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국립 현대 미술관의 주도 하에 진행된 심포지엄을통해, 큐레이터이자 근현대 미술사학자인 제임스 부리스(James Voorhies)는 “나는 이런 작업을 연구라 부른다.” 라는 제목으로 큐레토리얼에 관한 발화를 하였다.현대 미술과 현대 미술 연구, 이 둘 사이의 모호한 기준점에 가장 제대로 위치하고 있는작가는 히토 슈타이얼(1966, 독일)이 아닐까. 올4월부터 국립 현대 미술관은 <히토 슈타이얼- 데이터의 바다> 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최초로 히토 슈타이얼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국립 현대 미술관은 “디지털 기술, 글로벌 자본주의, 팬데믹 상황과 연관된 오늘날 가장 첨예한 사회문화적 현상을 영상 작업과 저술 활동을 통해 심도 있게 탐구해오고 있는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작가이다.또한 예술, 철학, 정치 영역을 넘나들며 미디어, 이미지, 기술에 관한 흥미로운 논점을 던져주는 시각 예술가이자 영화감독, 뛰어난 비평가이자 저술가이기도하다.” 라는 문장으로 그녀를 소개하였다.
히토 슈타이얼은 주로, 렉처(lectur) 그 자체를 작품의 매체로 다루는 작가라고 말하고싶다. 그녀가 주목하고, 형상화하는 주제들, 그리고 그 작업의 결과물은 하나의 연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녀가주로 다루는 ‘디지털 시각 체제’는 새로이 도래한 이래 지금까지우리의 가치관과 인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대한 첨예한 그녀의 해석과 그 안의 메세지들은 우리에게다양한, 그리고 양질의 질문들을 던진다.
이번 전시는 '독일과 정체성'(1994)과 '비어 있는 중심'(1998) 등 다큐멘터리적 초기 영상 작품부터오랜 기간 동안 그녀가 발표한 텍스트와 작업을 정리하여 보여준다. 이는 3개의 대형 전시실에5개의 챕터로 나뉘어 총망라되어있다. 각각의 챕터들은 작가가 주창한 주요 개념 혹은 메시지를둘러싸고 모여 있다.

필자가 히토 슈타이얼을처음 알게 된 계기는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유익하고 교육적인.MOV파일,2013> 이었다. 이 작품은 끊임없이 우리의 데이터가 CCTV나 휴대폰의 카메라 등을통해 기록되고 수집되고 있는 현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완전히 자취를 감출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전제로 제작된 작품이다. 당시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때, 인간의 존재를 디지털 정보로써 규정하고, 인간의 존재를다루는 시각의 전환이 센세이셔널 했다. 여기에서 대두되는 현실 세계의 인간, 디지털 정보로써의 인간, 그 디지털 세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인간, 이 세가지에 대한 그녀의 시각은 그녀의 전 작품을 근간을 이루는 시각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에 그녀의 <안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MOV파일,2013> 을 다시 보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히토 슈타이얼 '소셜심(Social Shim)' 단채널 HD 비디오, 라이브 컴퓨터 시뮬레이션 댄싱 마니아,
18분 19초 2020 ⓒ김형순2022.05.09
그리고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신작 중 하나는 〈소셜심〉 이라는 작품이었다. 이는 ‘소셜 시뮬레이션’의줄임말로, 팬데믹 초기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온라인을 통한가상세계가 현실세계를 어느정도 대체하기 시작한 기간 동안, 히토 슈타이얼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혼란스러운사회 상황, 예술 창작의 조건, 변화하는 동시대 미술관의위상을 탐구하였고, 이를 영상으로 풀어냈다. 전시장을 꺾어 들어가면 한 무리의 경찰 아바타들이 신나는 댄스를 펼치며, 거대한모니터를 장악한다. 그들의 춤사위는 팬데믹 이후 퍼지기 시작한 대중의 시위와 이를 진압하는 경찰 및 군인들의행위를 번안한 일종의 사회적 안무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켠의 모니터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00년경 그렸다고 추정되는살바도르 문디가 등장한다. 이를 두고 일어나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 속 문디가 우리에게 호소한다. “인공지능이 지배하고 인권이 말살된 자유무역항으로 끌려가는 중입니다. 최대한 빨리 제 가치를 낮추고 싶습니다. 신에게 맹세코 레오를 딱한 번 보았습니다. 그가 제 손가락을 스쳤을 때요.”그가 이 문장을 내뱉는 순간, 우리의 현실세계는 가상세계와 연결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배명지 학예사는 “작가는 AI 등의 알고리듬을 비판하면서도 알고리듬이나아바타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지요. 〈소셜심〉 등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작가가 시뮬레이션화하는 작동의 원리가 빅브라더가 인간을 통제하는 원리이기도 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도구를 활용하면서 도구에 대한 성찰적 사고를 요하는 작품들이 전시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라고 언급하였다. 히토 슈타이얼의 작품과 글은 난해하고, 어렵다. 그러나 그 안에서 그녀가 직시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아마도 이제는 너무나 일상적일 만큼 우리의 삶 속에 녹아있는 것들 일지 모른다. 그녀가 메타포로 제시하는 가상 세계의 이미지는 확실히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아름다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만들어내는 시뮬레이션의세상을 이루고 있는 요소 하나 하나는 전혀 비현실적이지 않다. 현실 세계의 데이터화, 그로 인해 다시 돌아오는 현실 세계에 대한 영향, 가상과 현실을넘나드는 현시대의 문제들. 올 4월, 우리를 찾아온 히토 슈타이얼이 보는 세계는 다시 한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 대한 알람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