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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쫓아 눈으로 듣다. | ARTLECTURE

소리를 쫓아 눈으로 듣다.

-에피메테우스의 스물다섯 번째 질문-

/Art & History/
by youwallsang
Tag : #감각, #소리, #사운드
소리를 쫓아 눈으로 듣다.
-에피메테우스의 스물다섯 번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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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2015 생생화화生生化化: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 창작지원사업 <시간수집자Time Collector> 展, 전명은, <새와 우산,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방법>, 2015.11.26.~2016.1.24, 경기도미술관

오래전, 라디오에서 드라마를 했었다. 흔하디흔한 멜로드라마거나 '격동의 세월' 어쩌고 하는 역사드라마였다. 소리를 쫓아 머리로 이미지를 떠올려야 했던 라디오 드라마는 듣는 내내 이상하게 흥미진진했다. 악역의 여인은 언제나 뾰족구두 소리를 냈고, 바람은 실제보다 요란했으며, 숨소리는 감출 수가 없고, 심장박동조차 자동차 경적만큼이나 튼튼하게 울렸다. 세상 모든 이미지가 자신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눈은 있으나 마나, 오로지 귀로만 세상이 들어오는 요지경이었다. 만들어진 소리는 실제를 뛰어넘었고, 보이는 소리는 상상을 타고 넘었다. 감각이 사기詐欺를 꾀하고 서로 사통私通하며 인식의 규칙을 휘젓는다, 즐겁게, 보란 듯이, 어느 한 감각에만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

<새와 우산 Introduction>, 가변설치, 혼합재료(나무바닥, 마이크, 스피커), 2015

 


길고 좁은 통로는 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하얀 벽과 하얀 천장을 붙잡은 마룻바닥을 흔드는 장중한 울림. 걸음은 반사적으로 멈칫거린다. 긴 우주 비행을 끝내고 지구로 돌아와 실감하는 중력의 강력함처럼, 바닥을 때리는 소리는 무겁다. 소리가 증폭되는 바닥은 걸음의 수 만큼, 주저하는 순간만큼 가차 없이, 온전한 나를, 하나의 음으로 표현한다. 나는 소리를 내는 인간이다.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 시끄럽고 요란한 인간이다. 어떤 리듬처럼, 길게는 어떤 음악처럼 울리고 싶지만 훈련되지 못한 몸은 소음으로 남는다. 의미도 없고, 주제도 없이 산만하기만 한 음. 그게 아쉬워서 콩- 발끝으로 바닥을 찧는다. 스타카토! 새침하고 뾰루퉁한 소리가 벽에 부딪혀 나동그라진다. 머쓱하고 민구스런 순간이다. 변명 한번 없이 순정하게 드러나는 순간. 나는 소란스럽고 대중없는, 보잘것없고 음악이 되지 못한, 소음투성이이다. 내 발걸음이 나다.

 


<새와 우산 n.23>,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라이브톤, 일산, 120X90, 2015

 


마이크 아래 수북이 쌓인 신발들은 짝을 찾지 않는낱낱의 개인처럼 등을 돌리고 있다. 신발의 숫자만큼 웅성거리고, 구겨진 뒤축만큼 내보여지는 각각의 삶. 발걸음에 담긴 소리, 불규칙하게 리듬을 타면서 내보이는 감정의 굴곡. 누군가 주인 없는 신발에 이야기를 입힌다. 효과맨(Foley Artist:음향을 만드는 사람)은 사물을 이용해(청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이용해) 청각적 효과를 재현한다. 주인 없는 신발이 구체적인 한 인간을 만들고, 구르는 바퀴와 철판이 허공을 가르는 바람이 되고, 펄럭이는 우산이 젖은 새가 되어 날갯짓한다. 서로 간섭하지 않는 사물들이 효과맨의 지휘 아래 자리를 바꾸며 목청을 돋운다. 효과맨의 사물들은 소리의 정물이 되어 낯설게 고정된다.

 


<새와 우산 n.39>,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폴리 아티스트 문재홍이 사용한 도구, 54X40.4, 2015

 


포실한 하늘색 고무장갑이 길쭈름한 고무 손가락을 내맡긴 채 ?’ 하는 얼굴로 늘어져 있다. 작가 전명은의 사진 작업은 소리와 소리를 만드는 사물이 대치하는 뜬금없는 장면을 강조하기 위해, 선명한 색채와 이질적 질감을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하얀 가루가 분분한 하늘색 고무장갑을 비비는 손끝에서 으로는 상상하지 못한 눈소리가 들려온다. 뽀드득뽀드득- 머릿속으로 눈밭을 거니는 한 인간의 무게가 그려진다. 소리와 소리의 재현 사이에 서로 겹쳐지지 않는 틈새로 감각이 흐른다. 도무지 같이할 수 없는 것들의 부딪힘, 맞닥뜨림, 스며듦. 소리는 가리키는 현상 자체와 같지 않다. 소리는 효과맨의 손에서 창조되어 실재보다 더 진짜 같은 이미지를 우리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낸다. 모든 감각을 시각적 형태로 소환하는 시각예술가에게 감각들의 교차 가능한 표현체계는 다시 시각적 표현으로 치환된다. 수어手語, 사물이 창조하는 낯선 소리, 변용된 소리로 바뀐 사물들의 정물still life. 사물의 감각을 통해 소리를(청각적 효과) 재현하는 효과맨은 모든 감각을 시각으로 재편하는 예술가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새와 우산> 시리즈

 


"그건 여름날의 더딘 땅거미처럼 왔어요.



(<보르헤스의 말> , 윌리스 반스톤, 마음산책, 2015)

눈이 먼 보르헤스는 도서관의 책들이 활자 없이 하얗게 되어 버린 꿈을 꾸었다. 텍스트를 잃은 책이 펄럭거리는 새가 되어 손안의 모이를 찾듯 날아든다. 이제, 책이 나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의(혹시 있을지 모를) 텍스트가 날아온 새의 먹이가 되어 나를 사라지게 할 차례다. 활자를 잃고 친구의 얼굴을 잃고, 마침내 거울 속의 자신조차 잃었다는 보르헤스는 모든 것을 다 잃고서야 자유로운 한 마리 책만을 키우게 된 것은 아닐까. 눈먼 자에게 미술관은 어떤 곳이 될까. 미술관의 냄새만으로도 회화를 상상할 수 있을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조각 앞에서 손을 비비며 무엇을 떠올려야 할까. 감각의 부재만큼이나 감각의 과잉 또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시력 3.0이 넘는 어린 사사키(<바스러진 대지에 하나의 장소를>, 사사키 아타루, 여문책, 2017)는 현대의 삶을 살기에는 버거운, 도시적 삶을 살기에는 지나치게 피로한 눈을 가졌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과 다르지 않다. 부재는 과잉과 동의어다. <반짝이는 워터멜론>(tvn 2023.9.25~11.14. , 화 드라마) 속 하이찬(최현욱 분)은 청력을 잃고 좌절한다. 그건 소리만이 아니라 음악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를 절망에서 일으켜 내일을 꿈꾸게 한 것은 감각에 대한 기억이었다.



18년 동안 들었던 소리를 기억해.”




우리는 어떤 감각 하나를 잃더라도, 다른 감각으로 이미지를 재건할 수 있다. 감각은 하나이면서 전부다.

*배경 이미지(<새와 우산 n.3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76X10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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