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 (윤이도, 김태희)의 첫 프로젝트, 전시 <231.4㎡+131.82㎡>에 부쳐
글 | 양채원
종로구 통인동에 위치한 갤러리175에서의 이번 전시 <231.4㎡+131.82㎡> (이하 이삼일더하기일삼일)는 생명의 근원으로 막연히 사랑한다 여겼지만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대상을 조용히 오랜 시간 끈질기게 마주하고 들여다본 여정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전시를 구성한 주체이자 작가인 윤이도, 김태희는 익명의 누군가를 호명할 때 사용하는 지칭 명사 ‘XXX(엑스엑스엑스)’라는 팀명 아래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231.4㎡와 131.82㎡는 각각 작가의 할머니들이 점유하던 주거 공간의 면적을 의미하는 한편, 전시를 홍보하기 위한 이미지에 쓰인 길쭉한 삼각형, 비스듬한 사각형, 비뚤배뚤한 다각형 등의 디자인 요소들은 두 작가의 할머니 집 도면에 등장하는 크고 작은 공간을 나타낸다.
윤이도는 붓 대신 이쑤시개 끝에다 먹을 적셔서 장지에 이미지를 그려낸다. A4 용지 만한 크기에서 부터 어린아이 키를 훌쩍 넘기는 크기의 종이까지, 면적에 상관없이 우직하게 화면을 채워나간다. 수고스럽다는 말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지난한 과정을 거쳐 작가가 담아내는 풍경은 몇 년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반년여의 시간 동안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에서 기인한다. 장지에 수 놓인 풍경은 언뜻 작가의 눈에 담겼을 모습이었을 것으로 여겨졌다가도, 할머니가 50여 년을 제 2의 고향이라 여기며 지냈던 마을의 풍경임을 감안하면 단지 한 사람의 시점이라 여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할머니의 것인지, 작가의 것인지, 마을 구성원 누군가의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시선은 집 안팎, 마을 공터 여기저기를 넘나들며 시공간을 재구성하고 손끝으로 더듬어질 만큼 정치(精緻)한 재현으로 나타난다. 수십 년을 매일 같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갈고 닦았던 할머니의 터전은 이제 도시 개발 사업으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기억을 담아내려는 작가의 노력은 이쑤시개 끝에서 이루어지며 하나같이 어두운 밤을 묘사하는데, 희망이라 읽고 싶은 별빛만이 하늘 가득 차 있다.
윤이도의 회화가 할머니의 집을 둘러싼 시간을 강렬한 흑백의 대비로 담아냈다면, 김태희는 <하얀 주름>, <낮 주름>, <이동하는 동그라미>에서 밝고 투명한 시각 언어를 구사한다. 작가는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20대 초반, 느닷없이 할머니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다른 세월을 살았던 두 여인은 서로의 예상을 크게 비껴가는 상식으로 서로를 당황스럽게 했고, 이는 곧 작가의 문제의식 저변에 자리 잡는다. 그렇게 작가는 상식이라 여겨지는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에서 출발한 작업의 결과들을 내보인다. 작가만의 또 다른 시선은 일상적인 대상을 조금씩 비틀어 다시 보게 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할머니의 삶을 재조명한다. 작가가 전시장에 재현한 옥탑의 파사드(<하얀 주름>), 옥상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흔적(<낮 주름>), 일조량에 맞춰 매일 2층과 3층을 오가는 화분의 식물들(<이동하는 동그라미>)은 모두 수십 년의 노동으로 일구어낸 할머니의 집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벽돌의 총합으로 여겨졌던 벽은 벽돌과 벽돌을 이어주는 시멘트 없이는 견고하게 서 있을 수가 없고(<하얀 주름>), 화분에 그 주체성이 갇힌 줄 알았던 식물은 동물처럼 허물을 벗고 동그란 화분 속의 흙을 벗어나 삶의 의지를 갖고 나아갈 것 같은 운동성을 지닌다(<이동하는 동그라미>). 할머니의 집과 옥탑의 건물이 옥상 가득 드리우던 그림자가 점차 작아지다 소멸하는 궤도를 따라 쌓아 올린 모래의 흔적으로 해가 뜨고 지는 매일의 시간을 시각화하자, 그제야 할머니가 지나온 수십 년의 노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낮 주름>).
전시 <이삼일더하기일삼일>은 작가들의 개인적이고도 내밀한 경험과 기억에서 출발했지만, 우리의 할머니, 나아가 언제가 될지 모를 우리 스스로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음을 상기해 주고자 한다. 이는 곧 특정 대상을 지칭하기보다는 익명성을 지향하고, 절절한 개인사를 설명하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객관성을 담지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객관적인 수치인 ㎡(제곱미터) 값으로 두 여인의 삶의 터전을 제목에 병기하고, 그 면적을 구성하는 자투리 공간의 모양을 보여주고, 그 집에 거주하던 ‘익명을 호명하기 위한’ 작가들의 노력은 지난한 근대사를 살아냈을 할머니들의 삶을 통속적인 신파로만 풀어내지 않기 위한 시도로 여겨진다. 이쑤시개와 모래알이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냈던 여인들을 기록함으로써 우리에게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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