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가희갤러리는 오는 3월, 아라타 미노(b.1987, 일본)의 개인전 《조용한 생활과 사소한 점유(Still Life with Minor Occupations)》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당연하게 여겨온 평온한 일상이 실상은 거대한 역사적·정치적 힘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리고 ‘점유’당하고 있다는 작가의 시선을 시각화하여 선보인다.
전시의 영문 제목인 ‘Still Life’는 흔히 회화의 ‘정물’을 뜻하지만, 아라타 미노에게 정물은 멈춰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역사의 풍랑 속에서도 미세하게 진동하며 지속되는 삶의 형식을 의미한다. 작가는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일상의 장면에 식민주의의 역사, 전후 국제 질서, 군사 동맹의 구조가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직접적인 구호가 아닌 사물과 풍경, 그리고 신체의 경험을 통해 서서히 드러낸다.
전시장의 중심을 차지한 설치 작업 〈사소한 점유〉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골동품 시장에서 수집한 ‘미 점령기 일본 제작(Made in Occupied Japan)’ 낙인이 찍힌 도자 인형들을 전시 공간으로 소환했다.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연합군 점령하에 있던 일본에서 수출용으로 생산된 이 인형들은 그 자체로 전후 질서와 권력 관계의 물질적 증거다. 얇은 천에 감싸인 채 초록색 군인 장난감(그린 아미맨)에 포위된 인형의 모습은 보호와 통제, 돌봄과 감시가 중첩된 복합적인 상황을 연출하며, 거대한 역사가 어떻게 사소한 사물의 형태로 우리 곁에 잔존하는지 묻는다.
시선은 전시장 벽면을 채운 사진 시리즈 〈해안에서의 시선〉과 〈온실로부터 바다에〉로 이어진다. 비무장지대(DMZ), 진주만, 그리고 부산과 후쿠오카를 잇는 해협의 풍경들은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모두 버스 창문이나 배의 갑판 같은 특정한 ‘경계’ 위에서 촬영되었다. 작가는 매끈한 풍경을 제공하는 대신, 관람객으로 하여금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타자와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자각하게 만든다.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이 파편화된 이미지들은 전시 공간 안에서 나란히 병치되며 국가 간의 관계와 기억의 층위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전시의 마지막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행위인 ‘호흡’에 집중한 퍼포먼스 영상 〈숨을 이어가다〉가 장식한다.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업은 들숨과 날숨 사이의 미세한 흔들림을 통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도 끝내 포섭되지 않는 개인의 실존적 리듬을 보여준다. 도자 인형이라는 사물, 역사적 풍경의 기록, 그리고 숨 쉬는 신체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서로를 반사하며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 ‘사이의 상태(in-betweenness)’를 형성한다.
일본 작가로서 아라타 미노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사이의 복잡한 역사를 외부자가 아닌 ‘내부의 관찰자’로서 응시한다. 이번 전시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 대신 세계의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이며,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의 구조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참여작가: 아라타 미노 (Arata Mino)
글/인터뷰: 인가희
후원: 후쿠오카현 「신진 예술가 활동 지원 사업」(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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