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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생각과 최초의 떠오름 | ARTLECTURE

혼란한 생각과 최초의 떠오름


/Artist's Studio/
by 김진주
혼란한 생각과 최초의 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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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작품을 창작하면서 또는 관람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어보았지만, ‘예술은 어렵다’라는 관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기고는 최근 읽은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 예술, 언어, 이론>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입장에서 나의 ‘예술하기’는 어떤 어려운 지점들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책(1) 에서 미학 연구자 이동휘는 말합니다. ‘어렵다’는 개인의 불평이나 노력부족으로 치부되는 것에서 벗어나 ‘왜 어려운 것인지’, ‘어려우면 어쩌자는 것인지’ 그 자체에 대해 알아보자고 말입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집니다.



어려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 예술, 언어, 이론> 책의 서문 이미지



왜 
어떤 말은 예술이론이고, 
어떤 말은 개인의 생각일까?



왜 
누구의 손재주는 미학적, 주체적 실천이고 
누구의 손재주는 그저 애들 장난일까?

- 서문 발췌

 

작품을 창작하면서 또는 관람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어보았지만, ‘예술은 어렵다’라는 관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사적인 감각들을 공유하는 과정 중에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일종의 긴장감 혹은 스침이라 쉽게 생각을 정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진행한 전시와 공연을 통해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으면서 ‘어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어려우면 어쩌자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특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사실 인기 없는 것들-비주류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기를 좋아하고, 다수의 흥미보다는 소수의 진지가 집약된 것에 더 이끌리는 편입니다. 저의 작품도 그렇구요. 그래서 더 당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에게 건넨 말이 어렵지는 않았는지, ‘어려우면 어쩌자는 건지’에 대해 다시 곱씹게 되었습니다. 물론 비주류 장르, 혹은 실험적인 시도들이 ‘어렵다’로 직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으나 ‘실험’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어렵다’라는 인식이 심어지는 것에 대해서 동의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Décontextualisé : 문맥에서벗어나게>

 
<Décontextualisé : 문맥에서벗어나게> 전시 현장 이미지



지난 9월, 구체음악을 가지고 개인전<Décontextualisé : 문맥에서벗어나게>를 진행했었습니다. 구체음악은 저에게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운 장르여서 꼭 한 번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고, 우리들이 살아내고 있는 지금에 대해, 일상을 감각하는 것에 대해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반면에 구체 음악 자체가 매우 생소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기도,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낯선 매체를 통해 일방적으로 말을 거는 행위인데, ‘낯설다’가 ‘어렵다’로 귀결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름의 당위성을 쌓아올리고자 분투를 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예술적 주고받음 자체를 시도할 수 없는, 그런 어려움은 생기지 않길 바랐던 것입니다. ‘어떻게 잘 전할 수 있을까’의 어려움 속에서 ‘나는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로 돌아가 혼란 속을 다시 맴도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시 기간 동안은 최대한 현장에 머무르며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정답이 아닌 각자의 상상이 펼쳐지길 바랐고, 서로의 상상의 교집합 속에서 삶을 나눌 수 있는 경험은 저에게 매우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Décontextualisé : 문맥에서벗어나게> 캡션 이미지



작품의 캡션에서 음악을 감상할 때, 음악을 다 들은 후 작품 설명을 볼 수 있도록 요청했고, 그래서인지 전시 공간에는 다양한 상상으로 채워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상상과 닿았던 지점, 제가 감히 생각하지 못한 것 등 다양한 것을 나눠주셨고, ‘공감’으로 인한 ‘열림’은 발견의 기쁨을 공유함으로 또 다른 채움이 이루어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풍부한 교감과 환기를 겪고, ‘예술하기’의 ‘풍요’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려움’을 토로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예상치 못한 낯선 소리를 수 분 동안 듣는 것이 힘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소리의 문맥’에서 벗어난 상상을 제시하는 것이 너무 추상적이었을까, ‘새로이 듣기’에 대한 제안 자체가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또는 사소한 발견에 대해 너무 과대하게 의미를 불어넣진 않았는지 되짚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은 해결해야할 어려움인가, 어려움 그 자체에 놓이는 것 또한 예술일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은 무책임한 것인가, 예술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예술을 수용할 때, 예술은 예술로서 존재한다 (2)고 하는데, 그렇다면 수용되지 못한 창작활동은 예술일 수 없는가 등 생각이 정말 다양한 갈래로 뻗어졌습니다. 그리고 아직 어떤 결론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장난치지 않고, ‘진중하게’,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나가야겠다고, 교감을 통한 건강한 고민을 예술로서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이 어려움에 대해 잠시 마침표를 찍어놓았습니다.




<Alone>



(3)미디어 이론가인 빌렘 플루서는 우리의 의식은 혼돈스러운 순환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가 문자를 사용함으로 그 생각이 사고가 되어 제자리에서 머무는 것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책을 통해 빌렘 플루서라는 이론가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의 말에 공감하며,  내 안의 어떤 혼란한 생각들이 사고로 발전하고 언어가 되어 정돈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예술하기’의 ‘최초의 떠오름’이 되어 어떤 과정을 밟게 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어떤 수동적 ‘떠오름’이 적극적 사고로 진행되는 과정을 제 상황에서 짚어보려니 최근에 발표했던 <Alone>이라는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최초의 떠오름이 혼란 속에 배회하기를 거듭하다 나온 작품이어서 그랬을까요. <Alone>은 자신이 뱉은 말에 자신이 대답하며 말이라는 것, 대화한다는 것에 대해 묻습니다. 플레이어의 말이 시간차를 두고 4개의 스피커에서 출력되며, 플레이어는 이 소리에 반응하며 스피커와 대화를 나눕니다. 정확하게는 말하는 방법을 잊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이 작품의 ‘최초의 떠오름’은 사실 ‘주거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주거환경의 변화에 따라 포스트휴먼의 또 다른 모습을 그리며 현재 우리가 분별하고 경계해야하는 것들, 혹은 싸워야하는 것들은 없는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떠오름’은 1인 플레이어로서 모든 시스템을 연동시켜서 운영하겠다는 원대한 기술구현에 대한 계획과 무대 연출에 대한 근거를 따지다가 이야기를 제대로 쌓아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혼돈의 순환 상태에 진입합니다. 제 안에 존재하는 어려움들에 대해 다시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한 것이죠. 나이가 들수록 ‘관계’에 대해 능숙한 대처들이 생길 것 같았지만 점점 어렵다라고 느꼈던 것들, 빠르게 일어나는 인식의 변화들, 물론 긍정적으로 건강하게 바뀌는 것들도 있지만 의식있는 것처럼 포장된 무너진 질서들, 기술에 전복된 여러 사회현상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불편함들이 꿈틀거렸습니다.  

그리고 이 여러 가지 생각들을 가지고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적 시도는 일단 사운드 딜레이만 사용한다는 전제 하에 말이죠. 여러 불편함을 끌어안고 나온 첫 마디는, 


“나는”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Alone> 공연 전 개인 테크리허설 이미지 



일단 이렇게 설계한 사운드 프로세싱 프로그램에서 즉흥적으로 대사를 뱉으며, 한 줄 한 줄 써내려갔습니다. 혼란한 생각 속에서 사고로, 언어로, ‘주체적 예술하기’를 이어갔습니다. 각자의 공간에 숨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사람과 관계하는 방식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켜내 보려고 분투하는 미래의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최초의 떠오름’과는 다른 이야기였지만 이 또한 제 안의 혼란한 생각 중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던 우리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창작의 과정 가운데 머리를 쥐어뜯는, 마음처럼 되지 않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만들고 나서도 또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그리고 친구를 괴롭힙니다.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며, 대사에 내포한 의미들, 연출적인 부분들, 연기에 대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사실 이 극이 과연 관객에게 의미가 있을까. 진지한 이야기이지만 위트있게 할 수도 있을텐데, 나는 너무 무거운가. 누군가를 어렵게 만드는가.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게 할 수도 있지만 이게 맞는가. 다시 ‘최초의 떠오름’에 대한 의심으로 돌아가는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이렇게 1인극 <Alone>을 만들었습니다. 현장에서 관람하신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지만 ‘말이라는 거, 대화한다는 거, 그게 뭘까?’ 라는 대사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는 지인의 말에 ‘누군가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나의 외침이 닿았을까’라는 기쁨을 잠시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혹은 불편한 극이었을 수 있다고, 당신이 겪었을 예술의 ‘어려움’에 대해 나는 어떤 기여를 했는가 자문하며 스스로를 비판해봅니다. 




나의 ‘예술하기’의 어려움을 짚어보며



글의 제목을 ‘혼란한 생각과 최초의 떠오름’으로 삼은 것은 예술의 산물이 생성되는 그 시작점에 대해 짚어보며 어렵지만 우리 모두의 ‘최초’의 ‘예술하기’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그리고 중요한 것인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표현하기의 어려움이든 감상하기의 어려움이든 열심히 공부하여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며(4).

자신의 생각과 해석을 쌓아 올라가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예술에서의 어려움은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일 때 나의 ‘예술하기’의 영역이 넓어지는 힘이 된다고 감히 건네 봅니다. 오늘도 우리의 ‘예술하기’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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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 예술, 언어, 이론> 이동휘, 이여로 저.
2)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 예술, 언어, 이론> p.74
3)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 예술, 언어, 이론> p.46-47 
4) <시급하지만 인기는 없는 문제 : 예술, 언어, 이론> 서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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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