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로창고극장의 재개관을 기념하여 열리는 아카이브 전시 <이 연극의 제목은 없읍니다>는 극단 에저또의 초기 활동(1966-1977)을 조명한다. 에저또의 태동기였던 1966-1968년, 극단 에저또를 창단하고 첫 번째 소극장을 열었던 1969년, 현 삼일로창고극장인 에저또창고극장을 개관한 1975년을 거쳐 1976년 문을 열고 1977년 문을 닫은 에저또포켓소극장까지, 명동 일대를 중심으로 진행된 약 12년간의 활동을 연대기 순으로 소개하여 한국 전위 연극 운동의 한 장을 전한다.
에저또는 1969년 5월 “연극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확대하자”라는 이념으로 등장한 실험적 극단이며, 한국 최초의 판토마임 전문 극단이다. 에저또는 “에...”, “저...”, “또,,,”와 같은 간투사를 이어 만든 명칭이다. 에저또는 기성 연극에 반기를 들고, 언어(대사) 중심적 연극보다는 신체 표현에 중점을 두고 난무하는 언어 속에 감춰진 삶의 본질을 찾고자 했으며,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에 대해 풍자하고자 했다.
에저또의 활동은 연출가 방태수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방저거, 방거지라는 가명으로도 활동했던 방태수는 화장실 낙서들을 모아 대본을 만들거나 배우들이 온몸을 붕대로 감은 채 출연하는 등 실험적인 연극 창작 방식을 시도했다. 전시의 제목인 <이 연극의 제목은 없읍니다>는 1969년 에저또의 공연 제목으로 배우의 등장이나 대사도 없이 빈 무대만 드러냈던 과감한 시도의 공연에서 가져온 것이다. 연출가 방태수는 또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해프닝과 거리극을 펼쳤던 1970년 ‘제 4집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에저또는 창단 이후 명동 일대에만 다섯 개의 소극장의 문을 열고 이내 재정난으로 닫기를 반복한다. 1975년 문을 연 에저또창고극장은 이들의 명동시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현재의 극장 공간은 방태수와 그의 동료들이 가정집에 직접 삽으로 땅을 파서 만든 것이다.
에저또창고극장은 또한 실험소극장(1973), 민예소극장(1974), 공간사랑(1977) 등 당시 연극계에 일어났던 본격적인 소극장의 등장과 흐름을 같이한다. 희곡 검열을 비롯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소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실험적 작품들을 제안하고자 했던 초기 에저또의 활동을 소개하는 이 전시는 다시 문을 연 삼일로창고극장이 물려받은 유산의 첫 장면을 마주 대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이 전시는 연출가 방태수가 개인적으로 소장해온 자료들 중에서 선별한 공연의 리플렛, 티켓, 포스터, 프로그램, 대본, 관련 책자 등 약 60여 점이 전시되며 관련기사 50여 건의 스캔본, 에저또창고극장(현 삼일로창고극장) 개관사진을 비롯한 50여 컷의 공연 사진의 스캔본이 전시자료로 사용된다. 또한 연출가 방태수, 마임이스트 유진규, 극작가 고 윤조병의 인터뷰, 주요 희곡 대본 5편, 이 열람용 자료로 소개된다. 또한 심의 받은 대본 및 심사 합격증 등의 자료와 함께 소개하여 당시의 희곡 검열과 공연법에 대해 정리한다.
이 전시를 위한 자료 수집과 연구는 2017년 초에 시작되었으며, 소극장 공간사랑에 대한 아카이브 전시인 <결정적 순간들: 공간사랑, 아카이브, 퍼포먼스>(2014, 아르코예술자료원, 국립현대무용단 공동주최)의 기획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연예술아카이브 책임연구를 맡았던 김해주(현,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이 기획했고 연극학 전공자이며 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연예술아카이브를 통해 6.70년대 소극장에 대한 자료를 수집, 연구했던 정주영(한국학중앙연구소 박사), 김윤정(오사카국립대학 연극학 박사과정 재학 중)이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서울문화재단-
☆Donation:
서울문화재단은 '더 즐겁고 다 행복한 문화도시 서울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문화예술 창작 및 보급, 예술교육, 시민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연락처: 02-333-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