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보고 자야지.” 오늘도 우리는 잠을 청하기 전 침대에 누워 내 손 크기 정도 되는 핸드폰 화면을 보며 점점 빠져든다. 그러다 실수로 핸드폰 전원 버튼을 누른 우리는 검은 화면에 비친 나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화면의 나 자신과 눈이 마주친 그때 ‘자야 하는데 뭐해.’하는 허무함과 미디어가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상실감에 허둥지둥 다시 핸드폰을 켜 검은 화면에 비친 나 자신의 얼굴을 애써 외면하고자 한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발전된 미디어를 매일 재밌게 소비하지만, 한편으론 미디어 속으로 도피하는 불안함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현대인들이 매일 소비하는 미디어를 중심으로 작품은 다시 이 시대 현대인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오늘도 당신은 이 미디어 소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기술과 미디어를 소재로 한 <블랙 미러>는 옴니버스 형태의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가 항상 미디어에 휩쓸려 다닐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뗄 수 없는 미디어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면서 미디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인간의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준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마치 실험이 되어 미디어 세상이 대중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대중들은 그 미디어를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블랙미러 시즌1 공주와 돼지
그 첫 번째 실험인 <블랙 미러>의 ‘공주와 돼지’ 편에서는 ‘자극적인 미디어에 휩쓸리는 대중과 인간의 존엄성 가치’에 대한 실험을 보여주었다. 극 중 납치된 공주를 구하기 위해서 총리는 돼지와 섹스를 해야만 했고 그 모습을 실시간 생중계로 방송해야만 했다. 즉, 한 인간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상황이었다.
총리는 결국 공주를 살리기 위해 돼지와 섹스를 선택한다. 국가는 생중계 방송을 하기 전 영국 시민들에게 돼지와의 섹스 방송을 보지 않기를 권하였으나 대중들은 TV 앞으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으며, 방송이 시작될 시간에는 길거리에 사람이 전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납치범은 국가를 농락하듯 공주를 방송 30분 전 풀어주었다. 그러나 ‘공주의 생존’은 ‘돼지와의 섹스’에 가려져 공주가 풀려나고 한참 뒤에나 구출되었다. 영국 국민은 과연 공주가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를 바란 것일까? 오로지 총리의 외설적 행위가 궁금했을까? 어쩌면 공주가 처음 납치됐을 때부터 전무후무한 돼지와의 섹스 방송만을 기대한 것일지 모른다.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TV를 바라보고 있는 영국 국민의 모습은 현시대 미디어 세상에 장악당한 현대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블랙미러 시즌1 공주와 돼지 중
작품은 보는 우리에게도 작품은 하나의 실험에 초대한다. ‘당신도 이 자극적인 미디어 소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인간은 건전하고 은은한 재미보다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재미에 빠지기 쉬운데 자극적인 재미를 곁들인 미디어를 자신만의 가치관과 올바른 판단으로 판단할 수 없다면 결국 미디어의 흐름에 휩쓸리고 현혹될 것이다. 작품은 이런 자극적인 미디어 소비 현상이 당신에게도 오늘 당장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TV 앞에 모인 영국 시민의 모습을 통해 말한다.
결국엔 자극적인 미디어를 자신의 가치관으로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올바른 가치관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작품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극 중에서 ‘돼지와의 섹스’를 생각한 사람이 현대 미술가라는 설정이 나온다. 즉, 작품은 예술은 도덕과 윤리적 관점에서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라는 질문까지 우리에게 던진 것이다. 이 미디어가 도덕적으로 올바른가, 참인가 거짓인가에 대해 나 자신이 올바른 생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때 우린 온전한 인간으로서 이 실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선 영국 국민이 실험의 대상자였지만 현시대엔 우리 모두 미디어의 실험 대상자이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실험이 실험인지도 모른 채 빠르고 자극적인 미디어를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돼지와의 섹스 방송을 보기 위해 TV 앞에 선 영국 국민’ 처럼 미디어에 휩쓸려 진짜 봐야 할 ‘공주의 생존’을 보지 못한 채 미디어에 현혹되고 선동될 것이다. 지금도 각종 SNS와 플랫폼엔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널리 퍼져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아무것도 모른 채 콘텐츠를 소비하며 그들의 실험에 무조건 동의할 것인가? 나만의 가치관으로 실험에 참여할지 안 할지 판단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몫이다. 실험의 대상자가 될 것인지는 스스로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오늘 밤도 내 손 크기 정도 되는 핸드폰 화면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오늘도 이 실험에 참여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