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을 걸을 때마다 저는 맨덜리 저택과 숲길을 떠올려요. 아, 맨덜리는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1938)의 배경이에요. 여름에는 정원에 장미가 가득하고 해질녘에는 청량한 목소리의 새들이 합창하며 선선한 바람이 불면 밤나무 아래에서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죠.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면 달콤한 시럽이 뚝뚝 떨어지는 따끈한 팬케이크가 식탁에 준비되어 있고 말이에요. 주인공은 작고 허름한 호텔방에서 그 고고하고 아름다운 저택으로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생각하며 600페이지에 걸쳐 이야기를 해요. 100년 가까이 고유한 이름을 가져보지 못한 ‘나’의 입으로 죽어서 한 순간도 극에 등장하지 않는 ‘레베카’에 대해서.
그러니까 레베카는 사람이 아니에요.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라 부를 수 없어요. 그렇다고 혼이라고도 부를 수 없죠. 혼은 확실한 것이 아니잖아요. 그나마 가장 명확하게 레베카를 설명하자면 그녀는 왜곡된 기억이고 기생하는 정보이며 숙명적인 환경이죠. 등장인물이 아니고 배경이랄까. 우아하고 아름다운 맨덜리와 그 속의 인물들은 레베카라는 대기 속에 존재해요. 그건 사라지거나 파괴되는 것이 아니에요. 이야기는 맨덜리가 전부 불에 타 재가 된 후의 시점의 회상에서 시작되는 걸요.
이상이 뚜렷하면 목표가 되겠건만 허여멀건 이상이라면 불안을 유발하기 쉽죠. 고여버린 기억과 상황, 유추에 분절된 말들에 집착하면서요. 그게 문제에요. 사람들은 본인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몰라요. 어설픈 스케치의 이미지와 무드에 홀려 등 뒤에서 미세하게 불어오는 실바람에도 훅 떠밀려 비틀거리며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걸어가죠. 그런 <레베카>는 분명 미스테리이며 스릴러에요. 동시에 목적과 논리를 따르지 않는 사랑이죠. 그래서 전 이렇게 길에서 눈에 띄는 것들을 보면 다짜고짜 주워 봐요. 나뭇가지, 진주구슬, 바퀴, 플로어스탠드, 반짝이, 신발... 전혀 내가 알 수 없는 맥락 속에 뚝 떨어져있지만 그것은 그나마 분명한 실체이니까요. 때로 그건 그럴싸한 위안이 된답니다.
고백을 해보고 싶어요. 모두가 될 수 있는 ‘나’는 이제 사양하면 안될까요? 한 번쯤은 제 이름으로 불안을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제가 그렇게 약한 사람은 아니에요. 약하다한들, 약한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저의 유약함은 당신으로부터 수집되어 뭉쳐진 파편들임을 한 번쯤은 부디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그러기에 세상에 하나뿐인 이 불안덩어리는 꽤나 사랑스럽고 소중하니까요.
전 제 삶에 불만이 없지만 저기의 삶이 살짝 탐나긴 해요. 이 정도면 무난히 행복하지만 저기 있는 행복은 충분히 시도해봄직 해보여요.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도착한 나의 집인 여기는 분명 안전했었는데 더 이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너무 많은 미스테리와 사랑을 주워와 집에 들였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레베카가 이 곳에 온 지 꽤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 글 조정민(화이트노이즈 디렉터)
참여작가: 허수연 주최/협력: 옥상팩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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