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어떤 경험을 만들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위로도 없다.” | ARTLECTURE

“어떤 경험을 만들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위로도 없다.”

-연극<일리아드>와 민성홍의 <중첩된 감성:다시락多侍樂>에서 보이는 예술가. - 에피메테우스의 두 번째 질문-

/Art & History/
by youwallsang
“어떤 경험을 만들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위로도 없다.”
-연극<일리아드>와 민성홍의 <중첩된 감성:다시락多侍樂>에서 보이는 예술가. - 에피메테우스의 두 번째 질문-
VIEW 2697

HIGHLIGHT


우리가 상상하는 예술가는 19세기 예술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광기와 천재성의 불꽃 튀는 삶으로 인해 주변과 따로 떨어져 골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작품과 씨름하다 살아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아깝게 요절해야만 하는. 그들은 경제 관념이 전혀 없는 자본주의의 부적응자들이며, 도래할 수 없는 이상향을 꿈꾸는 낭만주의자이고 건강한 육체 따위는 어떻게든 망가뜨려야 속이 시원한 약골들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빈곤한 우리의 상상은 일상의 반복된 행위에서 벗어나 운 좋은 한량이나 부러운 팔자로 그들을 바라본다, <일리아드>의 이야기꾼과 설치예술가 민성홍의 작품에 나타난 예술가도 그럴까.

“어떤 경험을 만들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위로도 없다.(1)”



<중첩된 감성:다시락多侍樂>, 민성홍 , 2016.12.15.~2017.2.5, <산책자의 시선> , 경기도미술관

 

<일리아드>, 2021.6.29.~9.5, yes24스테이지 2, 연출 김달중, 출연 황석정-기타/김종구-하프

 


동일한 연극을 일부러 두 번이나 찾아보는 일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타로카드를 흔들며 낮은 목소리로 읖조리던 황석정-기타의 앙상블과 릴리 마를렌(2)으로 무대를 열었던 김종구-하프의 앙상블은 그들이 서로 다른 성을 가졌기에 두 번의 관람이 두 편의 연극과 다르지 않았다.


이야기꾼은 가수歌手이며 예인藝人이고 광대廣大이자 선동가煽動家, 그들은 오래도록 이어져 온 기억을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들려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그것은 역사의 객관성이 잠시 유보한 감정의 이야기이며 비유와 은유로 가득 찬 노래이자 산문의 이야기이다. 화자話者는 이야기를 통해 순진한 재미를 이끌어내고 희로애락의 굽이를 지나 청자聽者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 마치 지금의 내가 그 공간에서 살아 숨 쉬는 듯한 생생한 경험과 기억을 갖게 만든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고대의 비극-트로이 전쟁(3)-이며 분노로 시작해 파멸로 끌려가는 인간군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들의 간섭과 이름난 영웅들이 겉을 포장하고 있지만, 전쟁은 숫자의 싸움이고 그 속에서 죽어간 다수의 이름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이 또한 이야기꾼으로서 이름이 없다. 아무런 몫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이름 없는 이야기꾼은 제 몫을 찾아주려 한다.



(황석정 낭독 영상)



여성화자는 마치 신탁의 무녀처럼, 타로카드의 애매한 패처럼 예언의 말 위를 미끄러진다. 말들은 이어지지만 길은 잃게 되어있고 헤매임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은연 중에 비친다. 기타는 어쿼스틱의 감미로움이 아닌 금속성의 파열음을 내며 델포이의 땅 밑에서 올라오는 유황 가스처럼 쏘아붙인다. 전쟁의 비극, 무수한 죽음의 행렬, 돌아볼 겨를도 없는 고통들, 여성화자는 신들린 흔들림으로 고통을 고발하고 상처를 소환한다, 그녀의 몸에 새겨진 상처가 뿜어내는 열기는 이승이 아닌 저 곳, 경계의 문턱을 달군다,



(김종구 낭독 영상)


 

아폴론의 화살을 닮은 하프 소리와 함께 남성화자는 철저하게 이야기와 선을 긋는다. 그의 두 발은 땅을 굳건히 딛고 서있으되 그를 지나친 모든 이야기들은 모두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발뺌을 한다. 발뺌이 길어질수록 더욱 그의 삶을 닮아가는 이야기는 서로 엉켜 만취의 구토와 함께 몸 밖으로로 게워져 나오며 경계를 무색하게 만든다. 아니, 아니... 나 말고, 내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이야기라고, 먼 옛날의 이야기...


고통의 피아彼我 구분이 불가능해져 그저 노래에 불과할 이야기가 고백이 되어갈 때 타인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 되어 모두를 이야기 속으로 밀어 넣는다. 불행한 이들의 마지막이 언제나 미치거나 죽거나 둘 중의 하나이듯 그들의 마지막 또한 그럴지 모른다는 상상과 함께 우리만은 멀쩡하게 살아남는다.


트로이의 성벽에서 목놓아 외치는 이름은 세상을 떠난 자들을 위한 초혼招魂이다. 이야기를 통해 몸 곳곳에 새겨진 고통들을 불러와 우리에게 내보이는 그들은 망각 속에 가라앉은 기억을 통해 지금을 치유하고자 한다. 여전히 반복되고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드러내며 소리치고 증언한다. -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창에 꿰여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는 자의 이름은 기억이며 위로다.

 



<중첩된 감성:다시락多侍樂> 부분

 


인간의 이주가 모든 사물의 동반을 반드시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통에 짊어지고 갔던 것의 대부분은 옷과 이불, 먹거리를 위한 것들이었다. 애초에 집은 함께 할 수 없는 덩치 큰 짐이었고 그 부속물들 또한 함께 길을 나서기엔 부담이 너무 컸다. 그래서 사람들의 몸만 빠져나간 듯 집은 온전히 제 부분들을 끌어안고 그 자리에 남았다. 그래서 집은 장소/자리topos의 정확한 구현이고 그 자체다. 그러나 인간의 사라짐과 함께 장소topos는 비장소atopos로 남겨진다.


작가 민성홍의 작업은 그렇게 뒤처지고 버려진 부산물들을 그러모아 새로운 구조물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그가 살았던 안산 초지동 재개발구역에 남겨진 생활 집기들을 통해 인간과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인간을 많이 닮은 파편들을 그 본성과 상관없이 꿰고 이어 붙여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를 도모한다. 사물들은 스스로 따라나서지 못했기에 버려졌고 존재의 의미를 잃었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 유무에 따른 부가적 존재로서의 자신들을 자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상의 쓸모없음이 예술의 본성이고 예술가는 그의 뜻에 따라 진정 쓸모없는것들을 조합해 새로운 존재 동기를 부여한다.


다시락多侍樂은 전남 진도의 다시래기 굿(4)에서 온 말이다. 이승과 저승이라는 큰 가름 앞에서 망자忘者를 보냄에 슬픔만이 아닌 축제로서의 성격을 보여준다. 망자를 보내는 산자의 의례이자 버려진 것들 앞에 선 예술가의 연민이다.


옷걸이의 중심대가 팽이의 축이 되고. 엎어진 의자의 부러진 손잡이가 발판이 되고, 키를 훌쩍 넘은 높은 곳에서 새 머리가 내려다보고 있다. 상여를 치장하던 종이꽃들이 만발하였고 한알한알 꿰어진 구슬과 반짝거리는 조명은 마치 예민한 감각의 레이더처럼 주변을 환기시킨다. 하나의 천체를 닮은 구조물은 이종異種의 조합으로 새로운 세상을 구현한다. 어쩌면 인간이 사라지고 남은 온전한 그들만의 세상이랄까. 덩치가 커 미처 따라나서지 못한 둔중함을 작은 바퀴에 숨기며 움직일 때를 기다리고 있다.


작가 민성홍은 자신의 존재를 새로 형상화해 작품들에 생명을 부여한다. 새는 예로부터 하늘과 땅을 잇는 신의 전달자messsenger, 수직의 위계 속에서 뜻을 전하고 이루는 자, 조각나고 부서진 잔해들을 매끈하게 이어 붙였지만 원본原本은 아니다. 서로를 비추는 구슬의 흔들림과 조명의 눈부심을 통해 사물의 감정을 보여주고, 바닥을 구르는 바퀴를 통해 그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주지만 이 또한 반쪽의 기다림일 뿐이다. 바퀴는 누군가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구슬과 조명은 누군가 다가와주지 않으면 어느 것도 느끼지 못한다. 새로운 생명은 또 다시 인간을 필요로 하는, ‘인간바라기.

 

어떤 경험을 만들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어떤 위로도 없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은 예술가의 의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입을 타고 내려온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을 통해, 버려지고 남겨진 것들을 새롭게 변신시키는 작가의 손을 통해 우리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경험하고 그로인해 얻어진 상처를 위로받는다. 타인의 경험을 몸에 새기며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고 스스로 자각한다.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양다종한 사람들이고 서로 다른 가치를 지향하며 살고 있지만 타인을 통해 위로를 얻는다.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5)

 



<일리아드> 황석정/김종구

 


샤먼shman(6)은 무당, 예언자, 의사를 뜻한다. 의미를 찾아내고, 강화하여 우리를 그 의미 속에 잠시 살게 한다. <일리아드>의 두 화자는 신들린 무당이었고 고통을 함께하는 환자였다. 그들은 스스로가 전하는 이야기 속에 우리를 살게했고 그럼으로 우리를 그 고통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전쟁이, 죽음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게 경험하도록 끌어갔다.

 


<중첩된 감성:다시락多侍樂> 부분

 


<중첩된 감정:다시락多侍樂> 또한 버려지고 남겨진 존재에 대한 연민을 경험하게 만든다. 보내온 시간만큼의 감정이라면 하룻밤에 소화되고 사라지는 음식물보다 진하고 끈끈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생존의 문턱에서 사물을 고려하지 않는다. 인간의 일생이라는 기간 속에서 일회용품처럼 버려지고 남겨질 뿐이다. 이주를 통해 버려진 사물들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사람들과 닮았다. 이름 없이 사라져간 전쟁의 숫자 또한 버려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버려진 사람도 버려지는 사물들을 돌아보지 않는다, 마치 그들이 그렇게 당했던 것처럼. 바퀴를 달고 한껏 치장을 해도 누군가 보아줄 사람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발버둥 칠수록 더 애잔하기만 할 뿐. 어쩌면 잔인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예술가는 그렇게 우리에게 증언하고 고통의 동참을 요구한다.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고 잊히지 말아야 하며, 아무리 쓸모없는 것이라도 우리는 예의를 갖춰 보내야 한다. 예언은 반복되는 과오에 대한 경고이며 창조는 부서지고 낯춰진 것들의 새로운 탄생이다.

 

미술관 로비에서 부러진 막대를 세운 사물의 허리춤을 잡고 춤을 추고 싶다. 우아한 음악과 함께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시작은 내가 했지만 끝은 그들이 마감할 춤을 추고 싶다. 무당이 칼날 위에서 널을 뛰듯이, 예언자가 취한 듯 몸을 흔들며 신탁을 내리듯이, 의사가 환자의 아픈 부위를 살피듯이, 먼 하늘의 새가 땅 위에서 소식을 물어 하늘로 돌아가듯이,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위로를 받듯이.



출처/참고자료

(1)발터 벤야민(1892~1940) 유태계 독일 평론가

(2)https://youtu.be/9KXcxIPYifA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병사들 사이에서 유행한 대중가요로 히틀러에 의해 금지곡이 되었다.  

(3)트로이전쟁-고대 그리스의 영웅서사시로 BC 12세기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의 전쟁.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납치함으로 시작되어 10년에 걸쳐 전쟁이 지속 되었다.

(4)다시래기 굿-전남 진도 지역에서 출상 전야에 상주를 위로하기 위해 펼쳐지는 가무극적 연희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5)아담 자가예프스키(1945~2021) 폴란드 시인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 시집.

(6)샤먼shaman-시베리아 퉁구스어로 망아忘我상태 중에 지식을 얻는 종교적 능력자. 무당, 예언자, 의사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