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기와 배제가 익숙해져 가는 사회 속에서 홍이현숙의 개인전 《휭, 추-푸》는 인간이 예술을 도구로써 할 수 있는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시 관람 전, 얼핏 본 텍스트들로는 작가를 환경운동가나 인권운동가로 비칠 수 있겠지만, 본 전시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벗어나 비인간 존재를 인식하는 ‘공생’의 폭넓은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덟 마리 등대, 2020, 스피커 8대(사운드 13분 1초), 가변크기
1층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된 작품은, 메인 작품으로 꼽히는 [여덟 마리 등대]이다. 커다란 암흑의 방 한쪽에 놓여있는 뗏목은 잠시 앉아 고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설치작품이다. 일반적으로 고래는 책이나 미디어로 많이 접해왔기에 어딘가 친근한 동물이지만, 정작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음역의 소리를 내고 쉽게 볼 수도 없다. 본 작품에서는 고래의 형태는 보이지 않지만, 생소한 고래의 울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 울음을 계속 듣고 있노라면, 인간의 소리와 어딘지 모르게 얼추 비슷하게 들린다.
인간의 개발 소음으로 점차 고래를 포함한 다양한 해양 동물들의 서식지가 사라져 간다. 작가는 고래 8종의 소리를 데이터로 변형하여 작품에 사용하여, 고래의 소리를 관람객이 들을 수 있게 구현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관람객은 고래만이 사는 영역을 유영하는 듯한 공감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더 나아가 이 작품을 계속 감상하고 있노라면, 인간에 의해 위협받는 희귀한 이들의 존재를 어둠 속 그림자로 보이지 않게 그려냄으로써 앞으로 비인간과의 공생의 주의(注意)를 인간의 언어로 전달하고 있는 듯하다.
전시의 2층에서는 작가가 그동안 해왔던 전시와 작품을 아카이브로 감상할 수 있다. 그동안 작가의 작품으로 보아 그리고 ‘나’에게서 ‘이웃’, ‘인간’, ‘타자’로. ‘여성’에서 ‘비인간(인격이 존재하는 동물)’으로 시선을 확장하고 사회의 생활구조, 방식은 자신만의 공간 또는 신체, 정신이라는 개인의 단위에 비유하고 대입하며 축약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중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은 손(인체)을 사용해 만진다는 ‘촉각’을 비대면 시대 속, 카메라 렌즈(물체)로 ‘시각’과 ‘청각’을 통해 느끼는 것에 비유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 [물주기]에서는 물을 주어 풀(식물)이 자라나는 것을 머리에 물을 주어 머리카락(인체의 일부)이 자라나는 것으로 나타냈다. 여성, 신체, 환경 등 다양한 주제들이 오고 가지만 파랑색 바탕의 꽃무늬 원피스를 일관적으로 착용하고 영상에 등장하는 작가의 모습처럼, 그의 일관적인 작업의 언어가 작품을 감상할수록 점차 드러난다.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2020,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7분 47초 물주기, 2005,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분 57초
작가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포용력을 통해, 비인간과 인간의 경계를 사라지게 한다. 홍이현숙 작가의 작품에서는 작가가 고래, 사자, 고양이 등 동물의 소리나 몸짓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작가는 점차 그들을 닮아가며 행동하고 있다. 이 모습이 ‘따라 한다’라고 보인다면 작가가 염려하듯 인간의 언어로 의인화하여 오히려 인간과 비인간의 묘한 선 긋기가 되겠지만, ‘닮아가는 것’과 ‘따라 하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못하기에 혐오와 애정의 그 사이를 오가는 인간의 양면성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애매한 틈 사이로, 비인간을 ‘연대가 가능한 생명체’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석광사 근방. 2020,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5분 45초
[석광사 근방]이라는 작품에서 초반에는 길고양이에 다가가려 애쓰는 모습이었다면, 후반에는 길고양이가 근처에 왔던 것도 모른 채 일상을 살아가는 작가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렇듯 서로의 교집합 속에서 공생하기 위해서는 예술을 인지할 수 있는 인간이 먼저 소통을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질문을 던진다.
홍이현숙의 개인전 《휭, 추-푸》는 전시 제목처럼 ‘휭’ ‘추푸’하고 흩날려가는 소리처럼 막연하고 금방 사라져버릴 수 있는 주제일 수도 있겠지만 의지를 갖추고 바라본다면 충분히 바람을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새로운 경계로의 항해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