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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와 십우도 | ARTLECTURE

자기애와 십우도

-즐거운 옛 그림과 동시대 미술-

/Picture Essay/
by 박재은
자기애와 십우도
-즐거운 옛 그림과 동시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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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십우도 - 소를 보는 것은 마음을 보는것이고, 소를 얻는것은 핵심감정을 직면하는 것이고, 저자에 들어가 중생을 가르치는 것은 나에게서 근원으로 돌아가, 여러사람에게 쓰여지는 성인의 경지가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자기애의 시대인 것 같다.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이미지나, 예술가, 문화 모두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사랑하는 세상이 된 원인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확연히 분위기가 다르다. 코로나 이전까지도 개인이 강력하게 부상했지만, 원격 등으로 사람과 사람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미디어를 통한 세상은 누구에게나 열리게 되었다. 모두 다 채널과 매체를 가지게 되었고, 좋아요와 구독수가 많아야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다. 예술의 밀도나 질보다, 트랜드와 생각이 중요해지게 되었다. 더구나, 타인에게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관심을 거둬 자기 자신에게 함몰하게 되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러한 자기애에는 약간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즐거움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필자의 짧은 의학지식으로 설명하자면, 쾌락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도파민유형의 즐거움과, 안정적인 호르몬인 세로토닌유형의 즐거움 이를테면 우리가 산책하고 책을 읽을 때 많이 나오는 호르몬이다. 어머니가 아이를 키울 때 나오는 옥시토신 유형의 즐거움이 있다. 여기서 자기애적인 즐거움은 어린아이의 유희와 같은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여러해 동안 즐거움에 대해 생각해 왔는데, 인간에게는 이 세가지 즐거움이 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현대인의 즐거움이 너무 쾌락적인 도파민 유형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쥐는 알파세대의 아이들의 즐거움은 먹방을 보거나, asmr을 듣는 것이다.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의 노예로 전락하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이러한 시대를 예고했듯이, 작가 김현정은 다분히 자기애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다. (작품링크한복을 곱게 입은 그녀가 빼어난 미인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녀의 그림은 확실히 즐겁다. 그녀의 작품에는 자신이 한복을 입고 활보한다.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하고, 즐거운 놀이를 하기도 하고, 쇼핑을 하기도 하는 작가 자신이 계속해서 화면에 등장한다. 김현정의 그림에는 현대사회에서 소비되는 오락적인 즐거움들이 녹아있다. <생각하는 예비 신부>는 동시대 결혼문화를 자기애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녀가 신고 있는 화려한 구두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껏 치장하고 있다. 결혼식은 전통적인 것, 이를테면, 한복 등의 의상이나 폐백 등의 예식문화가 섞여 있는 문화이다. 김현정의 <생각하는 예비 신부>는 결혼 후에 시댁과의 갈등이나, 많은 허례허식이 있는 예식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예비 신부는 생각할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더 한 현실이 있다는 것을 달콤한 허니문 때는 잠시 접어두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어여쁜 신부가 남사스럽게, 속이 비치는 한복을 입고 있는 것은 어르신들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김현정

이력 : 서울대학교 동양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동양학과 박사과정 수료

2017년 포브스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


어쨌든, 자기 노출과 자기애는 개인이 거대해진 시대의 흐름에 등장한 괴이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왜 괴이할까?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간단하게 십우도(선수행을 간단한 10단계의 소그림으로 설명한 그림)에서 배울수 있는데, 목동이 길을 찾아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나서는 단계가 1이다. 2에서는 자취를 발견하는 것이고, 3에서는 소를 보고, 4에서는 소를 얻는다. 5에서는 소를 기르고, 6에서는 소 타고 집에 돌아가고, 7에서는 집에 도착해 소를 잊는다. 8에서는 사람도 소도 모두 잊는다. 9에서는 근원으로 돌아가고, 10에서는 저자에 들어가 중생을 돌본다. 십우도는 소를 빗대어 진정한 자신을 찾아 나서는 옛 그림이라고 말해 볼 수 있다.



소찾아 나서다. 


소를 얻다



저자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




자기애 이야기를 하다가, 십우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현대인의 자아성찰이나 자기애는 진정으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인지, 어리둥절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애라는 것도, 말하자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것의 한 과정일 텐데, 어디에도 자신을 찾은 흔적은 없고, 어린아이같이 거대해진 자신에 대한 애착뿐이다. 그것은 타인이 들어설 여지가 없어, 환영할 것이 못 되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진 않는다. 현대인이 불행해지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자신을 찾아 나서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타인에게 손내미는 것... 십우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거대해진 자신은 잊고, 타인과 손잡고, 넓은 세상을 보라는 것.. 그런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십우도는 1에서 10가지로 나누고, 본 이미지는 1, 4, 10 단계)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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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재은_현재 옛 그림에 관하여 공부하고 글을 쓰고 있다. 전통의 현대성을 화두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