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Facebook

Artlecture Twitter

Artlecture Blog

Artlecture Post

Artlecture Band

Artlecture Main

위로의 리듬, 다정한 균형 - 양정욱 작가에 붙여 | ARTLECTURE

위로의 리듬, 다정한 균형 - 양정욱 작가에 붙여

-에피메테우스의 서른여섯 번째 질문-

/Artist's Studio/
by youwallsang
위로의 리듬, 다정한 균형 - 양정욱 작가에 붙여
-에피메테우스의 서른여섯 번째 질문-
VIEW 735

HIGHLIGHT


숙제하듯 오가던 게으른 길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고 (소득 없이) 기뻤다. 그의 작업이 보내는 다정함을 알기에, 수줍은 섬세함과 따뜻하고 야문 손끝을 기억하기에, 앞뒤 없이 마음이 서둘러 내달렸다. 다짜고짜 여기저기 휘저으며 (나를 알아 이번 생이 몹시 성가신) 사람들에게 목소리 돋워 강권했다. 다들 와서 보시라. 앞선 마음과 더딘 활자를 맞추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의 모자람이 아쉬울 뿐이다.

<서서 일하는 사람들 #9>,2015,나무 모터 백열전구 실,220×160×130,전남도립미술관 소장



Q 무엇이 그렇게 신나고 기쁜가요?

-몇 번을 되짚어 생각해봤습니다. ‘이게 그렇게 신날 일인가?’ , 신나고 즐겁고 기쁩니다! 10년을 보았던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 벽에 대문짝만한 이름을 걸고 사람들을 굽어보는데, 신나지요! 난삽하다 여겼던 제 개인의 취향이 예술적 안목眼目으로 바뀌는 순간 아닙니까(웃음).

경기도미술관 2015<리듬풍경> 에서 처음 마주했습니다. 조용하고 어두운 미술관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던 소리는, 종일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도슨트에게 조금 시끄럽고 성가신 소음이었습니다. 어떤 기술적 대단함보다 친근하고 어리숙해 보였던 작품 또한 직관적으로 의미를 파악하기 낯설었습니다. 미술관에서 종일 작품과 함께 있다 보면, 가끔 비현실적인 감각을 느끼곤 합니다. 규칙적인 소음이 음악처럼 들리다가, 어느 순간 회초리처럼 아프게 느껴지기도 하죠.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듯 아슴푸레한 빛과 건조하기 이를 데 없던 마른 나무가 리듬을 타며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기했습니다. 이상하고 궁금하고 낯설지만, 마음이 끌렸죠. 첫 만남은 여러 감정이 뒤엉켜 어떤 것이 튀어나올지 모를 구슬 뽑기 상자를 선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Q 상자 속에 무엇이 있었나요?

-작가들이 건네는 상자를 여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입니다. 상자 속엔 대부분 질문이 들어 있죠. 왜 어째서 어떻게 누가 무엇을? 지금의 현실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뒤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이죠. 작가/작품은 관람자가 판단의 수위를 바꿔가며 계속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자기 기준을 증명하고 자기 가치를 확인받는, 상자를 여는 행위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그런데, 양정욱 작가가 건네는 말은 질문이 아니라 긴 이야기였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가닥을 잡고 지금부터 길을 나서야 했던 거죠.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의 밥벌이가 백만 번의 타격으로 자신을 상하게 하는 것을 고스란히 몸으로 느껴야만 했습니다. 습관이라는 타격이 만들어낸 음표가 몸에 악보처럼 새겨지는 느낌이랄까요. 작가는 고정된 작품 속에 한 인간의 일상이 만들어 낸 습관을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굴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엔 질문도 답도 없었죠. 이야기 속으로 불쑥 끼어든 나와 우리 주변 누군가의 일상이 오도카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주말을 거북이만 모른다>,2024,나무 모터 LED ,290×290×160,작가 소장



Q 예술에서 일상의 습관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술이 어떤 대단한 것 혹은 듣도 보도 못한 것에 대한 웅대한 기술記述이라고 생각한다면 일상은 상대적으로 무척 초라하고 하찮은 것일 수 있겠죠. 일상을 고민 없이 살다 보면 고치기 힘든 병 몇 가지는 세월의 이자처럼 몸에 달라붙어 있기 마련입니다. 굽은 목은 거북이랑 친구하고, 눌어붙은 엉덩이는 코끼리가 부럽지 않습니다. 총이라고는 구경도 못 해본 손가락은 방아쇠 증후군을 앓고, 하프 마라톤 한번 못 뛰어 본 발바닥은 족저근막염에 시달립니다. 어쩌면 우리를 죽이는 것은 불치나 난치의 대단하고 위험한 병이 아니라, 자잘한 일상의 습관들이 아닐까요? 언제나 동일한 공간, 보잘것없는 등장인물, 평범한 관계, 진부한 감정. 일상은 지루하고 평평한 시간의 중첩이 만들어낸 단단한 퇴적물 같습니다. 예술은 그 단단한 단조로움에 편안히 기댄 채 스스로를 용도 폐기하려는 몸뚱이를 흔들고 일으켜 세우는 것, 기울어지고 멈춰 설 때 균형을 잡는 무게추와 같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술은 누군가를 위로할 수도, 행복하게 할 수도, 사회를 변혁시킬 수도 반대로 사회를 지탱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처럼 예술의 많은 작용 중에서 양정욱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상의 리듬을 통한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묘사를 통한 미묘한 차이와 반복의 의미로 톺아보는 예술의 부추김입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한 발 떨어진 거리에서 제대로 바라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절대 같아지지 않는 지난 시간과 다가올 불명확한 시간의 차이에서 만들어진 균형의 틈새를 명징하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2024,나무 모터 전구 실,220×300×250,작가 소장



Q 일상의 균형감각이 건네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일상이 대면하는 모든 순간은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앞에 있는 타인이라는 개체의 감정을 알아내기 위해 우리는 몇 개의 더듬이와 몇 가지의 감각을 동원해야 할까요? 상황과 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움직여야 할 근육들은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할까요? 또 얼마나 재빠르고 정확하게 목표를 향해야 비로소 안전한 것일까요? 벌새의 날갯짓은 어딘가로 날아가기 위한 의지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 멈춰 있기 위하여 부단히 움직이는 날갯짓입니다. 오른쪽과 왼쪽의 재빠른 치우침으로 지금의 우리는 바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무용無用하게 멈춰선 평평함이 아니라, 매 순간 무엇이 되기 위해 작지만 소박하게 변화하고 있는 우리는 절대 게으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매 순간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참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일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한 등장인물입니다. 시점을 교차시키면 누구든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움직이는 조각을 통해 360° 회전하는 시선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불을 밝힌 무대의 주인공이고 하나의 우주입니다. 이야기가 끝이 없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의 서사 중간에 끼어들었기 때문이고, 우리의 끼어듦으로 인해 이야기는 또 다른 가능성을 갖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흐릅니다. 입 밖으로 길게 꺼낸 혀의 움직임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듯이, 고정된 순간은 카메라 셔터 속에 있을 뿐 일상은 계속 유동流動하고 있습니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길처럼, 미묘한 차이로 흔들리고 기울어지고 꺾입니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 우리는 결말을 향한 욕망이 아닌, 시간을 이해하기 위한 자세로 나선형의 곡선을 만들며 수직으로 상승합니다. 평면 속에서 얼마 벗어나지 못한 정체停滯의 순간처럼 보일지라도, 입체 속에서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는, 무한히 움직이고 변화하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양정욱 작가가 만든 서사의 순간은 그의 나무막대처럼 휘어지거나, 늘어진 천 조각처럼 펄럭이거나, 내리꽂힌 실들처럼 수직으로 서서 3차원의 좌표 속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별들이 자신만의 좌표를 만들며 유영遊泳하듯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고정핀을 잃고 자유롭게 풀리듯이.

 


<저녁이 돼서야 알게 된 세 명의 동료들>,2024,철 모터 LED PLA 와이어,가변크기,작가 소장



Q 기억에 남는 작품이 뭔가요?

-때로 어느 도시의 기억은 저녁 불이 막 켜지기 직전의 어슴한 조도照度로 기억됩니다. 대도시가 내뿜는 자기도취의 불빛과는 다른, 온전한 일상의 빛, 오만하지 않은 불빛입니다. 간신히 발끝만 보이는 작가의 불빛은 지방 소도시의 조도를 닮았습니다. 그저 넘어지지 않기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모든 소리를 민망하게 만드는 캄캄한 어둠 속에 어스름한 세 개의 빛이 입을 다문 채 서 있습니다. 빛이 누군가의 부피로 다가와 곁을 채웁니다. 낮고 낯선 숨소리, 그러나 고갤 돌릴 수 없는 일상의 피곤함. 먹먹한 침묵의 무게는 짊어질 만합니다. 모든 마음을 보듬고 되돌아가는 귀가歸家길의 무게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후둑-, 몸의 중간 어디쯤이 풀리는 것 같았죠. 지나치게 익숙해서 낯설어져 버린 풍경, 풍경 속에서 지워버렸던 타인의 모습이라니. 참 양정욱스런 모습. 양정욱답다, 다시 생각했습니다.

 

Q 양정욱은 어떤 작가입니까?

-그는 언제나 한발 앞서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는 사람입니다. 미끄러지지 말고, 휩쓸리지 말고, 멈춰서 조용히 천천히 바라보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건네는 위로의 리듬이 다정한 균형을 이루며 곁으로 다가와 보폭을 맞추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는 언제나 이야기의 처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all images/words ⓒ the artist(s) and organization(s)

☆Donation: https://www.paypal.com/paypalme/artlecture

글쓴이 youwall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