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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고 미친 짓이 미술관을 점령하다 | ARTLECTURE

기이하고 미친 짓이 미술관을 점령하다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展] -

/Art & Preview/
by 최선
기이하고 미친 짓이 미술관을 점령하다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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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작년 11월부터 「해프닝·쇼」라는 기이하고 미친 짓 같은 일을 거듭해오는 청년작가연합회는 이번이 네 번째. 『비닐우상의 향연』 『화투놀이』 등에 이어 이번에는 「누드」에까지 이른 것이다.”
- 극을 걷는 전위미술|서울의 「해프닝·쇼」, 『중앙일보』, 1968.06.01.

한때 기이하고 미친 짓이라 불리던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미술 작품이 50년만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점령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주최한 이번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展]에서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정강자, 최병소 등 29명의 작가가 제작한 99점의 작품과 31점의 아카이브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 실험미술이 태동될 당시, 국제 사회는 6.8혁명, 반전 평화운동, 페미니즘, 제 3세계 문제 등으로 뜨거운 인식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한국은 차가운 남북 분단의 이념 대립 속에서, 개발독재 정권의 압축적 근대화와 산업화로 인한 급속한 사회 변동을 맞이하고 있었다. 당시 젊은 작가들은 4월 혁명의 세대로서 예술과 사회의 소통을 주장하며, 보수화된 기성세대의 형식주의 모더니즘에 반발했다. 당시 한국 미술계의 흐름은 앵포르멜에서 단색화로 흘러가면서 혁신을 부르짖던 화가들은 기존 화단에 흡수되었다. 이때 단색화와 공존했던 1960년대 탈평면의 움직임은 반 미학과 탈 매체를 선언하는 전위적 실험미술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들은 그룹과 혹은 개인으로 기존의 회화, 조각의 영역을 벗어나 오브제와 설치, 해프닝, 이벤트와 영화, 비디오를 포함한 다양한 새 매체들을 ‘실험미술’의 이름으로 포괄하며, 역동적인 사회 현상을 반영하였다. 이 새로운 흐름은 «청년작가연립전»(1967)에서 촉발되고 확산되었으며, 1970년대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에서 집결되고 본격화되었다. 이후 ‘제 4집단’, ‘ST’, «대구현대미술제» 등에서 다양한 면모를 보이며, 한국의 전위미술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AG전 포스터, 1971, 송번수

  


1960-70년대 전위적이라고 불렸던 이들의 작품과 퍼포먼스는 2023년 미술관에서 마주해도 50년 전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어색함이 없었다. AG(한국아방그르드 협회)전 당시 실제로 사용했던 포스터를 보며 우스갯소리로 성수 편집샵에 걸려있어도 이상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들의 작품들은 오늘날 현대미술이라 불리는 작품보다 오히려 더 성숙하고 예술에 대한 고민이 더 돋보이기까지 했다.



<신문 1974.6.1. 이후>, 성능경


신문을 자르는 성능경



1973년부터 전위미술단체 ST(Space&Time)에서 활동했던 성능경은 197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제3회 ST전에서 한 달 동안 특정 신문을 소재로 이벤트 행위를 실행한다. 전시장 벽면에 네 개의 흰색 패널을 붙이고, 그 앞의 공간에 파란색과 투명한 색의 아크릴 박스를 설치한 그는 매일 전시장에 나와 당일의 신문을 각각의 패널에 붙였다. 그리고 신문사의 제호와 광고, 만화 등을 제외한 모든 기사를 면도칼로 오려냈다. 오려낸 기사들은 앞에 마련된 파란색 아크릴 상자에 버려지고, 이렇게 텍스트가 잘려 나간 신문은 앙상한 뼈 같은 형상으로 하루 동안 전시되다가 다음날 투


명한 상자로 모아졌다. 한 달 동안 행해진 이 퍼포먼스는 매일 신문을 읽고 자르는 단순하고 수행적인 행위를 통해 일상 속에 침투한 언론 검열과 탄압을 은유적으로 비판한 것이었다. 언론의 자유가 붕괴하고 정부의 감시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그는 작품으로 개별화된 저항을 표현했다. 그는 이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55년간 170여 차례의 퍼포먼스를 했다. 작품을 보며 이상하게도 50년 전보다 오늘이 더 떠올랐다. 50년 전 성능경의 작품의 의미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꽤나 씁쓸하다.



<질료(質料)Ⅰ>, 남상균



<소멸- 화랑내 술집>, 이강소

 


멀리서 보면 추상화 같기도 하고, 단색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남상균의 <질료Ⅰ>는 담배와 성냥개비로 채워진 작품이다. 이는 사회적 긴장감과 미술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던 1970년대, 암울한 시대를 불태우고 싶다는 분노 속에서 창작되었다. 대상이 불타고 남은 모습을 작품으로 남기고자 했던 작가는 일상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담배와 성냥개비를 질료로 선택했다. 하지만 많은 양의 담배가 필요했기 때문에 밤마다 청년들이 즐겨 찾던 음악 감상실을 돌아다니며, 재떨이에 버린 담배꽁초들을 모았다고 한다. 또 때로는 성냥을 몇 통씩 사서 불태우기도 하며 모은 질료들을 그는 아크릴 액자 통에 각각 나누어 차곡차곡 쌓았다. 노란색 담배 필터, 국산과 외제 담배들, 타다 만 성냥개비들은 통 안에서 한데 섞이며 예상치 못한 형상과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집적된 타버린 것들의 잔해는 당대의 허무함을 표현하는 작품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50년 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질료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며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래에서부터 점차 부패해 가는 담배꽁초와 성냥개비는 여전히 아크릴 액자 통에서 허무함을 외치고 있다.


1973년 6월 28일부터 일주일 간 서울 명동화랑에서 개인전을 연 이강소는 전시장 한쪽에 작은 선술집을 연출하는 해프닝을 기획한다. 그는 자신이 자주 방문했던 동네 술집에서 실제 손님들이 사용하던 탁자와 의자 같은 물품을 구입해 설치했다.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먹고 마실 안주와 막걸리도 제공하고, 메뉴가 적힌 입간판까지 설치했다. 그래서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전시장이 아닌 줄 알고 돌아갔다는 후문도 있다. 선술집과 같은 곳에서 예술가들과 관객들, 평론가들은 그저 손님이 되어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고,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대화를 나눴다. 이 방문객들이 평범한 삶에서 덧없는 순간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 이 작품의 진정한 주제였다. 이 장소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유신헌법이 시행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전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자유롭게 모여 떠들 수 있는 해방공간 같은 곳이기도 했다. 전시가 끝나고 남겨진 테이블에 남아있는 담배 자국, 냄비 열로 탄 자국, 푹 패인 구멍들은 그 때 전시장 한켠의 왁자지껄한 소음과 대화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우리는 또 다시 대 전환의 시대에 당도해 있다. 기후변화와 펜데믹, 거대 자본과 인공지능의 위기 속에 놓여있다. 우리는 이제 또 어떤 새로운 질서와 확장된 감성의 지평을 펼쳐나갈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자극의 역치가 너무나 높아진 세상이다.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도발적’, ‘기성세대에 반발’과 같은 말은 곧 저급하고 천박하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될 정도로 성숙한 표현으로 저항하거나 반발하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기성세대에 반발’하려면 오히려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런 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선언을 하기 위해 더 많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유한한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 가보지 않은 곳을 욕망하는 인간이 기어코 우주로 향하는 배를 만들었듯이, 우리 또한 새로운 ‘전위’를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곧 50년 전의 ‘젊은 작가’를 소환하는 목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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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선_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