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 버스터 키튼
“우리는 모두 영화를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라는 크리스티앙 메츠Christian Metz의 말처럼, 영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특히 글로 써내려가는 것은 보는 것과 또 다른 문제인 듯하다. 종종 이러한 문제는 한 시퀀스의 전개를 설명하는 데에 조금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채플린과 키튼의 영화를 시퀀스 단위로 분석하여 자신의 호오好惡를 드러내는 경우, 혹은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왜 섬뜩한지에 대해서 얘기할 때 말이다. 만약 글쓰기가 일종의 대화라면, 우리는 어떻게 영화라는 매개를 바탕으로 소통할 수 있는가? 그것은 글의 성격에 따라(예컨대, 리뷰, 프리뷰, 비평 등등) 달라지겠지만, 궁극적으로 매개하고 있는 장치가 영화임에는 확실하다. 이럴 때 우리는 독자의 시선에 맞추어, 그 독자의 니즈를 분석하여 글을 전개시켜 나가야 한다.
그림 찰리 채플린
그 중 영화 리뷰가 가지고 있는 성격은 그 어떤 영화의 글보다 무난하다. 리뷰는 가능한 많은 관객, 즉 영화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는 대중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리뷰의 기능은 영화의 플롯을 충실하게 요약하거나 독자의 이해를 돕는 일정한 틀, 이를테면 그 감독이 연출한 다른 작품들 혹은 공통 장르의 영화들과 같은 범주 안에 놓고 설명한다. 반면, 이론적인 글쓰기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이러한 글은 독자층이 특정 영화나 영화의 역사, 그리고 영화에 관한 여러 지식에 해박한 사람들이라고 가정한다. 다시 말해, 예술로서 영화가 갖는 권위에 대해 때로는 부정적인 의구심을 품거나, 긍정적인 동의를 구하는 글로써 작동한다.
문제는 비평적인 글이다. 현재 우리가 쓰려고 하는 글 역시 비평적인 글이다. 영화 비평에 대한 글은 어떻게 전개해야 할까? 이것이 전술한 바처럼 독자와의 대화 창구라면, 도대체 어떤 식으로 말을 걸어야 한단 말인가? 이 문제는 의외의 난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리뷰나 이론적인 글쓰기의 간극에 걸쳐있고, 그 독자층마저 모호하다. 리뷰로 쓰기에는 그 독자는 아는 것이 많고, 이론적으로 쓰기에 그 독자는 아는 것이 적다. 그래서 영화 비평적 글쓰기란 어려운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 비평 글은 그 도입부에 한 시퀀스 분석을 시작으로 한다. 이것으로 독자에게 말의 포문을 여는 것이다. 예컨대, 흔히 알려진 「다크 나이트」의 심문 시퀀스. 여기서 조커의 광기가 왜 빛을 발하는지, 왜 그가 다른 빌런들과 층위가 다른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의해보며 글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비평은 이러한 분석에서 머물지 않는다. 개인적인 의견과 취향은 글의 필요조건이다. 그렇기에 많은 영화 비평가들은 실제로 어떤 영화나, 장르, 감독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하고, 독자들은 그들의 가지고 있는 편견을 일단 수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비평적 입장을 확고하게 취하지 않거나 숨기기 위해 사적인 견해에만 치중하는 것은 비평이라 보기 어렵다. 그렇기에 비평적인 글쓰기가 어렵다. 개인적인 감정ㆍ기대ㆍ반응 혹은 뛰어난 시퀀스 분석은 놀라운 비평의 시작이 될 수 있지만, 그 주관과 객관의 간극을 좁히는 것. 다시 말해, 개인적 견해와 영화 비평 사이의 능숙한 영역 넘나들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좋은 비평문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영화 비평은 이러한 비평적 특성을 무시한 채 수많은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적어도 프랑수아 트뤼포가 “감정에 몰입한 채 비평을 하지 않으면서, 최소한 일관된 의도를 갖고 비평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비평의 재미는 그 영화가 좋고 나쁨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있다.”라는 격언을 뼛속 깊이 새긴 채 영화 비평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