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대상을 맞닥뜨릴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바로 ‘이름’이다. 이름은 그 대상을 인식하는 가장 짧고도 강력한 언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름을 짓는 데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다.
수십 억의 예산과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영화에서 제목은 어떠한 의미를 지닐까. 영화 제목은 영화가 품고 있는 세계의 다성적 측면들을 한 줄, 혹은 한 단어로 응축한 결과물이다. 제목은 스크린이 열리기도 전에,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본질을 상상하면서 자신만의 예고편을 머릿속에서 상영하게 한다.
또한 제목은 그 자체로 특정 시대를 반영하는 징후이자, 대중의 감각을 드러내는 기호다. 한자가 섞인 고풍스러운 문어체가 스크린을 지배했던 시대가 있는가 하면, 정체불명의 외래어가 ‘세련’의 징표처럼 불려 나온 시대가 있었고, 생활의 요청을 반영하는 나른한 구어체 제목이 풍미하기도 했다. 곧 제목 짓기의 변천사는 한국 사회의 문화 트렌드, 변덕스러운 대중의 감성을 반영해 왔다.
< 제목전(展) – 텍스트, 타이포그래피, 무빙 이미지>은 1919년부터 2025년까지 공개된 한국영화 8,400여 편의 제목을 다양한 키워드로 재배열하고 분석해 한국영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레퍼런스를 제시한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를 통해 시대별 정서와 서사의 흐름을 읽어내고,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제목의 관점에서 조명한다. 또한 젠더, 색채, 문장 구조 등 여러 층위의 필터를 가져와 한국영화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제목이 지닌 조형적 미학에도 주목한다. 오프닝 시퀀스 속 제목의 움직임, 포스터와 전단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제목 서체와 디자인은 영화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장치인 동시에 그 자체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증명한다.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운 자유롭게 생동하는 레터링과 캘리그래피, 동시대 감독과 그래픽 디자이너가 각자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애니메이션과 영상 작업은, 익숙한 영화 제목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는다.
< 제목전(展) – 텍스트, 타이포그래피, 무빙 이미지>은 정지된 텍스트로 존재하던 영화 제목을 다시 움직이게 하고, 새로이 읽히도록 하는 것을 넘어 ‘경험’의 대상으로 확장한다. 이름은 더 이상 부르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곳에서 제목은, 다시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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