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영화의 프린트 수가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사실과, 이러한 필름들이 사라지거나 훼손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할 때, 영화 제작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질산염 필름 사본이 존재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파올로 체르키 유세이, 『사일런트 시네마』
기념일은 종종 회고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5년이나 10년 단위의 '반듯한 숫자'들은 문화적 이정표로 작용하여 우리를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이끈다. 왜 이런 단순한 숫자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까? 어쩌면 그것은 시간의 추상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숫자들은 과거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안에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이 가득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과거를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되살리는 예술 형식 가운데 영화만큼 강력한 매체는 드물다.
'시네마, 100년 전'은 1925년에 개봉한 영화들을 조명하는 기획전이다. 정확히 100년 전, 1925년은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에 처음으로 공개 상영을 진행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는 일반적으로 영화 상영의 탄생으로 간주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그 사이 영화는 단순한 신기함을 넘어 대중 오락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점점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매주 약 4,500만 명이 극장을 찾았고, 화려한 무비 팰리스부터 소박한 지역 극장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즐겼다. 1925년은 흔히 '무성영화의 황금기'라 불리는 시기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이 해에는 무성영화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작품들이 다수 제작되었다. 동시에 이는 기술적 대전환의 직전이기도 했다. 단 2년 후, <재즈 싱어>의 개봉과 함께 동시녹음이 도입되며 영화 제작 방식이 완전히 변화하고, 무성영화 시대는 빠르게 저물게 된다. 요컨대, 1925년은 영화가 문화와 예술의 중심에서 놀라운 창조성과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100년 전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 세기가 지닌 시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영화들에 참여했던 배우, 감독, 심지어 그 당시 관객들조차 이제는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영화라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가 더욱 깊이 다가온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움직임, 곧 생명을 포착하여 보존하는 매체다. 우리가 지금도 이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단지 기술의 힘뿐 아니라, 예술의 생명력과 이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수많은 보존가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100년 전의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이 영화들은 생생한 기억을 넘어선 시대로부터 우리에게 말을 걸며, 덧없음과 영원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AI 생성 콘텐츠가 예술의 미래라는 도발적인 선언이 들려오는 이 낯선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옛날 영화 속에서 예술의 본질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들은 이미지 너머에 깃든 '영혼'을 일깨워 준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은 무성영화 시대의 놀라운 성취들을 대표한다. 찰리 채플린,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장 르누아르,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킹 비더, 르네 클레르, 버스터 키튼, 게오르그 빌헬름 파브스트와 같은 거장 감독들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코미디에서부터 호러, 멜로드라마, 전쟁, SF, 판타지, 웨스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이 영화들은 오늘날에도 그 예술성, 야망, 감정적 깊이로 관객을 놀라게 한다. 단순한 역사적 문서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예술로서의 영화. 100년이 지나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킨다.
모든 영화는 최신 디지털 복원 및 재구성판으로 상영되며, 그중 거의 절반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 본 기획전에서 상영되는 무성영화는 100년 전 공개된 작품들입니다. 촬영 기술의 특성상 프레임레이트가 일정하지 않아, 일부 장면에서는 화면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거나 인물의 동작이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필름의 손상으로 인해 화면 상태가 고르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 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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