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코비치, 말코비치, 말코비치…”
영화 Being John Malkovich의 인물은 타인의 몸을 통해 자신을 다시 보게 되지만, 결국 자기 자신 속에 갇히고 만다. 반복되는 ‘되기’의 수행은 자아의 해방이라기보다는, 되지 못한 상태를 무한히 순환하는 장면으로 남는다. 황규민(b. 1992)의 이번 프로젝트는 되지 못한 채 반복되는 상태, 그 반복 속에서 다시 떠오르는 감정의 궤적에 대해 말한다. 아주 조용하게, 매일같이 반복되는 무언가로.
제목은 〈저 못느껴요, 잘〉.
처음엔 이 문장을 우연처럼 들었다. 말의 맥락보다는, 말의 결이 먼저 와 닿았다. 문법적으로는 ‘못 느껴요’가 맞겠지만, 작가는 그것을 한 덩어리로 붙여 썼고, 왼손으로, 붉은 펜으로, 어느 전단지에 적힌 슬로건처럼 눌러 적었다. 어딘가 어색한 그 조합이, 이번 프로젝트의 어조와 닮아 있었다. 굳이 고치지 않기로 했다. 그 어설픔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것이 그중 하나였다.
황규민은 종종 작업에 대한 불능감을 말해왔다.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잘 감각되지 않고, 감정은 멀리 있고,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상태. 작업이 반복되는 만큼 자기 자신이 지워지는 것 같다고도 했다. 어느 날 그는 실용적인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다소 뜬금없게 들릴 수도 있는 그 바람은, 오히려 지금까지의 작업과 감각의 흐름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실용이라는 말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니까. 누군가에게 실용이란 물건이고, 누군가에겐 기능이고, 누군가에겐 감정이 된다. 그중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고 느낀 그는, 어쩌면 단지 무언가를 만든다는 행위 자체에 ‘실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조립이라는 형식.
완성된 무언가가 아니라, 조립이라는 행위 자체. 결과가 아니라 구조. 반복과 분해, 설명과 생략.
이케아라는 브랜드에서 빌려온 건 가구가 아니라, 조립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 자체였다.
그러나 이 구조는 황규민의 프로젝트 안에서 방향을 잃는다. 그는 조립을 반복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을 향하는지는 명확하지 않고, 감정은 어느 단계에도 정확히 붙지 않는다. 완성은 조건이 아니라, 회피할 수 있는 선택지처럼 남는다.
황규민은 매일 UNOCCUPIED GAPS에 출근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서 각재를 조립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짧은 문장을 덧붙인다. 그 문장은 일기이기도 하고, 설명서이기도 하다. 설명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설명하지 않는 언어. 이 모든 조각들은 결국 하나의 설명서로 편집될 예정이다. 하지만 설명서가 결과물을 안내하는 대신, 오히려 이 프로젝트의 유일한 결과물이 된다. 조립은 과정이고, 설명은 반복의 흔적이다. 그리하여 설명하지 않는 설명서와 방향이 없는 구조물은 서로를 기묘하게 지지하게 된다.
이미지에 대한 집착도 여전히 그의 감각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황규민은 강박적으로 스케치하고, 이미지를 수집하며, 레퍼런스를 모은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은 작업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감각은 쌓이지만, 구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비효율은 작가 스스로에게도 불능감을 남기곤 한다. 그렇기에 “실용적인 무언가”에 대한 언급은,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는 감정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이번 프로젝트는 결과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설명서는 설명이 아니며, 조립은 구성된 조형이기보다 하루하루의 감정의 증거다.
설치물로는 붉은 각재가 세워진다. 직립된 기둥들, 서툰 결속, 그날그날 다른 방식의 연결.
포스터 속엔 작가의 등과 왼손 글씨, 붉은 색조와 노이즈가 담겨 있다.
누군가는 이 포스터를 보고 “불감증이냐”고 물었고, 둘은 웃었다.
불감증이든, 불능감이든. 결국 이 프로젝트는 감각되지 않는 상태에 머무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감각의 방식으로 삼으려는 실험이다.
이 프로젝트는 ‘되기’보다 ‘있기’에 가깝다.
작가 황규민은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설명하지 못하고, 감정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매일 공간에 도착해, 조립하고, 분해하고, 기록하고, 반복한다.
그 반복이 어디에 닿을 거라는 믿음보다, 반복 그 자체를 자기로 여기는 태도에 가깝다.
Being Hwang Kyumin.
말코비치, 말코비치, 말코비치.
황규민, 황규민, 황규민.
정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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