우들의 목소리는 실제의 크고 작은 억압에 마주치는 객석의 여성 관객에게로 전이된다베르나르다의 집은 배우들의 집인 무대로우리들의 집인 실제 사회로 확장된다.


그래서 어찌 보면 그저 주말 아침드라마처럼 자극적이기만 한 시놉시스는 보여주는 것 이상을 보여준다이야기를 자극적인 스캔들로만혹은 자유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로만 읽기 힘든 이유는 사건과 인물이 대치하는 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작품의 문제의식을 관계성에 두고 본다면 주된 갈등은 뻬뻬를 중심으로 애정을 다투는 앙구스티아스와 아델라가 되어야겠지만오히려 미묘한 긴장 상태를 폭발시키는 트리거는 러브라인에서 멀찍이 떨어져있는 마르띠리오가 당기게 된다문제는 뻬뻬가 아니라 뻬뻬에 대한 욕망인 것이다아델라가 가장 강렬하고 눈에 띄는 배역이기는 하지만바로 이 지점에서 작품의 열쇠는 마르띠리오가 쥐고 있다.

 

남성을 향한 여성의 욕망은 이중적으로 해석된다첫째로는 창녀의 욕망이다여성의 노골적인 욕구는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강력한 금기다금기를 넘어가는 여성들은 무대 위에서도 보여주듯 미친 사람 취급을 받거나 비공식적인 사형이 선고된다사람들은 음란한 여성을 린치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이 지점에서 여성의 욕망은 자유의 문제와 직결 된다여성의 욕망과 주체성을 허용하지 않는 공동체 안에서 선택하여 욕망하는 행위는 권리를 행사할 자유를 확보하는 행위다.


둘째로는 자기 파괴적인 욕망이다여성의 욕망이 자유의 문제가 될 때억압자인 남성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은 억압당하는 자의 몸 안에서 괴리감을 야기한다자매들이 그들의 소망대로 베르나르다의 집을 탈출해 남성과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해도 그들은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결혼하여 남성과 맺어진다면 자매들에게는 또 다른 베르나르다의 집에 복속되는 미래만이 보장될 뿐이다나아가서피지배 계층의 욕망 구조는 억압 기제의 영향력 아래서 형성되어 무의식중에 작동한다그래서 우리의 욕망을 가만히 놔둔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때때로혹은 대부분의 경우에 억압적 기제를 스스로 수행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그래서 남성을 욕망하는 행위는 여성에게 위험할 지도 모른다.

 

마르띠리오는 여성을 위협하고 가두는 남성을남성과 관계 맺음으로써 지배당하는 위치로 전락하고 마는 여성의 위치를 두려워한다동시에 그의 인간적인 욕망은 어쩔 수 없이 그가 남성에게 끌리도록 만든다그래서 마르띠리오는 욕망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욕망을 금지시킨다이 금기는 숫말은 풀어두고 암말은 가두는’ 종류의 금기와 구분되는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반면 아델라는 자신의 욕망에 대한 이중의 검열을 허용하지 않는다복잡하게 검열된 마르띠리오의 조심스러운 욕망과는 달리아델라의 욕망은 오직 한 방향으로 질주하는 단순하고 원색적인 욕망이다그는 뻬뻬와의 결혼을 꿈꾸지도 않는다안전하고 단단하게 보이는 가정의 울타리를 뻬뻬와 함께 이루는 대신뻬뻬가 언니 앙구스티아스와 결혼하도록 두고 자신의 조그만 오두막에서 어떤 방해도 없이 온전히 사랑을 나누기만을 원한다그 어떤 자매도 아델라와 같은 상상을 해볼 수 없었다자매들의 욕망은 집에서 집으로만 이동한다여자의 욕망은 안전한 울타리 밖에서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딸들과 하녀들을 억누르고 가둬두는 베르나르다가 자신의 보호 아래서 모두가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이다마르띠리오를 비롯한 베르나르다의 딸들이 안전하게 머물고 있던 공간을 파괴하고 새로운 공간을 제시하는 아델라의 욕망은 집 안의 여자들을 불안에 떨게 한다.

잔뜩 당겨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실처럼감히 드러내지 않는 각자의 욕망이 중첩된 사이로 무대를 지배하는 팽팽한 긴장감은 의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암시된다가정에 군림했던 안토니오가 떠나고 무대에는 단 한 명의 남성도 등장하지 않지만 여성들은 모두 그를 애도하기 위한 검은 옷에 갇혀있다안토니오는 죽었지만 그의 존재는 그를 애도하는 행위를 통해 매 순간 상기되고영향력은 건재하다넘버 <바다로 갈 거야>에서 자매들에게 자유의 욕망을 전이시키고 삼켜왔던 목소리를 틔우게 하는 할머니 마리아 호세파만이 유일하게 흰 옷을 입고 있다는 점은 욕망하는 여성이 남성의 영향력(검은색)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동시에 광인의 색인 흰 색을 입고 베르나르다의 집에서 미치광이 노인네로 분류되어 감시와 감금을 당하는 처지는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준다아델라가 금기를 깨고 욕망을 실천할 때그 역시 마리아의 뒤를 이어 검은 옷에서 벗어나 흰 속옷만을 입고 무대를 누빈다그리하여 기어코 닫혀있던 문을 열고 팽팽한 실을 끊어버리고 만다.





마리아 호세파와 아델라의 역할은 확실히 중요하다마리아 호세파는 단순히 감초 역할을 수행하는 웃긴 미치광이가 아니고아델라는 단순히 언니의 남자와 통정한 스캔들의 주인공 따위가 아니다이 둘은 흰 옷으로 연결되어 있다그들의 말로(미치거나 죽거나역시 상징적이다억압에 저항하는 이들은 미친 채로-혹은 미쳤다고 여겨진 채로-살거나 죽을 수밖에 없다그래서 초연을 볼 때만 해도 나는 아델라를 투사로 읽었고 아델라의 욕망은 억압에 저항하는 숭고한 무엇으로 받아들여졌다.

 

마르띠리오가 아델라에게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비난할 때아델라는 마르띠리오를 대하는 평소의 기세등등한 태도와는 다르게 약간 주눅이 든 채로 변명하듯 대답한다. “그냥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이게 자신의 욕망을 설명하는 전부다욕망이 금지된 문 바깥을 향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아델라의 욕망과 의지에 고결한 변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사실 그건 그냥 어쩌다보니’ 벌어진 일이고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불씨가 번져버린 일일 것이다무대에서나 혹은 무대 밖에서까지등장인물 개개인의 행위를 역할과 기여도에 따라 해석하지 않아도 될 테다자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욕망에 이러 저러한 변명을 덧붙여 숭고하게 포장하는 일이야말로 금지된 것을 감히 바라는 아델라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투사가 아닌 아델라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대사에서 이어진다뻬뻬에 대한 아델라의 사랑을 마르띠리오가 격렬하게 비난하자아델라는 꽁꽁 숨겨왔던 마르띠리오의 본심을 꺼내 들춘다그 역시도 뻬뻬를 너무나 사랑해서 몰래 사진을 훔치고 그가 만든 사랑의 노래를 불러왔다는 것을그리고 수치심에 무너지는 마르띠리오를 향해 자신을 너무 원망하지 말라고 말한다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이 대사는 초연을 관람했던 당시의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과 굉장히 일맥상통하는 말이었다.

 

2015년 이후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일었던 여성주의 논의의 중심에서나는 비로소 사회 안의 여성으로서의 나의 위치를 고민했다피지배계층으로서의 나의 몸과 정신에 달라붙어 있던 억압을 느끼면서내가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굵직하고 노골적인 위협에 저항하게 될 때 쯤 나는 그것들이 내 생각보다 좀 더 촘촘하게 구성되어 내가 욕망하고 생각하는 모든 방식에 침투해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러자 사회는 지배와 피지배의 단순한 이분으로 분류되지 않게 되었다좀 더 단순하게 설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어릴 때 나는 분홍색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여자애의 전형적인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좀 더 커서 직접 번 돈으로 향수를 사 모으게 될 때쯤에는 그래도 꽃향기는 싫다고 했다나는 누군가가 정해놓은 틀에 들어가기 싫었기 때문에무작정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려고 했다분홍색이나 꽃향기를 좋아하고높은 목소리에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다는 게그런 전형적인 여자애가 되는 게 싫었다. 2018년 즈음에는 억압의 산물임을 알면서도 화장을 하지 않으면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외모 강박에 시달렸고치장하는 행위의 근간이 되는 나의 미감적 판단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다이것은 나를 위험하게 하는 것들이므로 분명히 피해야 했지만 나는 내가 그것들을 욕망한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이런 문제들을 인식했을 때 남성과의 연애는 큰 스트레스였지만 그래도 내가 욕망하는 것들과 욕망하는 방식을 내 몸에서 떼어낼 수는 없었다여성성으로 규정된 것들이 나를 틀 안에 욱여넣고 위험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바라면서도 미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뻬뻬를 두려워하면서도 가슴 깊이 원하고 있는 마르띠리오의 비밀스러운 욕망은 객석에 앉아있는 바로 나의 모습이다내가 나의 욕망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델라는 투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됐다그러나 규정된 모습의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이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그건 베르나르다의 집을 벗어나 다른 남성의 집에 복속되는 일이다억압하는 자의 검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검열하는 행위가 자유를 의미할 수는 없을 테다.

 

베르나르다의 집을 지배하는 규율은 하나다암말은 가두고 숫말은 풀어둔다마구간의 지붕 아래서 자란 다섯 자매의 모습은 그러나 천차만별이다마르띠리오나 아델라 외에도무기력하고 수동적으로 착취당하는 앙구스티아스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하고 하루 종일 잠에만 빠져드는 막달레나수줍고 정숙하지만 향기 없는 꽃이라는 강박에 시달리는 아멜리아 등은 억압이 일원화된 것이 아니라 다각적으로 세분화되어 우리를 피할 수 없게 몰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사회적 억압은 나의 개인적인 역사와 결합해 아주 오랜 시간동안 몸과 정신에 축적된다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몸에서 억압의 흔적을 완전히 축출해낼 수는 없다그러니 가능한 모든 모습이 억압의 산물이고우리는 자유를 위해 어떤 모습은 배제하고 다른 모습을 취할 수 없는 것이다그래서 어떤 모습이든지간에결국에는 어쩌다보니 뻬뻬를 사랑하게 되어 버렸더라도남성이 원하는 가장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가졌더라도그건 혐오할 만한 것이 될 수 없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기 때문나를내 욕망과 사고가 작동하는 방식을 원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역시 한편으로여성성이 죄가 없다는 말은 어쩌면 나이브한 말일지도 모른다성질들은 죄가 없을지라도 영향력은 강력하므로교육된 것들을 완전히 피할 수도그렇다고 순진하게 수행할 수만도 없다억압받는 나와 억압하는 타자그 사이 억압하는 나 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밀고 나가면 허무주의에 빠지게 될 것이다우리 안에서 억압의 고리를 풀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을까요새는 주체적이라는 단어가 둘 사이 괴리를 손쉽게 메우는 것 같다내가 알면서도 선택했다면 나는 속지 않은 것이고 피해자다운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모든 행위가 결국 주어진 것에 대한 응답이다우리의 사고방식조차도 외계의 영향력과 분리해낼 수는 없다같은 배경 하에 아델라가 자살하지 않을 다른 미래를 상상해낼 수는 없다이것은 개인이 극복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그러니 주체적으로 선택했다는 거짓말로 속여 넘길 필요는 없다억압은 실재하고존재하는 우리는 억압의 가능한 모든 형태일 뿐이기 때문에.

 

초연을 관람할 당시에 나름대로 내렸던 결론은지나치게 원망하지 않되 우리의 욕망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 있는지를 계속해서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베르나르다의 집과 뻬뻬의 집 사이에는 아델라의 오두막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거대한 구조에 우리 정신이 관성적으로 반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그러나 재연을 관람하면서는 생각이 달라졌다현실의 크고 작은 밀접한 압력들의 실질적인 접촉을 거부하기 위해서 결국은 현실의 성공적인 모델이 필요하다무대 위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여성들은 조리돌림을 당하고 미치고 감금당하고 결국에는 자살한다자기에 대한 욕망이 린치당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압력의 산물에 대한 욕망을 표면적으로만 긍정하자는 것이 표면적으로만 수용될 수 있을까현실적인 폭력과 관념적인 압력을 현실의 성공적인 모델 없이 조금이라도 거부하고우리의 교정된 욕망을 순진하게 긍정하면서도 사고에 여유를 둘 수 있을까?

 

그러면 정말로 우린 뭘 할 수 있을까편하고 단순한 말이지만결국엔 연대가 필요하다.


<연대>. 규정된 것들을 순진하게 긍정하지도다른 모델을 제시하며 검열 기제를 새로이 생성하지도 말고우리의 욕망과 현실의 모습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미워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면서 애정으로 감싸 안는 연대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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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아델라가 더 이상 죽지 않을 미래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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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채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