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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ophe Tarkos | ARTLECTURE

Christophe Tarkos


/People & Artist/
by gippume
Christophe Tark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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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예술은 항상 앞선 기존의 관념에 대항하고 스스로의 형식을 벗어나기 위해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도들을 해왔다. 문학은 활자를 벗어나고, 그림은 더는 평면에 머물러 있지 않았으며 음악은 침묵과 소음을 그들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예술 장르와 장르가 섞이면서 서로 간의 침범이 이루어졌다.

Christophe Tarkos

 



“Je suis né en 1963. Je n’existe pas. Je fabrique des poèmes.”

나는 1963년에 태어났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시를 만든다

 

.“Il n’y a pas de mots” et "Ma langue est pleine de mots”

단어가 없다.” 그리고 나의 언어는 단어로 가득 차 있다.”


 


오늘날 예술가들은 그들 자신을 작가라 소개한다. 현대미술이 낯선 이에게는 이 작가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창작자의 포괄적인 의미보다 글을 쓰는 사람에 더 가까울 것이다. 오늘날 작업의 분야는 아주 다양하고 세분 되었으며 심지어 작가마다 다른 주제와 표현 방법을 가지고 그들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것은 곧 예술가마다 그만큼의 예술 장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언제나 그들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작가 노트를 작성한다. 예술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작품은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들 자신의 관념을 정의하고 다른 이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글은 필연적으로 창작물과 함께한다.

 

예술은 항상 앞선 기존의 관념에 대항하고 스스로의 형식을 벗어나기 위해 다양하고 실험적인 시도들을 해왔다. 문학은 활자를 벗어나고, 그림은 더는 평면에 머물러 있지 않았으며 음악은 침묵과 소음을 그들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예술 장르와 장르가 섞이면서 서로 간의 침범이 이루어졌다. 프랑스의 시인 Guillaume Apollinaire의 대표적인 시 비수에 찔린 비둘기와 분수 La Colombe poignardée et le jet d’eau’를 보면 문학이 어떻게 글줄을 벗어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시의 배열이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배치하여 활자와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의 시는 글자이며 동시에 이미지이다.



(좌)<Guillaume Apollinaire La Colombe poignardée et le jet d’eau 1918, France>

(우)<Guillaume Apollinaire (Translated by Roger Shattuck) Calligrammes1918, France>


 

현대미술에서는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 Fiona Banner의 퍼포먼스를 살펴보자 2006년부터 4차례 대상을 바꿔 행해진 누드 퍼포먼스 시리즈는 전통회화 특히 누드화에 대한 생각을 바꾼다. 아래 사진은 2007년 토론토에서 행해진 그녀의 퍼포먼스 작업이다. 퍼포먼스의 구성은 회화를 위한 준비와 같다. 모델과 캔버스가 존재하는 공간에 작가가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관객은 당연히 그녀가 인체를 그려내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등장하고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순간 우리의 예상을 완벽히 뒤집는다. 인체를 그려내는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을 거부하고 그녀는 누드를 써 내려간다. 글로 묘사된 인체는 그림으로 보는 전통적인 누드와는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퍼포먼스의 과정을 모르고 작품만을 보게 된다면, 아마 작품을 보는 감상이 완벽하게 달라질 것이다.



<Fiona Banner On the nude 2007, Toronto>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보자 Christophe Tarkos 90년대 초반 프랑스 모던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아방가르드 시인이다. Christophe Tarkos1963년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2004년 그의 나이 41세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Apollinaire가 활자를 이미지화시켰다면 그는 시가 글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통해 시를 활자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을 하였다. 그의 작업은 특정한 내러티브가 없기 때문에 한 번에 작업의 맥락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소리내기를 통해서 텍스트를 소리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말할 때와 글을 쓸 때 전혀 다른 방법으로 쓰고, 말한다. Tarkos는 이 말하기 쓰기 사이 이루어지는 생각의 과정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의 소리내기는 감상자로 하여금 단어와 운율에 집중하게 한다. 프랑스에서는 Poésie sonore 라는분야가 존재한다. 이것은 시 말하기의 실천적 연습이다. 한국의 시 낭독과는 조금 다른 특성을 지닌다. 한국의 낭독은 이야기의 흐름과 시가 포함하고 있는 감정을 담아 읽어내는 것, 시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읽기. 그러나 Poésie sonore는 시의 내용전달을 넘어서서 읽기 또한 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사용한다. 시에 감정을 넣어 말로 뱉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속도 음정 쉬어감 등의 다양한 말하기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그 때문에 조금 더 퍼포먼스 적이고 극적이다.


Guillaume Apollinaire가 텍스트를 이미지화하였다면, Christophe Tarkos의 작품은 텍스트와 소리 및 퍼포먼스가 융합된 장르가 될 수 있다. 그의 작업 ‘Rêver n’est pas penser 꿈꾸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는 약 2분간의 말하기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개로 분할된 화면에는 Tarkos가 등장하고 글을 뱉어낸다.

 


 


Rêver n’est pas penser 꿈꾸는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Quand je rêve je vois défiler des images dans ma tête 꿈을 꿀때 나는 내 머리속에 연속적인 이미지들을 본다

Quand je rêve je ne pense pas penser n’est pas rêver 꿈을 꿀때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는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Rêver c’est voir des images qui défilent dans la tête 꿈꾸는 것은 내 머리속에 흘러가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Penser c’est avoir des images qui défilent dans la tête 생각하는 것은 머리속에 이미지가 흘러가는 것이다

des images sont on peut pas dire à la suite ce qu’ils vont être 그것은 우리가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미지이다

C’est-à-dire que les images défilent on peut pas savoir à l’avance 즉 그 이미지들은 연속해서 지나간다 우리는 미리 그것을 알수가 없다

Ce que vont être les images ce sont des images qui défilent 그것이 어떤 이미지가 될지 그것들은 이미지이며 그것은 연속해서 흐르는 이미지이다

Et on peut pas savoir ce qu’il va se passer 그리고 우리는 무슨일이 일어날지 알수 없다

J’ai la tête dans un sac le tronc 나는 구멍난 가방안에 머리를 가지고 있다

Le sac j’ai la tête dans un trou et tout ça passe 이 가방 나는 머리를 가지고 있다 구멍안에 그리고 모든것이 지나간다

Et ça passe les images et je continue 그리고 그 모든 이미지가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계속한다

J’essaye de suivre le fond du trou j’essaye de suivre le fond du sac 계속해서 나는 뒤따른다 그 구멍의 바닥을 나는 가방 바닥을 뒤쫓는다

 

중략

 


우리는 어떻게 말하는가?” 그는 이 질문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단어 스스로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단어들은 서로 붙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 항상 대체된다. 또한 그는 시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의 시는 텍스트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통해서 시를 활자 밖으로 끌어내었다. 그의 작업은 모호하고 신비롭다.그는 글을 쓸 때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하는지를 관찰하였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의 흐름을 텍스트로 시각화하였고 그것을 다시 소리로 묘사하여 생각의 흐름을 구현 하였다.


그의 저서 “Le signe =“ 에서 기표와 기의에 관해 이야기하며 텍스트가 지시하는 것과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첫장에는 le signifiant = le signifé 기표와 기의가 같다고 시작한다. 종이에 고양이라고 적고 그 글을 읽을 때 우리는 고양이를 떠올리고 고양이를 읽는다. 단어는 단어 자체로 있을 때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것을 떠올리고 소리 냄으로 기표와 기의가 일치된다. 일련의 과정, 쓰고, 인식하고, 소리내기 이 과정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작업의 결과물이 된다.

 

작가가 단어들을 던지면, 던져진 그 단어들은 서로 뭉치고 그 속에서 섞이며 결국에 하나의 이미지덩어리를 만든다. Tarkos가 적어낸 단어들은 존재하지 않고, 단어들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며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들은 물과 같이 흐름을 만들며 계속해서 이동한다. 이러한 단어의 성질을 그는 Pâte-mot 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Pâte-mot는 한국어로 낱말 반죽으로 해석 할 수 있다. 단어들은 계속해서 뭉쳐지고 낱말로 존재할 수 없다. Pâte-mot 의 발음은 프랑스어의 pas de mot와 유사하다. 이 문장은 말이 없다혹은 단어가 없다로도 해석될 수가 있다. 고양이라는 글자가 사회적으로 고양이라고 약속하지 않았다면 글자 고양이와 실제 고양이 사이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고양이라는 단어를 실제 동물 고양이로 부르기로한 사회적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단어 고양이를 보고 실제 동물 고양이를 떠올리게 된다. Tarkos는 우리가 글을 쓰고 그것을 보고 인지하고 말로 소리내는 이 과정을 시를 통해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단어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그가 말하는 기표와 기의는 같으나 다르고 다르지만 같다. 그것들은 떠다니며 말 덩어리를 만들었다 흩어진다.

 


참고문헌

 

https://www.erudit.org/fr/revues/etudfr/2013-v49-n3-etudfr01062/1021208ar/

https://www.franceculture.fr/oeuvre-cahier-critique-de-poesie-n-30-dossier-christophe-tarkos-de-collectif-d-auteurs

https://www.franceculture.fr/oeuvre-cahier-critique-de-poesie-n-30-dossier-christophe-tarkos-de-collectif-d-auteurs

https://fr.tipeee.com/arthuryasmine

https://fr.wikipedia.org/wiki/Christophe_Tarkos

https://www.franceculture.fr/emissions/les-nuits-de-france-culture/christophe-tarkos-quand-reve-ne-voit-pas-les-images-qui-defilent-1

http://www.fionabanner.com/performance/index.htm#performance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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