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말하듯 하다’라는 관용구가 있다. 일부분만 알면서도 전체를 아는 것처럼 여기는 어리석음을 빗댄 말로 부정적인 상황에 주로 쓰이는 표현이다. 그런데 전시 <어둠 속의 코끼리>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근데 그게 꼭 나쁜 거야?’
을지로의 대안공간인 ‘을지로OF’에서 3월 4일부터 14일 <어둠 속의 코끼리>라는 제목의 전시가 진행되었다. ‘을지로OF’를 찾아가기란 쉽지 않다. 복잡한 을지로 인쇄소를 지나, 오래된 노포의 야외 테이블을 거쳐 찾아간 건물 5층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며 ‘여기가 맞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상상치 못한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포스터 ⓒ 을지로 OF
<어둠 속의 코끼리>는 무대 디자이너인 정승준이 동료와 선배들을 만나 진행한 인터뷰와 워크숍을 바탕으로 탄생하였다. 워크숍은 동화를 읽고 생각과 느낀 점을 표현하고 그 결과물로 새로운 동화를 만드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본래 연극 무대를 마련하려고 했으나 코로나 상황이 겹쳐 전시 형태의 결과물을 선보이게 되었다는 연출자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전시를 소개할 때에도 ‘기획했다’라는 표현보다 ‘연출했다’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을지로OF’는 501호, 502호, 503호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람객은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 방을 돌아다니며 전시를 관람한다. 동선은 503호, 501호, 그리고 502호로 설정되어 있다.
유다미 <Fairy tale workshop> ⓒ 어윤지
503호를 구성한 연출자 유다미는 무대 디자이너로, 앞서 언급한 워크숍 참여자들의 동화를 소개하고 창작을 위해 펼쳤던 일련의 과정을 공유한다. 대안공간은 흔히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곳으로 정의되며 기존 미술관에서 경험할 수 없는 시각적 자극을 제공한다. 503호는 대안공간의 특성을 전면에 내세운 방인데, 무려 까맣게 칠해진 벽에 조명이 없어 손전등을 들고 입장하여야 하는 곳이었다. 관람객은 ‘보고 싶은’ 부분에 손전등을 비춰 동화를 읽고 참여자의 생각에 들어갈 수 있다. 무대 디자이너들이 구성한 공간이어서 그런지 전시장보다는 연극 무대 같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손전등이 마치 무대의 핀 조명과 같은 효과를 주어 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유태희 <Multibus> ⓒ 어윤지 / 정주희 <좇지 않기> ⓒ 어윤지
그다음 공간인 501호는 503호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아플 정도로 강한 조명에 흰색으로 칠해진 벽, 그리고 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글씨를 만날 수 있다. 화이트 큐브를 모사하는 이 공간은 유태희가 연출을 맡았다. 벽에는 무대 디자이너로서의 고민과 무대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이유 등이 적혀 있으며, 영상 디자이너인 정주희의 백남준 비디오 아트를 연상시키는 설치물에서는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문화예술계에서 기획자로 성장하고픈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미루어 보았을 때, 공감 가는 이야기가 많아 흥미로웠다. 같은 처지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고,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전시로 풀어내는 방식에서 해학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정승준 <검은방> ⓒ 어윤지
마지막인 502호는 어둡고 아늑한 느낌의 공간이다. 전체 연출을 맡은 정승준이 기획을 맡았다. 투명한 상자 속에는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의 인터뷰 영상이 송출되고, 관람객은 그들의 소회를 들으며 전시를 보고 난 후의 감상을 방명록에 적을 수 있다.
다시 <어둠 속의 코끼리>라는 제목으로 돌아가서 코끼리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첫째로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을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는 사람 A, 코끼리의 코를 만지는 사람 B 등으로 비유할 수 있다. 우리는 코끼리 다리만 보고 전체 모습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경계하지만, 막상 꼭 전부를 봤다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다. (A는 적어도 코끼리 다리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즉 이번 워크숍은 정답을 외치는 것보다 저마다의 코끼리를 상상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필자는 오히려 워크숍부터 인터뷰까지의 결과를 전시로 구성함으로써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되었다고 본다. 어쩌면 시각 예술 분야 역시 거대한 코끼리일지 모른다. 전시는 정적인 예술이고 연극은 동적인 예술이다. 얼핏 연관 없어 보이는 분야가 한곳에 모이니 꽤 그럴듯한 ‘코끼리’가 탄생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처음 들려준 질문에 답할 시간이 왔다. ‘장님 코끼리 말하듯 하는 그거, 꽤 나쁜 건 아닌 것 같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문화예술계 사람으로서 그들의 앞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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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을지로OF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L55SFRpWPI/?igshid=jo3li72uulfw
<어둠 속의 코끼리> 전시 안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