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의 징후가 점점 더 심상치 않다. 최근에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화재로 온 도시를 산불연기로 뒤덮는 사건이 있었다. 강풍과 고온으로 하늘은 온통 주황색이 되었고 최악의 스모그현상이 일어났다. <블레이드 러너 2049 Blade Runner 2049> SF영화 속에서와 같이, 실제 샌프란시스코는 화염 속에 도시가 갇혀버린 것이다.
2020년 샌프란시스코,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세계의 자연은 지금, 가뭄과 화재, 이상고온, 태풍, 홍수 등으로 재난을 겪었고, 10월에 와서는 남부지방에 벚꽃이 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났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도 기후예측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이다.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지구의 기후변화 또한 세계적 현상이자 위기가 됐다.
하루에 나오는 도시의 거리의 쓰레기양은 이미 1950년대 대량생산으로 소비문화발전을 이룩한 미국사회에서는 낭비와 계획적 진부화의 문제로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문제적 화두이다.
지금도 우리들은 자연을 소비하고 소유하고 싶은데,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자연은 누구에게나 무언가를 사유하고, 행할 수 있는, 힐링과 치유의 공간으로 우리의 삶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이다.
- 자연이 전해준 숭고의 감정
과거만 하여도 자연풍경을 그린 화가들은 숭고(Sublime)의 감정을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거대하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 속의 대자연 속의 분위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절대적으로 경험되었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바다, 산, 나무, 강 등의 경이로운 광경을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 준 숭고의 감정은 자연으로부터 힐링과 사유를 통해서 얻어지는 특별한 경험이다.
프리드리히, <아침햇빛 속의 마을 풍경>(1822), 존 컨스터블, <에섹스의 비벤호 파크>(1816)
그 대표적인 예로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가 그린 <아침햇빛 속의 마을 풍경>(1822) 자연을 볼 수 있다. 거대한 자연의 규모와 에너지가 고통, 감탄, 외경의 감정을 환기시킨다. 또한 신비적인 이미지로 우리들의 시각과 감각을 매료시킨다. <아침햇빛 속의 마을 풍경>(1822)은 자연이 주는 위대함과 경이감, 자연으로부터의 경험은 특별한 감각을 제공한다. 한편, 프리드리히와 비견할 만한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의 시골의 전원풍경 중에서도 <에섹스의 비벤호 파크>(1816)는 자연 속에서 우리들이 경험하고 싶은 순간의 풍경을 포착한 기분을 준다. 존 컨스터블의 자연에 대한 관찰은, 울창한 나무, 강에 비쳐진 그림자와 구름들이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느껴지는 여유가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1800년대의 자연이 전해준 숭고의 감정과 아름다움은 현재도 우리들이 자연에서 얻고 싶은 치유와 힐링의 장소로 제공받고 싶은 풍경이자 환경이다.
- 기술적 숭고의 감정
올라퍼 엘리아슨, <무지개집합>(2016)
하지만 이제 프리드리히와 존 컨스터블이 그린 자연의 진풍경을 더 이상 경험할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자연의 이미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예고 없이 펼쳐지고 갑작스런 기후현상으로 경험되어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화재는 <블레이드 러너 2049> 영화를 상기시켰고, 실제 미술계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1967~)의 작품 <날씨 프로젝트>(2013)을 상기시킨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국내에서도 1990년대 이후 미술관, 갤러리의 실내외 프로젝트로 활동을 벌이는 설치미술가들 중 한 명으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예술가이다. 현재도 디지털미디어와의 결합으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PKM 갤러리에서 <공존을 위한 모델들>전(2017. 4.19~6.20)과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세상의 모든 가능성>전 (2016.9 ~2017.2)이 열린 이력이 있다. 당시 리움에서의 엘리아슨의 전시는 물, 빛, 이끼 등으로 자연환경의 소재를 미술관 전시공간에서 기술적으로 움직임, 빛, 색 등을 복합적으로 결합시켜 시각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특히 <무지개집합>(2016)과 같은 작품은 전시공간을 물과 빛으로 구성하여 관람객들이 비를 맞는 느낌이라든지 혹은 빛으로 미세한 물안개, 무지개와 같은 빛의 구성이 무지개로 보이는 착시효과를 경험하게 한다.
올라퍼 엘리아슨, <날씨프로젝트>(2003)
그리고 엘리아슨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주목한 <날씨 프로젝트>(2003)는 <무지개집합>(2016)보다 앞서 관람객들에게 더욱 특별한 감각을 제공해준 설치작품으로 유명하다. <날씨프로젝트>(2003)는 2003년 테이트모던 터바인 홀을 장소로 한 설치였다. 수백 개의 램프를 활용하여 인공태양과 유사하게 이를 제작했다. 옅은 안개가 드리워진다. 이 공간은 태양의 빛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관람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엘리아슨의 작품을 감상한다. 하지만 이를 작품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관람객은 자신들이 원하는 자세로, 휴식을 취하거나 대화를 한다. 일시적으로 머무는 휴식공간이자 사색의 공간으로 관람객에게 명상의 시간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엘리아슨의 <날씨 프로젝트>(2003)는 특별한 전시관이기보다는 또 다른 공포와 위기를 예고하는 장소이자 공간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술적으로 램프를 조작하여 빛과 색으로 연속적인 빛의 스펙트럼을 만들고, 인위적으로 전시공간을 기술과 결합시켜 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였다는 점이다. 기술적으로 만들어진 인공태양의 시각적 이미지는, 뜨거운 열이 느껴지는 자연현상을 상기시키며, 실제 태양을 가까이할 수 없는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상황이 기술조작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시키는 현장이다.
<날씨 프로젝트>(2003)는 스펙타클한 인공자연을 대표한 설치작품으로, 실제 자연이 아닌 곳에서 자연의 기분을 느끼게 했다. 특히 인공적인 자연으로부터 느껴지는 기술적 숭고는 자연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비교가 될 수 없지만, 기술을 매개로 우리는 힐링과 치유의 장소를 만난다. 만약 우리에게 자연이 더 이상 숭고와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없는 곳이 된다면, 기술적 숭고를 통해서 그 경험을 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올라퍼 엘리아슨, <중재된 움직임>(2001)
그 또 한 예로, 엘리아슨이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즈에 설치한 <중재된 움직임>(2001)이다. 물, 나무, 개구리밥, 스모그로 압축된 흙과 버섯을 넣어서 관람객들이 물 위를 걸어 다니면서 물 안을 볼 수 있다. 엘리아슨은 <날씨프로젝트>(2003)과 같이 <중재된 움직임>(2001)에서 인공자연으로 실제 자연의 풍경을 내부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우리들에게 기술적으로 자연이 인위적으로 조작될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높이며, 현저하게 자연은 모방이 가능한 존재가 되었음을 알린다.
올라퍼 엘리아슨, <중재된 움직임>(2001)
올라퍼 엘리아슨, <중재된 움직임>(2001)
무엇보다도 엘리아슨의 설치작품은 전시공간의 새로운 변신, 그리고 새로운 변화에 따른 관람객들의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예술과 과학기술의 결합으로 그에 따른 예술의 지속발전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자연을 인공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현재의 예술 환경이 과학기술과 결합하여 얼마만큼 빠르게 발전하였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욱 우리들은 인공자연을 작품으로도 쉽게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인공자연으로는 분명하게도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자연이 주는 숭고의 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들은 코로나19시기에도 바다 혹은 산으로 치유여행을 떠나고 있다. 약속을 한 것처럼, 우리들은 모두가 찾은 목적지는 같았다. 바로, 자연.
자연 속에서 우리들이 찾고자 한 행복과 시간들이 더욱 지속가능하게 하고자 한다면, 더 나은 자연환경을 위해서, 혹은 더 나아가 지구의 건강과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서,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우리들은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들 각자의 선택이다. 당신은 기술적 숭고의 감정을 예술이 아닌 일상에서도 경험하고 싶은가, 아니면 자연 본연에서 드러나는 숭고의 감정을 일상에서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싶은가.
개인의 선택은 자유지만, 현실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자연은 분명,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자연을 위해서, 함께 노력을 해야 지켜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