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한 골목에 위치했던 아마도예술공간은 오래되고 힙한 이태원의 느낌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한 전시 공간이자 2013년 6월 개관한 비영리 예술단체였다. 이곳은 좁게는 시각 중심, 결과 중심에 편향된 예술 제도 및 시장의 흐름, 넓게는 목적지향성과 효용성에 편향된 당대적 문화·사회·경제적 속도의 대안으로서 ‘과정 중시와 담론 발생, 커뮤니케이션과 비평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12번째로 진행된 ‘아마도애뉴얼날레’는 작가와 기획자가 한 팀이 되어 전시장 밖에 있는 담론들을 전시 공간으로 불러오는 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총 4팀의 작가와 큐레이터의 여정을 선보였다.
방예은, <완만한 몸짓으로 나아가기 4>, 반투명 천에 아크릴릭, 33.4x19.0cm 외 4 작품
아마도예술공간 1층의 넓은 유리창 너머로는 이전에 언급된 바 있는 방예은 작가와 오현경 큐레이터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이들은 16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교황권의 재건을 목적으로 조성한 바티칸 ‘지도의 방(Galleria delle carte geografiche)’과, 사용자로부터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스마트폰 지도 앱을 동일한 공간에서 병치시키고 있었다. 지도를 단순히 현실의 지리 정보를 담은 수단으로 보지 않고, 공간에 대한 인식과 맞물린 권력과 자본 생산의 장치로 이해하는 이들은, 지도라는 시각적 장치와 실제 공간 사이의 위계를 뒤흔들고자 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지도 제작자로 삼아, 1960년대 상황주의자들처럼 한남동 일대를 표류(dérive)하며 도시를 새롭게 탐색했다. 특히 이 표류의 여정은 전시장 한쪽 벽면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표류일지’는 작가와 큐레이터가 한남동을 걸으며 수집한 정보와 감상을 담고 있었으며, 전시장 방문 전 관람자가 이 여정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관람자가 이 공간에서 지도를 능동적으로 변용해가며 전시장을 떠도는 행위를 통해, 도시를 단순히 소비하는 존재가 아닌 ‘표류자’로 자각하게 되기를 바라는 이들의 의도가 가장 선명히 드러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었다.
밝고 트인 앞 공간과는 달리, 어두운 안쪽 공간에서는 장소통역사(최추영 작가, 익수케 작가)와 정지혜 기획자가 만든 전시가 이어지고 있었다. <Fire-ing House: 아마도 프로젝트>는 흐릿한 기억에서 생기는 불안한 감정을 ‘불타는 집’이라는 이미지로 표현한 작업이었다. 두 작가는 ‘집’을 중심 주제로 삼아 영상과 소설이라는 서로 다른 형식을 사용하며, 괴담의 형식을 빌려 집이 불타는 순간을 넘어서 불이 지나간 뒤의 현장을 보여주었다. 보통 집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안전한 공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는 집이 오히려 불안과 위험을 담고 있는 공간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쌓이고, 때로는 폭력이나 억압이 숨어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작가들은 개인적인 기억과 상상을 엮어 하나의 사건처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개인의 이야기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경험으로 바꾸려 했다. 앞서 방예은 작가와 오현경 큐레이터가 변화하는 도시 속을 부드럽고 밝게 표현하고 있었다면, 장소통역사와 정지혜 기획자는 ‘집’이라는 닫힌 공간 안에서 도시가 가진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장 안에서 문 하나만 지나면 느껴지는 빛과 어둠의 뚜렷한 차이는, 이 전시가 전하려는 감정을 더욱 강하게 전달해 주고 있었다.
배한솔, <Fever>, 2024,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분 13초
1층을 지나 위층으로 올라서면, 옥상과 3층에 마련된 배한솔 작가와 김제희 기획자의 작업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들은 시각화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오류와 오차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왔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포인트 클라우드와 3D 스캐너 같은 최신 기술 장비를 활용해 외부 공간을 기록하는 도중 나타나는 왜곡과 흔들림을 영상 및 설치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옥상에 설치된 <Fever>는 관람객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작업으로, 코로나 시기 열 감지 카메라를 통해 포착되던 삶의 기억을 환기시키며 기술과 인간의 감각 사이에서 형성되는 지각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환기하는 지점이 되고 있었다. 이들은 기술 매체가 만들어내는 특정한 이미지 생성 방식과 인간의 눈이 지닌 감각적 인식 중 어느 쪽이 공간을 보다 정밀하게 포착하고 기록하는가라는 문제를 탐색하고 있었다. 나아가 기술이 인간 신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감각 장치로 작동할 때,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게 되는 변화는 무엇인지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구성된 3층 전시작 <포인트 클라우드>는 공원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피크닉을 즐기는 장면을 담고 있었으며, 작가는 반복되는 신체의 움직임과 공간을 인지하는 방식을 추적하며 이를 영상 안에서 섬세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었다.
이빈소연, <Appeal>, 2025, 2채널 동기화 비디오, 컬러, 사운드, 18분
3층 같은 공간에서는 이빈소연 작가와 이보름 기획자의 작업도 함께 만나볼 수 있었다. 이들의 작품 <Appeal>은 작가가 만든 가상의 인물 ‘이빈소연’을 중심으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흔들며 과장되고 허황된 여성 서사를 펼치고 있었다. 2023년부터 등장한 이 가상의 인물은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말들로 여성 간 연대에 계속해서 균열을 내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었다. 작가는 이 인물을 통해 여성 범죄를 다루는 이야기 속에서 성별에 따라 왜곡되는 시선을 비판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다양한 욕망의 층위를 살펴보고자 하고 있었다. 영상 속 ‘이빈소연’은 엄마의 생명보험을 노리는 ‘효년’이라는 설정으로 불편하고 불안한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작가는 어느 순간 자신이 만든 이야기와 현실이 겹쳐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며, 이 일이 혹시 자신 때문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작가는 이제 진짜 ‘효녀’가 되기 위해 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가부장제 안에서 모녀가 함께 저항하며 연대하는 이상적인 이야기 구조를 비틀고, 그 안에 숨겨진 욕망과 폭력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작가는 비윤리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 거칠고 솔직한 내면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고 말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올바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과감한 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과거부터 다양한 문화가 교차하며 축적된 이태원이라는 장소에서, 아마도예술공간은 그 다층적인 역사성과 혼종성을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실험의 무대로 기능해오고 있었다. 이번 ‘아마도애뉴얼날레’에 참여한 네 팀의 작가와 기획자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이 도시의 결을 읽고, 그 속을 유영하거나 흔들리거나 저항하며 네 개의 시선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스스로를 지도 제작자로 삼아 도시를 걷는 표류자, 불타버린 집터에서 기억의 잔해를 발굴하는 증언자, 기술의 오류 속에서 감각의 경계를 추적하는 감지자, 그리고 자기 서사를 항소하는 비윤리적 항소자까지—그들은 도시와 사회, 감각과 욕망, 제도와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이 전시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전시장 밖의 세계와 교차하며 생성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과정 안에서 관람자는 단지 관찰자가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서 함께 표류하고, 증언하며, 항소하는 주체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