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옛 그림을 공부하기 전에, 한국의 미의식에 대해 단편적으로 접했던 이미지는, 대체로, 여백의 미, 단출하고 과하지 않으며, 검박하고 화려하지 않은 것들, 등으로 정의할 수 있었다. 옛 선비들은 대체로 검소한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는 것을 보편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말 그렇게 검소하기만 했을까? 조선 말기의 왕실의 장식화, <<책거리 병풍>>을 보면, 서책, 문방사우, 고동, 수선화, 매화, 동백, 모란, 살구 꽃, 연꽃까지 온갖 진귀하고 화려한 것은 다 모아놓았다. 도자기는 조선의 백자와는 결이 다른 화려한 문양을 자랑한다. 책을 읽는 선비가 탐하기에는 너무나 화려한 사물들이다. 더불어, 꽃에 향기에 정신을 빼앗겨, 학문에 정진하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도 같다. 조선 후기 명품 등을 수집하는 것은 선비들의 취미생활을 넘어, 치와 벽의 수준에 이르는 것이었다. 조선 후기의 책거리 그림은 북학의 대두와 함께 중국산 문화 상품이 급증하고 애호되던 분위기에서 성장했다.(1)
<책거리 병풍>
이왕 벽(癖)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해볼까? 동시대 미술가 함경아는 서구의 박물관의 수집이 사실은 도벽(盜癖)에 가까운 패턴으로 반복되어 왔음을 고발한다. 작가는 후추통, 나이프, 컵, 스푼, 향불 접시 등을 훔쳐다가(?) 전시장에 가져다 놓았다. 그 물건들은, 해외에서 때로는 기내에서, 때로는 호텔에서 가져온 물건들이다. 전시장에 훔친 사실을 적어놓은 진술서와 함께 물건들은 전시되었다. 함 씨는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 외에 세계의 유명한 박물관들의 소장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약탈에 가까운 훔친 물건들로 채워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엄밀히 말하면, 박물관은 일종의 벽(癖)을 분류하고, 정리하여 진열하고, 교육하는 기관임에 틀림없다. 함경아는 유럽의 많은 박물관들이 도벽盜癖에 가까운 방법으로 수집한 물건들로 채워져 있음을 고발한다. 그 자신이 그들(유럽인)과 같은 방식(훔치는)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수 많은 물건들로 채워진 우리의 생활과는 조금은 다른 한가로운 사물들을 찿아보도록 하자. 강세황의 <청공도>이다. 18세기에 그려진 이 그림은 소박한 사물들로 채워져 있다. 사실, 채워졌다고 하기엔, 여유로운 여백이 존재한다. 우리가 가까이 두고 즐겨 사용해 왔던, 문방구들이다. 살펴보면, 서책, 벼루, 필통, 연적, 담뱃대, 매화 가지 등이다. 선비의 단출한 일상의 사물들을 포착한 그림이다. 만약에 몇일만 혼자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강세황의 <<청공도>>에 등장하는 사물들처럼, 한가롭고 즐거운 사물 몇가지만 곁에 두고 싶다.
강세황의 <청공도>
------------
참고문헌
1) 송희경, 『아름다운 우리 그림 산책-선비정신, 조선회화로 보다』, 태학사, p.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