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건들
이번 기획은 완성된 형상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다섯 명의 작가와 큐레이터가 함께 구축한 실험의 과정을 전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다시 구성해보는 시도다. 각기 다른 시점에서 진행된 ‘큐레이터의 작업실’ 릴레이 프로젝트를 통해 형성된 일련의 실천적 조건들이 하나의 장면으로 연결되고, 다시 분기되는 지점에 놓인다.
여기서 전시는 종결의 도착지가 아니다. 실험이 사회화되는 중간 단계이자, 감각과 판단이 응축되어 외부와 만나는 형태로 제시된다.
축적된 실천 위에서 다섯 개의 프로젝트가 형태(形態), 상태(狀態), 태도(態度)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교차하도록 기획되었다. 전시 제목인 ‘태(態)’는 바로 이 다층적 접면을 가리킨다.
‘형태’는 시각적으로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주변 조건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되는 유동적 구조다. 어떤 작업은 평면 위에서 감정의 리듬을 설정하고, 또 다른 작업은 오브제를 통해 감각적 간극을 설계한다. 반복과 교란으로 흐름 자체를 재조정하는 경우도 있다. 조형은 시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촉각, 거리, 방향, 동선 같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개입하는 흐름의 일부가 된다.
‘상태’는 작업이 머무는 방식이자, 감각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전시장 안의 작업들은 완결된 형상으로 고정되기보다, 감정이나 감각의 흐름 속에 침잠하거나 부유한다. 설명되지 않으며, 쉽게 지시되지도 않는다. 해석의 틈, 인식의 오차, 감정의 유예를 통해 상태는 끊임없이 조정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다. 각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각을 설계하고 조형을 실천한다. 반복되거나 의도되지 않은 움직임을 감각적 장치로 삼고, 닿을 수 없는 촉각의 유예를 공간의 리듬으로 전환하거나, 시선을 분산시키고 설명을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조형을 구성한다. 이는 고정된 규칙이나 정답이 아닌, 작업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큐레이터는 이러한 실천의 리듬을 하나의 구조로 직조한다. 전시라는 형식은 결과의 도식이 아니다. 과정의 틈새에 머무는 장면이며, 감각의 리듬과 판단의 거리, 실패와 조정이 유동적으로 교차하는 현장이다. 그렇게 이 장면은 ‘보여줌’이 아니라, 지속 중인 실천의 한 단면으로 존재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감각을 설계하고 구조를 재편하는 다섯 개의 실험이 한 공간에서 얽히는 순간이 기록된다. 각 작업은 개별적으로 완결되지 않은 채, 다른 작업과의 우연한 접촉과 상호 의존 속에서 의미를 생성한다. 그 과정에서 형태·상태·태도의 경계는 흐려지고 재구성된다. 관객은 완성된 답안을 마주하는 대신, 변화하는 조건과 리듬의 현장을 거닐며 감각이 어떻게 생성되고 조정되는지를 직접 체험하게 된다. 이 장면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감각의 구조를 함께 살아보는 하나의 시간으로 남는다.
정찬용
☆Donation:
UNOCCUPIED GAPS are a place where some substance or object can exist or where something can happen.
공간은 어떤 물질 또는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