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는 5월 1일부터 17일까지 새로운 시간이 흐르다: 대만 뉴웨이브의 1980년대와 그 유산을 개최합니다. 이번 기획전은 ‘하나가 아닌 여럿의 목소리’로 복원해 낸 풍경으로 대만 뉴웨이브를 조명하며, 1세대의 시기라 할 1980년대와 그 직접적 유산을 일구어 낸 15편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1980년대 모더니티의 한복판에 놓인 대만에서는 성장과 가족, 그리고 기억에 관한 시간과 감정을 유려한 내면성을 지닌, 훼손되지 않은 사실주의를 통해 그린 새로운 영화적 흐름이 등장했습니다. 이 흐름은 ‘대만 뉴웨이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대만 영화계를 순식간에 재창조한 젊은 영화인들의 물결은 20세기 후반 세계영화사에서 하나의 경이로운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그 시발점인 <광음적고사>는 1982년 중앙전영공사의 기획자•시나리오 작가 우녠전과 샤오예가 무명의 네 감독—타오더첸, 에드워드 양, 고이첸, 장이—에게 한 편씩 단편을 맡김으로써 탄생했습니다. 이듬해 허우샤오셴, 증주앙샹, 완롄의 <샌드위치맨>이 뒤따르며 새로운 물결은 하나의 운동으로 확산됩니다.
허우샤오센과 에드워드 양은 대만 뉴웨이브의 미학을 쌍두마차처럼 이끌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화의 호흡을 일구어 낸 두 감독이며, 이번 기획전의 중심에 자리합니다. 허우는 주로 과거로 시선을 향했는데, <동년왕사>에서는 감독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년의 성장과 주변의 가족사를 한 편의 수묵화처럼 펼쳐 보이며, 〈비정성시>는 대만 현대사의 가장 민감한 시기였던 2•28 사건을 한 가족의 이야기로 담담히 녹여 낸 걸작입니다. 한편, 양은 도시 근대화의 감정적 지형을 예민하게 포착한 감독으로, 〈타이페이 이야기>는 타이페이라는 도시와 그곳을 살아가는 커플의 존재론적 피로를 읽어 냅니다. 이 정교한 눈썰미는 〈공포분자>로 이어지며, 우연히 얽힌 인물들을 통해 도시의 파편화된 삶을 격변하는 시대의 불안 속으로 빨아들이는 시선을 선보입니다.
롱 테이크와 롱 숏은 대만 뉴웨이브를 상징하는 관조와 성찰의 언어로 회자되지만, 이 기획전은 친밀함의 응시 또한 그 집단적 감수성의 한 축이었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첸쿤허우는 이를 구현한 대가로서 뉴웨이브의 시각적 언어를 다듬은 인물입니다. <샤오피 이야기> <어린 아빠의 하늘> <가장 그리운 계절>은 유년기에서 청년기, 그리고 결혼이라는 주제로 이어지는 궤적을 그리며, 가족과 일상의 결을 세심하게 포착한 그의 대표작입니다. 반면, 왕툰은 역사를 서사화하는 데 천착하며, 대만인들에게 상흔으로 남은 ‘저개발의 기억’을 느린 호흡과 아이러니를 지닌 ‘대만 근대 3부작’의 미장센에 담아냅니다. <허수아비>는 태평양 전쟁 말기 농촌 공동체의 곤궁을 블랙 유머로 뒤집은 코미디이며, <돌아올 수 없는 언덕>은 일제 강점기 진과스 금광으로 흘러든 연약한 삶들의 좌절과 애환을 담아낸 역작입니다.
장이와 완롄은 <계미: 어느 여인의 일생>과 <유마채자>에서 대만 현대사의 격변을 관통하는 멜로드라마를 제각기 선보인 후, 대만 뉴웨이브의 미학적 폭을 가늠하게 해 주는 서로 다른 궤적으로 갈라졌습니다. 우선, 장이의 영화는 뉴웨이브 안에서 여성의 내면에 가장 오래 머무른 작품들로 기록됩니다. <나의 사랑>은 전통적 여성의 역할이 현대로의 이행기에서 감당해야 했던 진통을 속 깊은 결로 응시합니다. 한편, 완롄은 가장 정치적인 시선이 대만 뉴웨이브의 내면성과 만나는 지점을 보여 줍니다. 그는 <슈퍼 국민>(1985)을 만드는 과정에서 검열 통과를 위해 16개 장면을 잘라 내야 했던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10년 뒤의 <슈퍼 국민 코>는 백색 테러의 정치범이었던 노인이 처형된 동지의 묘소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통해 오래 미뤄 두었던 역사적 기억을 복원하는데, 그 응시는 분노하기보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으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돌이켜보면 1983년부터 1987년에 이르기까지 뉴웨이브의 대표적 감독들이 모두 그들의 상징적인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샤오피 이야기>로 뉴웨이브 성장담의 원형을 빚어낸 첸쿤허우, <유마채자>를 가장 서늘한 멜로드라마로 완성한 완롄, <동년왕사>를 통해 뉴웨이브의 톤과 스타일을 새롭게 정의하다시피 한 허우샤오셴, <타이페이 이야기>로 도시 영화를 세련된 언어로 편입시킨 에드워드 양, <계미: 어느 여인의 일생>이라는 농밀한 여성의 일대기를 개척한 장이까지. 이들 다섯 감독이 새로운 물결을 주도했고, 곧이어 왕툰이 <허수아비>로 합류하면서 본격적 흐름이 자리 잡게 됩니다.
어쩌면 대만 뉴웨이브가 우리에게 전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우리가 경험하며 지나왔음에도 미처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정을 섬세한 이미지와 언어로 구체화하여 보여 준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기획전을 통해 대만 뉴웨이브의 본령이 가장 빛나던 1980년대의 대만으로 여행을 떠나 보시길 바랍니다. /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박은지
☆Donation:
Gu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