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에트르타(Etretat)를 여행한 적이 있다. 많은 화가에게 영감이 되었다는 코끼리 바위가 있었고, 양옆으로 높이 솟아오른 절벽 사이 해변에는 사람들과 갈매기의 교차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며 활기찼다. 그곳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랑’이었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노부부를 보았고, 해 질 녘 빨간 보트 옆에 몸을 맞대고 앉아 세상의 끝을 기다리는 듯한 연인도 감상했다. 그만큼 사랑이 피어날 수 있는 묘한 분위기를 가진 바다였다.

1) 후지시마 다케지, 《야시마에서 먼 전망》, 1932, 캔버스에 유채, 아티존 뮤지엄 (藤島武二《屋島よりの遠望》1932年、油彩・カンヴァス)
후지시마 다케지가 1932년에 그린 《야시마에서 먼 전망》 작품을 보면 마치 그날 낭만적인 목격을 했던 그 에트르타 해변이 떠오른다. 하늘은 붉은색을 띠고 있고, 바다는 푸른색을 띠고 있다. 굴뚝의 연기가 공기 중에 흔들거리고,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에 배 한 척이 떠있다.2) 모든 대상들은 분명한 형태가 없이, 빛과 공기, 안개의 영향을 받은 듯 뿌옇다. 색채의 산란으로 인해 마치 내가 그림 속 장소에서 물기 먹은 내음을 맡는 것처럼 촉촉한 분위기를 느끼게 만든다. 휘날리는 연기를 보며 바람을 상상하고, 날아다니는 흰 새에게서 끼룩끼룩 울던 갈매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경험했던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연상시킨다.
후지시마는 실제로 일본 가가와현 다카마쓰시 야시마(屋島地区, Yashima chiku)의 정상 부근에서 다양한 풍경을 관찰하였고, 그곳에서 석양을 보고 이 작품을 제작했다. 여러 대상물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단순화시켜서 그날의 분위기를 오직 색채로서 표현하고 있다. 나는 그림 속 분홍빛 하늘에서 서서히 물들어 가던 에트르타 해변의 석양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당시 아름다운 풍경을 촬영한 사진은 너무 단조로워 보이는 반면에, 후지시마의 작품은 석양의 빛깔이 점차 퍼져가던 경이로운 순간을 다시금 보여준다.
2) 후지시마 다케지, 《냄새》, 1915, 캔버스에 유채, 69.5×76.0, 도쿄국립근대미술관 (藤島武二《匂い》1915年、油彩・キャンバス)
《야시마에서 먼 전망》보다 17년 전에 후지시마가 그린 《냄새》라는 작품 역시, 테이블 위 작은 향수병에서 번져가는 어떠한 향을 상상하게끔 만든다. 여인의 장식적 무늬의 의상이나 화려한 식탁보, 우아하게 균형미를 갖춘 화병보다 여인이 후각을 통해서 미지의 ‘향’을 맡는 그 생생한 순간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후지시마는 그리는 대상에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면서 애정을 가지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 깊은 성찰을 통해야만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다고 한다.4) 화가의 작품이 입체적인 까닭은 대상을 사랑하면서 오래 관찰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매일 계속되는 삶 속에서 과연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을까?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모두 사랑한다면 인생이 좀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애인에게 싫은 소리를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지금 이 순간도 사랑한다면, 노력하는 우리 관계가 조금은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는가.
[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 1867~1943) – 초기에는 주로 낭만주의, 외광파 화풍을 구사하였고, 유럽 유학을 통해서 유화를 본격적으로 습득하였으며, 그 후 데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거친 터치와 단순화, 대담한 색채 사용 등이 특징이다. 한국 근대 서양미술 화가 오지호가 일본 유학을 가서 도쿄미술학교,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만난 교수로도 알려져 있다.5) ]
1), 2) 아티존미술관 사이트 https://www.artizon.museum/special-features/artists_words/ 3) 도쿄국립근대미술관 https://www.momat.go.jp/collection/o00034 4), 5) 최선정, 「1930년대 우리 화단의 향토색 논의와 오지호」, 목포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석사학위논문(2017), pp.1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