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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모든 것이 빌드업이었다 말할 수 있다면 | ARTLECTURE

사실, 이 모든 것이 빌드업이었다 말할 수 있다면

-[김용현 작가]-

/Artist's Studio/
by 김미교
사실, 이 모든 것이 빌드업이었다 말할 수 있다면
-[김용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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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은 고대 신전의 물리적인 공간부터 오늘날 버추얼 뮤지엄의 가상공간까지의 긴 역사 속에서도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관객에게 선보여왔다. 흡사 무대 뒤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들처럼 시각예술작가들은 전시를 개최하기 전까지 전시장 밖, 자신의 작업 공간에서 작품을 제작한다. 그 제작 과정은 주로 작업하는 주체의 개인적인 활동이며, 모두에게 공개되는 경우는 그 공개 과정 자체가 작품의 개념에 연결성이 있거나 전시 주최 측의 요청처럼 작가의 판단과 필요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설혹 공개된다 하더라도 이는 아직 완성되기 전 단계이기 때문에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작가가 만든 은 습작과 같이 온전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시각예술 작품은 첫 전시를 통해 완성된 작품을 공식적으로 선보인다. 여기서 전시를 중심으로 제작과 완성/유통 과정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 제작과정에서 거래 예약을 받더라도 이는 완성된 이후를 고려한 예약이다. 김용현 작가의 퍼포먼스와 영상설치 작품들은 이러한 과정을 와해한다. 회화를 전공했던 작가는 매일매일 다른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추상화를 그렸다고 회상했다. 작가에게 추상화는 매일 다른 여러 그림들이 레이어처럼 켜켜이 쌓아 이루어진 하나의 화면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최근 작업들에서 하나의 완성을 목표로 한 작업과정을 와해시키는 특성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한다. 작가가 최근 주로 다루고 있는 퍼포먼스와 영상 매체는 개별 작품인 동시에 같은 개념을 공유한 시리즈이며, 작품 제작의 연속선상에 함께 놓여있다.

 



 

김용현 작가의 퍼포먼스는 일상에서 도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정해진 시간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영상으로 기록되기 위해 수행된다. 그리고 작가는 영상작업과 같은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을 통해 누적된 그의 퍼포먼스 장면들을 재료 삼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연출한다. 이처럼 퍼포먼스부터 영상과 설치까지, 다양하게 변모한 작품들은 작가가 도출한 아이디어를 함께 견인한다. 여기서 선행된 퍼포먼스들은 주요 작품보단 그의 아이디어를 작품화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작가노트와 더불어 작품에서 그의 메시지를 독해하는데 보조적인 수단인 서브텍스트가 된다. 일상적인 장소에서 수행하는 김용현 작가의 선행된 퍼포먼스는 그 곳에 그 시점에 방문하기만 한다면 누구든 직접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수집된 파편적인 이미지 소스-재료로 치환된다. 그리고 이 재료들이 어느 정도 누적되고 이를 전시로 선보일 기회가 왔을 때, 작가는 편집을 통해 영상작품을 생산한다. 해질녘 거리에 불이 켜지는 타이밍을 노리고 수행한 <key man>(2018-2019), 계단, 벤치, 도로 경계석 등 작은 높이에서 굴러 떨어지는 <추락 없는 낙하>(2020)와 같은 작품들은 수차례의 퍼포먼스들을 기록한 영상들을 반복적으로 조합해 그가 수행해온 행위들을 더욱 강조한다.

 



 

이러한 재조합의 결과물이 영상의 형태가 아닌 제 3의 퍼포먼스인 경우도 있다. 이는 김용현 작가가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해 기획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에게 친숙한 구절들을 유머러스한 체험으로 생경하게 제시한 <세상에 웃길 수 없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2021)의 경우를 살펴볼 수 있다. 경기도미술관에서 라이브로 진행된 이 퍼포먼스는 지나간 유머를 실시간 타이핑한 <일그러진 웃음>(2020)와 장소와 행위의 괴리를 통해 장소에 덧씌워진 맥락을 해체한 <아예 박살을 내버리면 어떨까>(2022)의 행위가 라이브로 결합된 형태이다. 이렇듯 김용현 작가의 선행된 퍼포먼스들은 개별 작품인 동시에 재료가 되어 언제든 작가의 선택과 판단에 의해 재조합 될 수 있다. 이듬해 <아예 박살을 내버리면 어떨까>(2022)는 독립적인 작품으로써 영상으로 편집되어 그림바위 예술발전소와 예울마루의 전시들에서 서로 다른 작위적인 디스플레이로 설치되었다. 이는 선행된 퍼포먼스이후, 퍼포먼스 혹은 영상작품으로의 포스트 프로덕션은 언제든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질문처럼, 김용현 작가의 작품에서는 퍼포먼스가 우선이냐, 영상이 우선이냐라는 질문이 무의미하다. 그 모든 작품의 형식과 전시된 환경은 관객들에게 작가의 메시지와 태도를 잘 전달하기 위해 매번 다르게 선택될 수 있다.




 

<세상에 웃길 수 없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2021)를 다시 살펴보자. 김용현 작가는 타이핑하는 행위에서 관객을 등지며 그들을 방치했다. 관객은 실시간으로 작성되고 삭제되는 그의 타이핑 텍스트와 맞은편 유리창 너머 두 사람이 일종의 몸개그처럼 수행하는 폭죽놀이-불장난 사이에 끼어있었다. 이후 그림바위 예술발전소의 초대전에서 이 작품을 영상 설치로 변환했을 때 역시, 그는 서로 마주한 두 벽에 텍스트의 타이핑 화면과 폭죽놀이-불장난 모습을 동시에 상영해 전시장 중앙의 관객들이 두 영상작품 사이에 낀 환경을 연출했다. 이러한 산만한 환경속에서 관객은 시선을 교차해가며 최선을 다해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를 읽어내려 애쓰게 된다. 혼란스러운 그러나 관객이라는 역할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려 애쓴 그들을 포함해, 작가는 그 우스꽝스러운 상황 자체를 작품으로 제시한다.

 



 

유머 레퍼토리, 시대적 감수성, 표지판의 지시어, 버려진 사물, 사회적 규범, 이동하는 갈대 등과 같이 김용현이 선택한 작품의 소재들을 나열해보면,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그 소재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일상을 둘러보는 그의 시선은 반골(反骨, rebel) 기질을 엿볼 수 있지만 어딘지 소박하다. 작가는 작품에서 청개구리 같은 장난스런 행동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그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실제 작품에서 작가는 그저 생각을 이어가는 과정이나 상황을 관객들에게 제시하며 한걸음 물러선다. 그의 질문은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지나치던 것이기에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분명 그 질문들은 우리가 간과한 무언가를 꼬집는다. 이는 작품의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과정을 추적하다보면 이해하기 쉽다. 영상작품 <당신이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2021-2022) 역시 평화문화진지의 방문에서 시작된다. 김용현 작가는 이 장소가 가진 정체성과 설립의 명분인 평화생태가 여전히 유효한지 질문한다. 그곳에 방문한 사람들은 평화생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곳을 방문함으로써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평화를 얻으려 하고, 그곳의 자연이 가진 생태를 이해하며 보존하려 하는가? ‘선행된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평화문화진지의 잘 조성된 조경과 길 위의 휴게 벤치에 앉아 방문객들이 산책하는 행위를 지켜본다. 평화문화진지를 거니는 사람들은 평화보단 일상에서 여유롭게 공원을 거니는 산책에 집중한다. 그들은 그 곳이 평화문화진지가 아닌 일반적인 도심 속 공원이었어도 마찬가지로 산책할 것이다. 여기서 김용현 작가의 행위가 시작된다. 그의 퍼포먼스는 작가 본인이 주요 시연자가 된다. 벤치에 앉은 작가는 길의 양끝을 바라보며, 누군가 자신이 위치한 지점으로 다가오면 일어선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자신의 앞을 지나간 후에 다시 벤치에 앉는다. 그 길을 걷는 사람은 자신을 인식하고 이를 작은 행위로 옮긴 작가의 상호작용에 아무런 관심을 표하지 않고 자신의 산책을 이어간다.

 

이처럼 김용현 작가는 우리가 무신경하게 용인하고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같은 개념을 공유한 각각의 작품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제시한다. 작가의 질문들은 문제의식을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비판하기보단 상황을 비트는 유머로 관객들에게 스며든다. 관객은 일반적으로 현대미술이 제시하는 날이 선 질문에 당장 자신의 입장과 답을 정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유머러스한 상황과 괴리감으로 제시되는 김용현의 질문 앞에서는 관객의 판단이 유예된다. 관객은 지연된 시간만큼 질문을 탐색하고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작가의 유머감각은 관객들이 작품의 메시지에서 질문 그 자체를 집중하고, 이미 비틀린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작가의 질문들은 같은 개념을 공유한 여러 새로운 작품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제시될 것이다. 앞으로 잊을 만하면 새롭게 다시 찾아오는 유행이나, 꾸준히 사랑받는 공연의 레퍼토리처럼 서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기대해본다.

 

시청각자료

1. <추락없는 낙하>(2020)

https://www.youtube.com/watch?v=nO0Q8zi-fkQ

2. <아예 박살을 내버리면 어떨까>(2022)

https://www.youtube.com/watch?v=ur9osfaTlP8&t=88s

3. <세상에 웃길 수 없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2021)

https://www.youtube.com/watch?v=1uBkJCIPWVI

4. <당신이 지키는 것은 무엇인가>(2021-2022)

https://www.youtube.com/watch?v=vA_qrSsTg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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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미교(Mikyo Kim) - 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