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프랑스 퀴어 로맨스 영화로, 셀린 시아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감독은 오직 순수한 대화를 통해서 서서히 물들어가는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고, 상하관계가 없는 평등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결코 지속될 수 없는 사랑 이야기였기에 그녀들의 사랑이 어떻게 남아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고도 말했다.

여성 화가로 등장하는 마리안느는 백작 부인에게 엘로이즈의 결혼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엘로이즈는 원치 않는 결혼으로 인해 초상화의 모델이 되는 것을 거부해왔지만, 마리안느와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사랑에 빠지게 되어 모델에 응한다. 그녀들의 사랑은 불과 파도의 이미지로 표현되어 나타난다. 빨갛게 솟아오르는 불은 점점 타오르기 시작하는 사랑을 상징하고, 파도치는 바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용돌이로 요동치는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카메라는 그녀들의 동선을 계속해서 따라감으로써 감정의 결을 자연스레 한 단계씩 쌓아 올린다. 관객은 이러한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녀들의 사랑에 서서히 몰입한다. 처음 만나 어느새 사랑에 빠지게 된 모습은 어쩌면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녀들의 사랑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의상을 주목해보면 마리안느는 빨간색 옷을, 엘로이즈는 파란색, 초록색 옷을 주로 입고 등장한다. 대조되는 색상은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별을 뜻하는 게 아니었을까.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서로 곁에 있고 싶어 했지만 둘로 갈라서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후반부, 마리안느는 초상화 속에 그려진 엘로이즈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들고 있는 책 속에 적힌 28이라는 숫자를 보게 된다. 과거, 28페이지 속에 그림을 그려놓았던 기억을 회상하며 마리안느의 눈에는 투명한 눈물방울이 맺힌다. 28이라는 숫자는 바로 그녀들만의 잊지 못할 추억이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나도, 28이라는 숫자 안에 온기, 표정, 그리고 기억들은 모두 남아있는 것이기에.
마지막 장면,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발견하지만 엘로이즈는 마리안느를 발견하지 못한다. 마리안느의 시점으로 엘로이즈의 얼굴이 오래 찍히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는데, 첫눈에 그녀를 알아본 마리안느의 시점을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카메라 기법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는 마음, 그녀를 계속해서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눈빛이 의미 있다고 하듯, 백 마디 말 대신 한순간의 장면을 포착한 것이 깊은 여운으로 다가오지 않나 싶다.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보며, 머지않아 이별을 마주해야 하는 모습을 보며 낭만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졌다. 사랑 이야기를 선사하고 싶었던 감독의 마음처럼 우리는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타오르는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불과 물의 이미지, 다양한 카메라 기법을 통해 그녀들의 순수한 마음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어 이는 한편의 기억으로 남는다. 따뜻한 마음이 깃든 28페이지처럼 필자의 글도 숫자 28과 같이 독자에게 의미 있게 남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