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미술은 현존하는 이미지에 대한 작가 자신의 주관적이고 탐미적인 해석의 결과물이다. 현실세계의 예술적 반영이기도 한 ‘구상’이라는 어원 자체는 ‘차용’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는데, 이는 실제하는 사물과 자연의 외모를 모방함이 필연적으로 수반됨에 연유한다§ 모방과 작가 창의성의 발현 정도가 사조 혹은 화풍의 하위 분류점이 되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지에 내재된 보편적 의미가 함께 전이되고, 작품에 대한 감상과 비평의 매개로 작용하게 된다.
이미지에는 역사적 사실, 사회 현상, 특정 시대상이 함축되어 있다. 일상 생활 혹은 매스미디어에서 수 없이 마주치는 이미지는 우리의 경험이나 주입된 지식에 의해 즉각적인 호불호와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각자의 주관적인 해석의 단초가 된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역사적 사건을 기초로 작업시 고증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은, 차용을 통해 일단 왜곡 가능성이 생겨난 이미지가 원천적으로 가진 보편적 의미와 상징성의 훼손을 최소화 함에 있다. 이는 저술가들이 ’주석’,‘각주’를 통해 인용한 자료의 학술적 가치를 담보하고 자신의 논증을 지지하는 장치로 활용하는 이유와도 비견된다. 차용된 이미지는 작가의 해석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때로는 원본과 아주 유사하게 혹은 원본의 물질적 특성이 대부분 해체된 최종 결과물로 재탄생한다. 작가의 개입과 이미지에 결부된 의미와 상징성을 전달하려는 의도의 농후 정도는, 작품이 일반적으로 감상되고 해석되는 방향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세 작가 모두 뚜렷이 식별 가능한 조형성에 기반을 둔 작품을 선보인다. 차용된
이미지의 나레이션과 구상성이 명확할 수록 주관성의 개입 여지는 줄어든다. 하지만이는 속박되어
있던 보편적 의미까지 함께 이식되었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세 작가 모두 크롭핑(Cropping), 물성의
변경, 혼성 및 단순화 등을 통해 언캐니(Uncanny)한 변곡을 가하고, 종국에는 무엇의 환영인지
불투명한, 역설적으로 해석의 자유가 충분히 부여되는 작품을 보여준다. 최초 창작시 품었을 조형
의지는 아직도 날선 기치로 단단하게 웅크리고 있지만, 그 미약한 존재감이 아주 가늘고 위태하게
작품을 관통하며 서려있다. 이는 작품의 함의를 확장시키는 장치로 작용함과 동시에, 이미지가 애초
기거하던 의미로부터의 속박을 무력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흥미롭게도 전시 공간의 시계 방향에 걸쳐, 각각의 작품들이 풍기는 즉흥적인 나레이션이 가늘면서도
풍성하게 연결되어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 – 1992)의Study after
Velázquez’s Portrait of Pope Innocent X(1953)를 연상케하는 김명진의‘사람의 아들’은 한지와
먹으로 어둡고 긴박하게 스테이징 되어있는데, 이웃해 있는 우정수의 연작에 서려있는 건조하면서도
동적인 긴장감은 기법적 장치를 통해 시간성을 가지면서 이를 자신의 드로잉 작업인 ‘폰타 델 코타
해전(2016)에 서사적으로 연결한다. 종국에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김남현의 ‘Single #8’은
작가의 주관성이 희석되면서 서사적으로 있음직한 사건의 결말로 조명되고, 관람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리면서 수 없이 많은 내밀한 사건 사고를 표상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해석되게 된다. -챕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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