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몸부름말 Single channel video installation_15min_dimension variable_HD_color_sound_2018
김현주, 내 귓속에 묻힌 묘지들 3-ch Videoinstallation_dimension variable, HD, color, sound, 2016-2018
작가노트
애도를 의미하는 'mourning'의 어원이 된 고대 독일어 ‘murnan’은 ‘슬프게 기억하다’라는 뜻이며, 다시 이 ‘murnan’의 뿌리가 되는 ‘mer-‘는 ‘기억하다’라는 의미를 가짐으로써 ‘memory’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애도의 차원들’_문강형준) 또 깊은 잠에서 아침에 일어난 상태를 나타내는 Good Morning에서 Morn-과 죽음에 대한 애도를 나타내는 Mourn-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어원에서 비롯되었다.
‘애도哀悼’는 상실과 부재에 대한 아픔, 슬픔을 뛰어넘어 타자를 기억하는 구체적 행동이자 몸짓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타자들을 산자의 몸 안으로 불러들여 내면화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또한 산 자의 기억으로부터 죽음을 추방함으로써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죽음과 공생하며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끈질긴 여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나의 작업적 애도는 온전한 애도가 아니며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애도哀悼연습’임에 틀림없다.
나는 근간 한국근현대사에서 소외되고 사라진 보통의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주목하며 그것과 관계한 장소들을 거닐었다. 논밭, 숲, 바다, 계곡에 여전히 방치된 죽음들, 폐허가 되거나 아스팔트로 뒤덮여진 변모한 땅의 모습은 권력으로부터 방치되고 밀려나 죽음마저도 소외돼버린 죽은 이들의 또 다른 몸이라 여겨졌다.
그들은 죽음으로써 사라진 것이 아닌 다른 모습의 ‘생존’으로 우리의 몸, 무의식 안에 남아 존재하는 건 아닐까? 산자는 흙과 물, 자연, 대기로 떠도는 그들의 죽음을 호흡하고 죽은 자는 산 자의 몸 안과 밖, 주변을 부유하며 떠돎의 상태로 생존하는 난민과도 같다.
억울하게 비명한 죽음들을 몸 안에 끌어들이는 동안 작업은 삶과 죽음, 현재와 과거, 의식과 무의식 등 대립된 것들을 연결하고 순환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자 했으며 일종의 영상굿을 통해 관객은 실체가 없는 빛으로 소환된 죽은 이들의 모습을 마주하여 애도에 동참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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