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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ky vicky, 재야의 고수 | ARTLECTURE

Lucky vicky, 재야의 고수

-에피메테우스의 서른일곱 번째 질문 - <안티 셀프:나에 반하여 UNDOING ONESELF>, 아르코미술관, 25.8.22~10.26 <올해의 작가상 2025>, 국립현대미술관, 25.8.29~26.2.1 中 작가 김지평-

/Picture Essay/
by youwallsang
Tag : #동양화, #에세이
Lucky vicky, 재야의 고수
-에피메테우스의 서른일곱 번째 질문 - <안티 셀프:나에 반하여 UNDOING ONESELF>, 아르코미술관, 25.8.22~10.26 <올해의 작가상 2025>, 국립현대미술관, 25.8.29~26.2.1 中 작가 김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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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작가의 전시는 깨방정을 떨던 내 기대와 상관없이 동행의 눈치를 살피게 했다. 시간의 존재를 가볍게 걷어차며 말을 잃게 만드는 작품 앞에서, 해석 불가능의 난해함이 뒷덜미를 자극했다. 그 덕에 숨죽였던 승모근이 날개를 펼치며 부스스 몸을 떨었다. 유난한 피곤이 몰려왔다. 동행의 얼굴에도 막막함이 스몄다. 이런… 이를 어쩐다… 그때, 정체불명의(!!) 동양화가 눈을 비집고 들어왔다. 어라랏~! 맛집 옆에 더 맛집! 럭키비키!

배경 이미지(<The world spins>, 2023, 한지에 혼합 재료 안료, 금은박, 160X130)


<두려움 없이>, 2014, 한지에 채색, 족자, 70X130



삽살개로 보이는 붉은 짐승에 올라탄 문신녀의 하반신이 달빛에 하얗게 빛난다. 투명한 옷자락은 마치 우주의 장막처럼 여인의 손과 발을 타고 엷게 번진다. 앞 뒤꼬리가 선하게 처진 짐승의 눈들이 형형하게 불을 밝히며 상글거린다. 삽살개는 귀신을 잡는다던데, 덜컥 발을 잡혔다. 이 요사스러움은 K-열풍의 한 자락일까? 불당에 걸기엔 요사스럽고, 사당에 걸기엔 경망스럽고, 당집에 걸기엔 지나치게 사적私的이다. 한갓진 책 뒤편으로 슬그머니 숨겨두다 남몰래 꺼내 보며 가슴께나 들썩일 그림이랄까. 이국의 여신을 닮은 여인의 뒤로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빛난다. 늑대를 타고 뛰놀던 여인들의 머리칼처럼 그녀의 보이지 않는 얼굴 위로 바람이 분다.

 


<없는 그림>, 2021, 유리 진열 장식에 실크스크린, 60x60x190



서로 맞받아 비치는 글자들이 너무 투명해서 오히려 불분명한 말이 되어 매끈한 유리 위에서 흔들린다. ‘없는 그림에 아낌없는 찬사와 경탄을 보내는 글만새겨져, 한때 존재했었으나 지금은 부재 하는 것을 기록한 비문碑文과 다르지 않다. 옛글의 감탄이 길수록 지금의 안타까운 마음은 반질반질 닳아, 투명해진 유리 위로 미끄러진다. 글로만 남겨진 그림이라, 사라진 그림이라, 소문만 남은 그림이라, 부재를 확언해 그 존재는 더욱 확실하지만, 어디에도 본 눈은 없다.



 <와 가루> 부분, 장지에 채색, 목탄 가루 먹, 130X410



시인 소세양이 신사임당의 산수화를 보고 쓴 시를 바탕으로 그린 이 작품의 본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리 비석과 그림 사이를 오가며 근거를 찾고 기원을 더듬느라 시간이 훌쩍 지난다. 이 쓸데없는 확인을 계속하는 이유는, 모든 기원에 대한 인간적 집착 때문일까. 작가 김지평은 문헌으로만 남겨진 그림의 자취, 흔적()은 남았지만, 존재(그림)는 사라진 작품을 복원(!)한다. 그건 신사임당 성대모사처럼 황당하고 기발하다. 시간의 순서대로 평탄하게 흘러가는 서사가 아니라, 어떤 경로는 과감하게 뛰어넘고, 어느 부분은 거침없이 생략해 완벽하게 새로운 서사를 세운다. 존재의 근거와 부재의 확인이 꼬리를 문 뱀처럼 빙글빙글 돈다. 과거는 꼬리 물린 미래며, 빙글거리는 이 상황이 바로 현재다.



 <산수화첩>, 2023, 화첩 위에 중고 병풍에서 떼어낸 산수화 혼합 재료 콜라주, 유리 쇼케이스, MDF 인테리어 필름, 벽돌 시멘트, 165X46X25



김지평 작가가 <올해의 작가상 2025>에도 등장했다. 또 한 번 깨방정을 떨며 동행을 부추겼다. 이번엔 팝업pop-up이다. 2차원의 평평한 산수가 3차원의 입체로 일어섰다. 중고 병풍에서 오려온 이미지를 택배 상자와 나무막대에 기대 동양 산수의 깊이감을 감각하게 만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위가 물러서고 날 것들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쉽고 친근한 감각의 전환은 세계의 지각을 바꾼다. 몸의 감각이 앞장서 심드렁했던 과거의 가치를 환기한다. 작가가 일으켜 세우고 싶던 이미지, 그리하여 새롭게 다시 조명되는 이미지는 1980~90년 중반까지 대량으로 복제되고 보급됐던 중고 병풍에서 얻은 것이다. 좌대는 아파트 인테리어 물품을 사용했고 유리 케이스는 박물관의 쇼케이스를 이용했다. 어느 하나 제 자리를 지킨 것은 없지만 그래서 더욱 현실감이 느껴지는 pop-up이다. 전통의 산수화가 품은 이상향이 복제되고 폐기되었다가 다시금 벌떡 일어나 지금-여기를 단단하게 딛고 선다. 반드시 따라야만 하고 결코 벗어나서는 안 되며 마침내 지켜줘야만 하는 것은, 세상에 없다.

 


<다성 코러스>, 2023~25


<다성 코러스> 부분



예와 격식을 따지던 때에 병풍은 모종의 경계를 구분 짓는 역할을 했다. 차원을 나누는 일을 하기도 했고, 경계를 세워 서로 오고 가는 것을 금하기도 했다. 부정과 흉을 가리는 데 쓰이기도 했고, 마땅한 무엇을 지키기 위해 파수꾼으로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병풍'은 속된 말로 들러리를 뜻한다.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군더더기, 중심이 되지 못한 변방, ‘우리라는 세상의 가장자리’. 갖은 색과 다양한 소재로 꾸며진 병풍들이 나름의 마이크를 앞세우고 당당하게 서 있다. 병풍의 명칭들이 여인의 복식 이름과 맞닿아 있다고 한다. 치마-소매-입다. 작가의 병풍들이 알록달록 다양한 재질들로 한껏 치장하고 있는 것이, 마치 목소리를 잃은 여인들에게 보내는 연서戀書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내 기분 탓일까. 주류에서 비껴 난 모든 비주류, 중심에서 탈락한 모든 주변, 세상의 가장자리로서의 여성. 마이크를 잡은 그들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귀 기울여 듣는다면 그 내용 또한 범상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온갖 화려한 마이크들의 군무 중에서 단연 으뜸은 소주병에 꽂힌 숟가락 마이크다. 어떤 시절, 어느 계급, 어느 심성을 고스란히 전하는 그 자태는, 올 곳이 당당하다. 저 마이크만큼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빼앗기고 망가져도 다시 만들어지는, 자기 힘으로 되살아나는 목소리이다,

 


<The world spins>, 한지에 혼합 재료 안료, 금은박, 160X130



작가가 건네는 목소리 없는 것들의 존재감에서 예술가의 헌신을 본다. 밀려나는 것들, 사라지고 없는 것들, 미처 알아주지 못한 것들, 그 모든 사소하지만 위대한 것들에 보내는 작가의 시선에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또 다른 전통을 본다. Lucky vicky! 오히려 더 좋아!

여전히 낮은 곳, 무게를 가진 모든 것들이 흘러와 고인 곳으로 작가의 맥박이 뛰고 있다. 두근거림의 끝에는 무림의 강자로 권력을 휘두르기보다 잊히고 사라지려는 것들을 불러일으켜 세상의 균형을 이루는 재야의 고수가 있었다. Brava, 재야의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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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youwall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