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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리겠다 | ARTLECTURE

나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리겠다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에드가 드가-

/Picture Essay/
by 안노라
나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리겠다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에드가 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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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느루야, 아직도 생각 중인 거니? 새벽인데 네 방문 틈으로 불빛이 어른거리더구나. 너무 고민 말고 그만 자렴. 넌 내일 아침에 시작해도 충분히 그 일을 해낼 거야. 아마 느루는 부인하겠지만 말이야.
"설마 내가?" 이러면서 도리질을 하겠지. 하지만 네겐 "특별한 통찰력"이 있단다. 엄마가 보기에 넌 일반적이지 않은 재능이 있어. 남들은 설명을 듣고도 핵심이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운 일에도 그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것이 가진 진짜 힘이 뭔지 너는 알지. 며칠 전, 이 시대의 살벌한 뉴스를 접하고는 '일부다처제'와 '일부일처제'에 대한 얘기를 나눴었지. 그때 느루는 이렇게 말했어.
"인간도 동물의 일부분이라고 했을 때, 동물은 다수의 수컷 중 가장 힘센 수컷 한 마리가 영역 안 모든 암컷을 차지해요. 경쟁에 진 수컷은 일등 수컷에게 엎드리거나 영역을 떠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죠.
그들은 암컷을 차지하지 못한 게 자신의 열등함 때문임을 인정해요. 그런데 문명사회에서의 일부일처제는 모든 하나의 '남자'에게 하나의 '여자'를 제도적으로 규정했지요. 그러다 보니 여자가 없는 남자들이 자신의 열등을 여자들에게 푸는 것 같아요. 자신의 힘으로는 이기지 못하는 힘센 남자에게는 불만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상대적 약자인 여자에게는 포악하게 군다고요. 엄마, 다른 관점에서 일부일처제를 보자는 의미이지 일부다처제를 옹호하는 게 아닌 건 아시죠?" '역시나'하고 엄마는 감탄했단다.
"다른 관점!". 넌 항상 다른 관점, 다른 시각에서 사태를 볼 줄 알았어. 똑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면밀하게 검토했고 그것이 일반적인 시각 속에서 어떤 방향과 진동을 가지는 지 파악했지. 그래서 동일한 텍스트를 읽고도 나와는 전혀 다른 너의 의견과 주장을 엄만 깊이 고려해 보게 되었구나. 그건 신선한 자극이었고 놀라운 깨달음이기도 했단다. 느루야, 지금 넌 하던 연구를 중단했고, 다른 어떤 것도 시작하지 못했어.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짐작도 되지 않고, 스스로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지. 그저 굶주린 듯 책을 읽고 아프면 병원엘 가고 마음 심란할 때 공원을 걷고 있다고 했어. 하지만 엄마가 보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청춘의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순간이야. 매일매일 자신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 바로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길을 걸을지 고민하는 것 말이야. 우린 대부분 무얼 잘하는지 모르지. 시도해 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재기에 대한 안전망 없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도전은 회복 불가능한 실패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건 너무나 두려운 일이야. 어쩌면 엄만 그 두려움으로 인해하지 못했던 도전들을 너는, 너희 세대는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인지도 몰라. 어젯밤 너는 선배가 부탁한 자료를 받아놓고 이 자료 안에서 창의적인, 어떤(?)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데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게 뭘까?'라며 눈을 반짝였지. 그 순간 엄마는 네가 너의 재능을 확인할 기회라고 생각했어. 아마도 새로운 도전이 될 거야. 넌 '특별한 통찰력'이 있으니까. 그저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말 한 가지는 숫자는 반드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거야. 그 이야기를 읽어 내는 것, 또 하나는 너의 장점인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 그러고 보니 새로운 관점으로 "시선"을 주목한 철학자가 있네. 미셸 푸코는 "시선이 권력이다"라는 말로 권력의 속성보다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에 주목했지. 그는 시선의 비대칭성에 집중했어. 예를 들면 힘이 다른 두 주체는 시선에 있어 평등한 대칭성을 갖지 못하지. 사장님 앞에 선 사원이 시선을 떨구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 지니까. 또 절대왕정 시기, 왕나 귀족들이 내려보는 듯한 얼짱 각도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수 있어.
느루야, 회화에서 시선과 각도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화가도 있단다. 그는 고집스럽고 독단적인 성격에 사교성도 없었어. 선천적으로 시력도 나빴지. 그는 인상주의의 문을 열었지만 다른 방향으로 걸었구나. 모두들 야외로 나가 자연의 빛을 찬양할 때, 그늘진 무대 뒤편이나 발레 연습실을 찾아가 어린 소녀들의 가는 팔과 다리가 구현하는 아름다운 선(線)을 화폭에 옮겼어. 그리고 이렇게 말했단다.
"미술이란 범죄만큼이나 섬세한 계획을 요구한다." 고민하고 있는 느루에게 오늘 이 그림을 소개해 줄까? 너, 이 그림 본 적 있니?


드가 드가 <별, 무대 위의 무희, 1876>

  


에드가 드가(Edgar De Gas, 1834~1917)의 <The Star>야. 특이하게 무대 위에서 내려다본 구도야. 당시 유명했던 프리마 발레리나는 양 팔을 뻗고 고개를 한껏 젖히고 있어. 순간의 움직임을 포착한 아슬한 동선이지. 아무런 특징이나 개성을 느낄 수 없는 발레리나의 얼굴에 비해 한쪽 다리를 내밀어 평행을 유지하는 우아한 선과 화면 앞 중앙을 비워버린 놀라운 구도는 파격적이야.


조금 자세히 보자. 일반적으로 정 중앙을 포커스로 한 무대와는 달리 화면 속 무대는 앞 쪽으로 치우쳐 있어. 팔을 뻗는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은 화면의 구도만큼이나 소외적이야. 화면 왼쪽을 봐.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발레리나의 치마와 함께 잘 차려입은 신사를 숨겨 놓았잖아. 가려져 있지만 신사의 시선이 프리마 발레리나에 꽂혀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어. 드가는 새로운 시선을 통해 보이는 중심과 숨겨진 중심, 두 개의 축을 파격적인 구도로 묘사했어. 드가가 숨겨놓은 그는 누굴까?


당시 1870년 대, 파리의 발레리나는 대부분 가난한 노동자의 딸들이었어. 가난을 벗어나려는 부모는 미모가 고운 자녀를 무용수로 키우지. 오페라 발레학교에서 하루에 12시간~15시간 연습을 했다고 해. 고되고 야만적인 훈련을 마치고 직업 무용수가 되면 그들은 가족과 자신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The star>에서 보이는 신사 같이 부유한 자본가의 애인이 되는 경우가 흔했단다. 지금처럼 예술가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쇼걸과 같은 처지였지. 마네가 <올랭피아>를 낙선 전에 올렸을 때, 파리 시민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모욕감을 덮기 위해 야유와 경멸을 던졌던 것처럼 아마도 드가가 묘사한 무희의 현실적인 모습에서 누군가는 부끄러움을 느꼈나 봐. 드가의 작품을 형편없는 예술이라고 매도했으니까.



에드가 드가 <무용 수업>



느루야, 드가를 미술사에서 특별하게 만든 것은 개개인의 인물적 특징보다 구도가 갖는 프레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전위적인 발상’이었어. 그의 독특한 구도는 붓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절절하게 웅변해 주었단다.


드가가 보여주는 구도의 파격은 <무용 수업, 1870>에서도 엿볼 수 있어. 느루도 단번에 알 수 있겠지. 이 그림은 원경의 모자를 쓴 여인들로부터 전경의 보면대 앞에 서 있는 발레리나에 이르기까지 사선으로 구도를 잡았어. 그럼 한쪽으로 기울 텐데 화면의 저울은 수평을 이루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팡이를 잡고 무용수를 지도하는 사람이 당대 최고의 발레 마스터 쥘 페로야. 열 명이 넘는 발레리나의 무게를 지팡이 하나로 상대하지. 드가는 이런 구도를 통해 쥘 페로가 이십여 명에 달하는 모든 등장인물보다 더 무겁다고 말하고 있어.


게다가 드가는 작은 소품, 즉 벽면의 거울을 통해 공간의 볼륨을 더했구나. 캔버스가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로 꽉 차 있고 각기 다른 동작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선스럽지 않게 통일감을 유지하는 건 거울을 통해 시야를 확장시켜 주기 때문이야.


쥘 페로의 뒤편 모자를 쓰고 있는 여인들은 어린 발레리나의 보호자들이야. 그녀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더 많은 돈을 후원해 줄 후원자를 물색하기도 하고, 마땅한 후원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자녀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단다. 자녀가 프리마 발레리나가 되기 위한 고된 훈련에 한 눈 팔지 못하도록 하는 동시에 십 대의 생기발랄한 그녀들의 목소리를 빼았았던 장본인들이지.





1800년대 인류는 이성과 과학의 시대로 들어서. 과학은 속도와 기계와 새로운 문화를 낳았지. 시인 보들레르는 헤시시를 피우며 파리를 배회했고 모네는 생 제르맹 역으로, 르느와르는 세느 강변으로, 쇠라는 그랑자트 섬으로 달려 나갔어. 캔버스와 붓을 실내에서 실외로 옮긴 건 화가들의 새로운 도전과 더불어 19세기의 이성과 과학이었단다. 튜브 물감의 발명되었고, 증기기관차가 흰 연기를 뿜으며 사람들을 토해냈고, 영혼을 빼앗는다는 사진기가 출현했거든.


그럼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라고 손꼽히는 드가는 왜 밖으로 달려 나가지 않았을까? 드가는 유복한 집의 장남으로 태어났어. 내성적이고 자존심이 강했던 그가 눈치 보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건 평생을 외로움 속에서 보낸 그의 유일한 복이었는지 몰라. 그가 가난했다면 약한 시력 때문에 주류에 편입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고, 경제적 빈곤은 그림을 그릴 여유를 주지 않았을 테니까. 느루야, 그의 왼쪽 눈은 난시였고 오른쪽 눈은 초점이 맞지 않았어. 또 그는 햇빛을 보면 통증을 느꼈어. 밝은 햇빛을 피할 수밖에 없었기에 시대의 그늘을 남보다 먼저 포착한 것인지도 모르지. 덕분에 그는 사진에 매료되었어. 그의 그림에서 화면이 툭툭 잘라나간 듯 보이는 건 사진이 가지는 스냅 효과를 캔버스에 담았기 때문이야.


드가가 약시(弱視)의 시력(視力)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視角)을 가진 것처럼 느루에게 구도가 화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줄게.



느루야, 어때? 시선이 한 군데로 모아지지. 자연스럽게 소실점이 생겨.


이젠 편안하고 대등한 느낌을 주지. 구도가 수평이면 편안한 느낌을 준단다.



최고지. 그래서 삼각형을 최고로 안정된 도형으로 꼽고 이런 구도가 가장 안정적이야.
성 삼위일체처럼.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괜히 생긴 게 아니란다.





동그라미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보여주고 싶은 게 숨어있다는 의미지. 아래 그림을 봐. 언뜻 보면 대등한 구도 같지만 왼쪽을 흐리게 하고 오른쪽 꽃을 든 소녀를 부각했어. 평화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양 쪽으로 치우친 구도는 역동성을 준단다. 옆 사진을 봐. 누군가 달려가고 있잖아. 구도는 그 안에 많은 언어와 의미를 숨기지. 그래서 대상을 확인하기 전에 화가가 화면에 어떤 구도를 담았는지 보는 겐 그림을 크고 넓게 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야. 이런 구도도 보여줄게.



  

율동감이 있고 최초의 원에서 화면 가장 앞쪽 원까지 연속적인 느낌을 주지. 이런 구도로 사진을 찍으면 이렇게 사진가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 예술성을 더해주지.




느루야, 이 도형이 갖는 구도는 그림을 그리던, 사진을 찍던 행위의 주체가 갖는 내면의 프레임이야. 주체가 어떤 대상을 보여주고 싶은지를 결정하고 숨기고 드러내는 도구가 되지. 그럼 다시 드가의 그림을 볼까?



에드가 드가 <압생트 한 잔, 1875~76>

 


<압생트 한 잔, 1875~76>에서 드가는 다리에 힘이 빠진, 지친 여인의 모습을 보여 주느라 테이블 다리는 아예 그리지도 않았단다. 드가는 왜 이렇게 구도에 집중했을까? 그는 도시성이 주는 파편화된 개인의 시작과 계층 간의 대립과 갈등을 모더니즘적인 지각 방식으로 드러냈어. 우린 그저 그가 보여주려 했던 것을 각자의 눈길로 읽고 쓰다듬을 뿐이지. 그의 약시가 건진 파리의 우울과 시대의 부조리를 말이야.


드가는 이렇게 말했구나. “나는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그리겠다.”라고. 그의 시선은 깊고 날카로웠고 통상적인 아름다움은 그의 날카로움에 베어졌어. 그래서 어떤 이들은 드가의 그림에서 ‘천박한 시대’를 보기도 하고 ‘예술의 몰락’을 만나기도 하지. 또 어떤 이들은 발레리나의 발 끝으로부터 시작된 텅 빈 무대 위에서 새로운 세기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어. 드가는 말년에 거의 시력을 잃었어. 남은 시력을 모아 작업한 ‘14세의 어린 무용수’라는 조각은 “예술이 이보다 더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가!”라는 혹심한 평을 받았고 그는 외롭게 죽었단다. 150년이 지난 지금, 약시(弱視)의 시선으로 사회 부조리를 그린 드가의 작품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지.


느루야, 내일 아침에 깨어 다시 한번 숫자들을 쳐다보렴. 드가가 구도 속에 자신의 많은 말들을 숨겨놓은 것처럼 자료 속 숫자에는 이 사회가 갖는 긍정과 부정의 데이터들이 숨겨 있을 거야. 넌 그걸 잘 찾아낼 거고 이 시대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 너의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거야. 마지막으로 엄마가 젊은 시절 들었던 숫자 이야기 한 편 해 줄게.


  '1'은 너무 외로웠어. 혼자였거든. 그래서 친구를 만나고 싶었지. 그는 여러 날을 걸어 '2'에게 갔어.

  "2야, 너랑 친구 하고 싶어. 나랑 놀아줄래?"

  "싫어. 넌 나보다 작잖아. 난 더 큰 친구를 만나고 싶어."

  '2'는 '3'을 찾아갔어. 그리고 '1'이 자신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말했어.

  "3아, 너랑 친구 하고 싶어. 나랑 놀아줄래?"

  "싫어. 넌 나보다 작잖아. 난 더 큰 친구를 만나고 싶어."

  '3'은 '2'가 '1'에게 했던 대답과 똑같은 대답을 들었어.

  '3'은 '4'에게 '4'는 '5'에게, 숫자들은 차례로 자신보다 더 큰 친구를 향해 갔고 그리고 아무도 친구를 만들지 못했어. 새로운 시선,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때가 온 거야. '1'은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어. 그래서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아 혼자 놀고 있는 '0'에게로 갔어.

  "0아, 너랑 친구 하고 싶어. 나랑 놀아줄래?"

  "좋아. 난 너무 외로웠거든. 같이 놀자."


  그래서 둘은 '10'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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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노라_역사를 그림으로 푸는 안노라입니다. 그림과 음악과 문학과 역사의 숨은 이야기를 엄마와 딸이 알콩달콩 수다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