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김동진 <천개의 마음> _ 그리움 따라, Digital Print, 2019
‘나무가 남동쪽으로 누운 채 자라는 이유를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날의 눈보라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 <남동으로 눕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시를 쓰고 사진을 찍는 김동진은, 시인이자 사진가이기 이전에 산을 즐겨 다니는 산행자(山行者)다. 정상을 정복하려들기보다는 이산저산 산의 여기저기를 산책하듯 다닌다는 점에서 산악인보다 이 수식이 더 어울린다. 그의 산행은 어느 날 산책 삼아 오른 인왕산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후로 10년 동안을 도심의 일상과 산의 등고선 사이를 쉼 없이 오고갔다. 주로 혼자서 다녔다. 새벽에도 오르고 밤에도 오르고, 비가 오거나 눈이 쌓여도 올랐다.
그에게 산행은 위의 시에서처럼 눈보라를 만나는 일이고, 눈보라를 통해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일이었다. 그는 그 숱한 만남들을 기억으로만 흘려보낼 수가 없어서 풍경을 사진 찍고, 순간순간의 사유를 시로 썼다.
북서풍으로 몰아치는 눈보라에 남동쪽으로 누운 채 자라는 나무 <남동으로 눕다>, 흰 구름을 배경으로 선명한 날개깃을 드러내며 비상하는 새 <날아오름>, 눈 덮인 모래사장 위에 찍힌 바다를 향해 난 발자국 <그리움 따라>, 검은 산 능선 위로 별들이 가득 흩뿌려져 있는 밤하늘 <달달 허다>의 풍경들은 ‘김동진의 사진’이 되었다.
나무를 떠난 꽃잎이 연못을 떠돌다 다시 꽃으로 피는 것을 보았다 <다시 핀>, 검은 하늘이 어느 순간 시퍼레지는 새벽도 만났다 <불쑥>, 걷다 보면 벼랑 끝에 설 때가 있었고, 고개 들어 멀리 보면 지나온 길이 산그리메로 아름다웠다 <걸어가는 길>, 천불동 오르던 밤에는 천개의 마음이 왔다 갔다 <천개의 마음>은 ‘김동진의 시’가 되었다.
오는 10월 1일부터 류가헌에서 열리는 김동진 사진전 <천개의 마음>은, 그렇게 10년 동안의 산행에서 얻은 사진과 시를 한 데 묶어 여는 전시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산행 장소인 설악산 천불동에서 쓰인 시가 제목이 되었다. 전시장에는 모두 41점의 사진들이 전시 되고, 60여 편의 시가 담긴 사진집이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어 선보인다.
가을의 초입에서, 시각 언어와 시어가 합심해 우리를 감성의 시공간으로 이끈다. <사진위주 류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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