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의 밤, 성주, Pigment Print, 270x180cm, 2018
회견이 끝난 후, 성주, Pigment Print, 120x80cm, 2019
Good night, 성주, Pigment Print, 40x26cm, 2017
이재각 작가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국가폭력, 공권력에 의해 밀려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두고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성주, 평택, 군산 미군기지 지역에서 벌어진 공권력에 의해 침탈되는 일상에 주목하며 사진 작업에 대해 고민해왔다. 이번 이재각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여섯 번의 밤, 사라진 말들>에서는 2016년 여름, 경북 성주에 사드(THAAD)배치가 확정된 이래로 구체화시킨 작업들을 전시한다.
누군가는 일상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밤의 시간, 소성리에서는 일상이 송두리째 빼앗긴 시간이었다. 서치라이트처럼 매서운 공권력의 얼굴이 주민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그 속을 헤집어놓았다. 작가는 소성리의 ‘여섯 번의 밤’의 시간동안 대추리를, 평택을, 군산을 떠올린다. 어디 일상이 전쟁터가 된 곳이 이뿐이겠는가.
작가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 더욱이 사진을 통해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고민한다. 그럼에도 반세기나 지난 전쟁과 분단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어지러운 풍경과 그 속에서 사라져버린 주민들의 말들에 대해 사진으로 말하기를 시도한다. “비단 사라진 것이 말 뿐일까. 확장에는 멈춤이 없고, 소멸에는 책임이 없다.” <공간힘>
작가노트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1)
여명의 황새울2)은 그러한 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평택미군기지가 확장될 무렵, 그 풍경들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다. 대추리의 노을 진 황새울 들녘, 달 빛 아래 고개 숙인 벼들, 불타는 논밭과 뜨거운 아스팔트 위 새까만 전투경찰의 군홧발. 스크럼을 짠 방패들 위로 헬기들이 요란스럽게도 날아다녔다. 수많은 사람들이 평택으로 찾아와 함께 걷고, 싸웠다. 대추분교가 부숴 지고 마을 안의 집들이 무너지는 풍경들 또한 잊혀 지지 않는데, 정작 마을 주민들의 얼굴이 그려지지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일본군기지가 미군기지로, 그 미군기지가 다시 확장되는 데는 그렇게 어지러운 풍경들이 있었다.
햇살이 따가운 오후의 한 때였다. 20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 낸 사람들과 공간들 사이에 나는 서 있었다. 노신부의 머리털과 수염은 더욱 새하얘졌고, 기지를 둘러싸고 있던 집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 있는 집 안에는, 이상하게도, 방금 전까지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듯 식탁이며 그릇, 현관의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디로 갔을까, 아니 어디로 사라졌을까. 집 밖에서는 귀를 찌르는 듯 한 전투기의 비행훈련 소리가 공터를 가르고 있다. 군산에서 오후의 한때 주민들은 사라진 채 집들만이 냉기를 품고 있었다.
밤은 금새 찾아 왔다. 그러나 아침이 올지는 알 수 없었다. 차가운 밤의 시간은 그렇게 길고도 깊다. 소성리의 여섯 밤 동안 모든 길이 닫혔다. 골짜기 마을의 적막을 깨고 사이렌소리와 희고 붉은 강렬한 불빛이 사방을 흔들었다. 마을회관 앞 도로에는 전투경찰과 주민들이 뒤엉켜있었다. 경찰의 경고방송과 주민들의 비명소리, 결사 항전 하겠다는 구호들도 서로 부딪혀 갈 곳을 잃었다. 이 아수라장을 가로지르며 THAAD3)레이더와 미사일이 골짜기 위로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들이 봄나물을 캐고 나무를 하러 다니던 산길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였다. 성주에도 미군기지가 들어선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더욱이 사진을 통해 그 것을 말하고자 함은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작전’을 수행하는 성주의 여섯 밤 동안 사람들은 추위에 떨었고, 응급 후송되기도 했다. 여러 밤을 지새우며 나는 그 옛날 평택의 대추리를 생각했고, 사라지지 않는 장면들이 떠올랐다. 군산의 기지를 찾아가게 되었고, 여전히 확장 중인 기지 앞 아무도 없는 빈 집 앞에서 대체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를 묻곤 했다. 얽히고설킨 시간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사라진 것들을 소환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반세기나 지난 전쟁이 만들어 낸 혹은 여전히 만들어 내고 있는 현실에 귀 기울이고 있다. 왜일까. 무엇이 달라질까. 성주에서 겪는 시간들은 그 무모함을 계속 떠올리게 한다. 생전 처음 가는 곳의 나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들이 남긴 말들, 성주에서 그 여섯 밤 동안 주민들이 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찾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먼 곳에 떨어져 있으므로, 오래 헤맬 것 같다.
여섯 번의 밤, 사라진 말들
비단 사라진 것이 말 뿐일까.
확장에는 멈춤이 없고, 소멸에는 책임이 없다.
1) 장 그르니에 「섬」
2)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둘러싼 주민 및 시민사회단체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2006년 5월 4일 경찰과 군대가 투입된 행정대집행. 그 작전명.
3)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체계의 핵심요소
작가소개
사진을 매체로 작업하고 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 혹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에 주목하며 기록하고 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16)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지금, 여기, 우리>(2019), <안녕하제>(2018), <그림 같은 집을 짓고>(2018), <횃불에서 촛불로>(2017)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6년 여름, 경북 성주에 사드(THAAD)배치가 확정된 이래로 이 작업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2006년 평택의 대추리·도두리 마을이 수천의 공권력에 의해 밀려날 때, 언젠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가당치 않은 생각이다. 지나간 사람들, 사라져 버린 공간들 그리고 시간들을 소환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사기지로 인해 곳곳의 마을과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으므로 이 불가능한 일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사진가 노순택 선생님은 어느 글에서 목격자의 책무에 관해 말했다. 그는 그 알량한 의무 따위에 매번 붙들렸다고 했지만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목격하는 것이 우리의 노동임을 말한 것은 아닐까.
불성실한 노동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듣지는 못했다. 사드배치에 맞서 저항중인 성주·김천의 주민들과 간헐적으로 함께하고 있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시간들을 과연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을 품은 채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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