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연장해야 할 경험들의 합(合)일뿐1
글 : 김선옥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가장 오래된 서정시로 알려진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우리에게 익숙한 구절로 시작한다. 강을 건너려는 백발의 미치광이 ‘백수광부’를 말리는 그의 아내가 등장하고, 결국 남편이 물에 빠져 죽자, 아내도 한탄하며 노래를 부르다 죽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뱃사공 ‘곽리자고’가 자기 아내 ‘여옥’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여옥’은 ‘백수광부’의 아내가 부른 노래를 이어 불렀다. 이별과 죽음을 표현하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집단 서사시가 개인적 정서를 담은 서정시로 변화했던 시기를 대표하는 고대 시가이다.
《수림미술상 후보 작가전 2022》(2022,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서인혜는 어머니의 노동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지역의 레지던시에 머물면서 만난 할머니들을 리서치한 과정을 설치, 영상, 사운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언어화를 시도했다. 이번 전시 《공무도하》에서 작가는 모계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적 서사와 정서를 예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서인혜가 영상 작품 <방울물 여인>(2023)에서 인용하기도 한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작품 구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의 소설은 자신의 존재적 기원과 사적인 이야기를 다루되, 이것을 사회적으로 확장하면서 일반적 자전 소설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인혜가 작업에서 지속해 다루고 있는 불완전한 ‘파편들’, 탈중심적인 ‘주변부’에 관한 관심과 여성, 모계에 관한 이야기는 굳이 거대한 동시대 포스트 휴먼 담론에 기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대적 흐름을 같이 한다. 작가가 주목하는 미시적인 세계는 그의 작업에서 새로운 기호와 언어로 작동하면서, 고정된 위계를 다시 설정한다.
《공무도하》는 2층-1층-지하의 순서대로 구성되어 수림큐브 6개의 공간을 유기체처럼 연결하고 있다. 6개의 다양한 조각들은 한데 모여 이야기를 완성한다. 작가의 외할머니 생전에 함께 여행했던 기억부터 시작하여 모계의 유전으로 이어지는 신체적 통증의 원인을 시간을 거슬러 추적한다.(2층) ‘물’을 매개로 이어지는 생사는 고대 서정시와 작가의 경험이 중첩되어 새로운 풍경이 된다.(1층) 광물질로 남겨진 사라진 존재는 반복되는 노래를 통해 영속성을 획득하고,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에서 새로운 질문들이 이어진다.(지하)
1. 비연대기적 시간에서 반복되는 것들 (2F)
2층의 왼쪽 방에서 마주하게 되는 영상작품 <방울물 여인>(2023)은 서인혜가 외할머니와 함께 여행하면서 방문했던 나이아가라 폭포에 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때와 현재의 시차에서 사라진 이를 기억하기 위해 작가는 그 흔적을 찬찬히 더듬는다. 하강하는 물의 중력을 거스르며 폭포수가 상승하는 것처럼, 혹은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가 자신의 아버지 우라노스가 바다 물거품으로 변한 극악한 상황을 극복하고 조개껍데기에서 태어난 것처럼, 초월한 죽음은 결국 다시 생이 된다.
서인혜는 어렸을 적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욕망과 더불어 모계 유전에서 기인하는 발의 무지외반 통증을 고대 해양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건너편 방에 설치된 드로잉은 얇은 순지 위에 다양한 지느러미의 외형이 드러난다. 인간의 발이 이토록 유약한 이유는 어쩌면 고대 생명체의 지느러미가 온전히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상상했을 것이다.(<지느러미 발>(2023))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다양한 이미지의 몽타주로 제시되는 작가의 이야기에서 시간은 반드시 연대기 순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2. 아무리 막아도, 일어날 어떤 일은 일어난다는 것2 (1F)
계단으로 내려와 1층 오른쪽 방을 들어서면 푸른빛이 감도는 기묘한 장면을 마주친다. 낯선 생명체처럼 보이는 <백수광부의 눈>(2023)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백수광부, 걸음이 불편했던 작가의 외할머니, 그리고 작가가 만났던 할머니들의 발걸음을 보조하는 지팡이가 결합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형상으로 존재한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등장인물 ‘곽리자고’와 ‘여옥’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다. 물에서 태어나 다시 물로 돌아가는 ‘백수광부’는 생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순환에서 존재한다. 그와 그의 아내 죽음이 단지 비극만은 아닌 까닭이다. 죽음으로 끊어진 노래를 자신의 목소리로 이어 부르는 ‘여옥’은 자신의 언어로 끊임없이 세계를 재현하는 작가와 닮지 않았는가.
1층 왼쪽 방은 다양한 형상의 파편들이 모여 있다. 물을 건너다 죽음에 이른 존재는 결국 물속에서 광물질이 되었다. 서인혜의 작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이어진다. 리서치 작업 중 만났던 할머니들의 꽃무늬 패턴 의복이 마치 물고기의 비늘(scale)처럼 작가에게 느껴졌고, 이것은 비늘의 영어단어 ‘scale’의 다른 의미인 ‘음계’로 연결되어 <율과 비늘>(2023)로 구현되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국악의 12율을 우리나라 타악기 편경으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밀양의 만어사에 내려오는 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새로운 거처를 찾는 용왕의 아들을 따르던 수많은 물고기가 만어사에 도착하자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는 고대 설화가 있는데, 조선시대 세종이 이 돌로 편경을 제작하려 했으나 소리가 일정하지 않아 결국 악기가 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선택받지 못하여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과거의 음/돌은 이번 전시에서 무수한 조각이 되어 현존할 수 있게 되었다.
3. 끊어지고 이어지고, 내려가고 올라가고 (B1F)
지하 왼쪽 방에 위치한 거대한 광물질의 합은 소리를 내며 공간을 채우고 있다. <긴힛ᄃᆞᆫ
그츠리잇가>(2022)는 고려 가요 <정석가>에 나오는 구절 중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라는 의미로, 결합과 소통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죽음은 순간적인 단절일 수 있지만, 이것을 극복하고 승화시키려는 의지로 우리는 생을 이어간다. 영상에서 해금, 거문고, 피리로 ‘시김새’가 반복적으로 연주된다. ‘시김새’는 전통음악에서 중심음과 중심음 사이를 연결하고 꾸며주는 장식음이다. 도레미파솔 같은 정음들 사이에 존재하지만, 정의 내려지지 않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간주하는 수많은 주변음을 의미하는 ‘시김새’는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며 조형과 음향의 외양으로 작동한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방에 붉은색 커튼이 둘러싸인 <무너진 모퉁이의 노래>(2023)가 있다. 작가가 만났던 할머니들의 읊조림, 표범 무늬와 호피 무늬,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1985), 그리고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1936)을 영화화한 <킬리만자로의 눈> (1952)의 다양한 이미지와 사운드가 반복적으로 교차한다.
서인혜는 일종의 매개자 역할을 자처한다. 이번 전시는 ‘물’에서 시작하여 ‘산’으로 귀결된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배경이며, 외할머니와 공존했던 중요한 장소인 ‘물’은 중력에 의한 ‘하강’을 의미한다. 반면, 초원에 서식하는 표범이 기어코 눈이 덮인 높은 ‘산’의 정상을 오르는 의지는 ‘상승’을 표현한다. 이처럼 작가는 생과 사, 이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 등의 경계에서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려 부단히 애쓴다.
작가는 꽃무늬 의복 패턴, 표범 무늬 같은 기호를 직관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표면에서 작동하는 기호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온갖 불온한 세속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표범 무늬가 사실은 표범이 사냥 위장술의 형태로 가죽의 반점을 스스로 진화시킨 것이고, 작가는 이를 “자연계에 섞이기 위해 진화한 검은 매화”라 했다. 이것은 결국 ‘껍데기’가 단지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강조하는 것이다. 세련되고, 정제된 것은 때때로 본심을 숨긴다. 날것의 투박함은 때때로 오해를 쉽게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껍데기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속에 어떤 ‘진심’이 있는지 직접 껍데기를 들춰보지 않고서는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의 서쪽 봉우리에 얼어붙은 의문의 표범 시체가 하나 있다. 넓고 푸른 세렝게티 초원을 벗어나 해발 5,895미터의 높은 설산 꼭대기에서 표범은 과연 무엇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작가가 끊임없이 찾아 헤매고 있는 것, 이번 전시에서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의 답에 가까워지는 과정일 것이다. 그 답의 단서는 예측할 수 없는 먼 미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서인혜의 시간에서 “미래는 연장해야 할 (과거의) 경험들의 합(合)”인 까닭이다.
---
1.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세월」, 신유진 역, 1984BOOKS, 2022, p. 98.
2. “물을 건너지 말라” 한다.(공무도하 公無渡河) 이 다음 구절은 ‘공경도하 公竟渡河’, 임은 기어코 물을 건너셨네. ‘무’는 여기서는 ‘없음’이 아니라 ‘없어야 함’이다. 어떤 일을 행하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이 글자에 담겨있다. ‘경’은 ‘마침내’ 혹은 ‘드디어’를 뜻하니, 이는 어떤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지시한다. 요컨대 이 노래는 간절한 ‘무’를 냉혹한 ‘경’이 무너뜨리는 구조로 돼 있다. 인생에는 막으려는 힘과 일어나려는 힘이 있다는 것, 아무리 막아도, 일어날 어떤 일은 일어난다는 것. (신형철, 『인생의 역사』, ㈜난다, 2022, pp. 34-35.)
☆Don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