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현대미술을 난해하고 어려운 장르로 인식한다. 실제로 현대미술은 복잡한 장르이자 고도의 감각을 요구하는 놀이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대미술을 즐기기 위해서는 일상에서는 거의 활용하지 않는 감각을 동원해야 하고, 그때 비로써 작품이 담고 있는 이미지와 메시지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상· 미디어와 같은 현대적 기술을 활용한 작품들은 관객의 입장에서 난해함과 복잡함이 더욱 증폭된다. 하지만 최근에 관람한 ‘내일의 예술展’은 영상과 미디어를 활용한 작품은 재미없고 어렵다는 통념을 깬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참여 작가 대부분이 20~30대이기에 실험적인 발상이 인상적이고 놀이터와 같은 작품 배치는 흥미를 끌기 충분하다. 예술의전당의 미술관을 마치 실험장이자 놀이터로 꾸민 오늘보다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예술가들(금민정, 김준수, 민찬욱, 신승재&김지수, 아톰앤비츠, 에스씨아이, 이스트허그, 이장원, 장입규, 천영환, 한재석, 황주리 작가)의 전시를 통해 예술이란 놀이의 진정성과 방향성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천영환 <이모션 백신 팩토리>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첫 번째 작품은 천영환 작가의 <이모션 백신 팩토리>다. “기술이 우리의 인간성을 없애기 전에, 우리가 기술에 인간성을 입혀야 한다.” 신경과 의사이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자자로 유명한 올리버 색스(Oliver Sack)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그의 작품은 예술과 기술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흥미롭고 진지하다. 이번 전시에 앞서 천양환 작가는 감성 컴퓨팅(Emotion AI) 기술을 활용하여 프로젝트 참여자의 뇌파의 변화와 시신경의 반응 관계를 수집하고 분석한 다음 색상 데이터로 치환하는 작업을 한 바 있다. 작가는 참여자의 뇌파의 변화를 ‘감정’으로 시신경의 반응을 ‘색상’으로 명명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정확히 어떠한 방식으로 도출된 값인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예술 프로젝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참여자들의 감정(뇌파)과 색상(시신경)의 수집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주로 행복이라는 키워드와 직결되었으며 일종의 치유의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축출된 색상 데이터를 ‘이모션 백신’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내일의 예술展에서 선보인 <이모션 백신 팩토리>는 이동이 가능한 실험실이기에 보다 많고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일종의 도전이고 반항이다. 예술의전당의 미술관을 마치 자신의 실험실로 만든 그의 발칙한 상상력은 분명 매력적이다. 이제는 특정 참여자가 아닌 불특정 관객을 대상으로 감성 컴퓨팅을 활용한 데이터 수집은 이전보다 더 고도화되고 유의미할 것이다. <이모션 백신 팩토리>를 통하여 관객의 감정 데이터와 고유한 색상을 바이알에 담는 과정을 운이 좋게 관람한 적이 있다.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고 시각적으로 흥미롭진 않은 기억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과학 실험실 실습처럼 약간의 설렘은 분명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예술이라는 놀이의 진정한 가치와 앞으로의 방향성은 이러한 설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예술과 기술의 접점에 있는 작가이기에 미술 작품으로서 의미와 가치가 앞으로 더 확장될 수 있는 작품이다.
민찬욱 <휴머노이드 오브젝트>
두 번째로 주목한 작품은 민찬욱 작가의 <휴머노이드 오브젝트>다. 기술적인 작품이지만 동시에 철학적인 담론도 함께 제시한다.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일상에 대한 작가의 흥미로운 발상이 인상적이다. 작품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자력이 있는 XY플레터 위에 자석이 장착된 검정펜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인간의 일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펜을 기계에게 양보했으며, 비생산적이면서 은밀한 ‘낙서’라는 행위를 기계에게 부여한 것이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기계와 AI가 인간이 하던 일을 많이 대체하고 있다. 미래에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만의 고유한 행위인 예술이라는 놀이가 시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와 무슨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다.
민찬욱 작가의 <휴머노이드 오브젝트>는 다각도로 생각할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다만 아직은 프로토타입처럼 보인다. 내일의 예술展 관객이자 예술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보다 발전된 형태의 작품이 궁금하다. 만약 <휴머노이드 오브젝트 2세대>가 관객과 동시에 낙서를 진행한다면 이에 대한 결과물은 어떨까? 기계의 낙서와 인간의 낙서가 혼재되어 있는 도화지가 벌써 기대가 된다. 작품이 고도화되어 기계와 인간의 낙서가 육안으로 구별되지 않을 때, 예술이란 놀이(혹은 게임)은 새로운 업데이트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예술가들이 탄생하고, 중심에는 민찬욱 작가가 있지 않을까?
이스트허그 <신명: 풀림과 맺음>
내일의 예술展에서 나의 시선을 강탈한 마지막 작품은 이스트허그 <신명: 풀림과 맺음>이다. 빛을 포함한 거대한 크기의 조형물에서 강렬한 비트가 흘러나오는 다원적 성격의 작품이다. 마치 컴퓨터 게임으로 치면 최종 보스 혹은 끝판왕 같은 포지션이다. 이러한 복합적이고 거대한 작품을 만든 ‘이스트허그’는 이력을 살펴 본 결과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출발한 아티스트 그룹으로 파악된다. 대학교에서 만난 동료들이 함께 ‘집단적 창조’를 실행하는 작업 과정이 흥미롭다. 아마도 미래의 예술은 예술가 간의 협업과 관객의 참여가 기본이자 기반이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이스트허그는 시대를 앞서 가고 있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그래서 그들이 훗날에는 어떠한 작품을 선보일지 벌써 기대가 된다.
이스트허그의 작품 <신명: 풀림과 맺음>은 상당히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작품이다. 다양한 지점을 건드리고 다양한 시도가 엿보인다. 우선 굿 음악과 미디어아트의 조합이 인상적이며 관람객의 뇌파를 LED 입자로 치환하는 설정은 흥미롭고 신선하다. 하지만 뇌파와 굿판 그리고 미디어 아트를 연결한 방식과 과정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제의적 성경의 굿판이 왜 미디어 아트로 구현되었을 때 의미가 있을까? 전통과 현대의 결합은 어떻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인간의 뇌파가 LED 입자로 치환되었을 때 어떠한 가치와 담론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정말 많은 궁금증이 폭발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나만의 답은 아직까지는 찾지 못한 상태이기도 하다. 다음 기회에 이스트허그의 신작을 보게 된다면, 의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고 싶다.
필자는 예술을 일종의 놀이 혹은 게임이라고 자주 말한다. 이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예술은 학문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을 하는 이유에는 개인의 재미가 동반되어야 지속 가능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창작의 과정은 쉽지 않고 때론 고통스럽지만, 시작과 끝에는 분명 개인의 욕망과 만족 그리고 재미가 존재한다. 예술은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전달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즉 예술이란 놀이의 진정성은 나에게서 시작된 생각이 너에게 온당히 전달되었을 때 발현되는 가치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순수한 재미와 욕망이 있는 작품이 타인에게 더 흥미로울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미래의 예술은 더 많은 사람이 예술 작품을 관람하고 참여하는 방향성으로 발전할 것이다. 내일의 예술展에서 인상 깊었던 지점도 이 부분에 있다. 예술의 미래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한 젊은 예술가들의 진정성과 방향성을 그들의 작품을 통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놀이의 가치가 더욱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어, 미래에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기회와 공간이 생기길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