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의 전환을 시도하다
아노라는 러시아계 미국인 여자다. 러시아계 미국인들이 밀집해 사는 브루클린의 브라이튼 비치에서 스트리퍼 댄서로 일하는 23살의 아노라는 자신의 공식적 이름인 아노라 대신 애니로 불리기를 원한다. 아노라가 애니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노라와 애니 사이에는 어떤 의미의 차이가 있는 걸까?

스트리퍼로 일하는 애니의 모습은 당당하고 화려하다. 일터에서의 그녀는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자신만만하며 자신의 실력으로 클럽에서 에이스대접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클럽의 화려함 너머에 있는 진짜 그녀의 삶, 아노라의 삶에서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평범하여 일견 비루해보이기까지 한다. 애니라는 미국인과 아노라라는 러시아계 딱지가 붙은 미국인의 간극은 이처럼 생각보다 심대하다.
자신의 고향, 자신의 직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한 영역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 속했던 영역에서 성과가 없거나 실패한 사람만이 다음의 기회를 향해 미지의 장소로 떠나간다. 누가 봐도 명백한 러시아 이름인 아노라를 거부하고 미국식 이름인 애니를 고집하는 아노라에게 어쩌면 러시아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곳,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곳, 떨쳐버리고 싶은 과거가 아니었을까? 영화는 아노라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주지 않지만, 굳이 미국인처럼 보이기 위해 애니라는 이름을 고집하는 아노라의 모습은 러시아라는 과거, 가난으로 점철된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야심찬 몸부림으로 읽힌다. 그러나 러시아계임을 숨기고 미국인으로 살아보겠다는 그녀가 기회의 땅 미국에서도 하필 러시아계 미국인 밀집지역에서 성공의 꿈을 꾸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미 그녀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자가당착적 결과를 내포한다.
같은 것을 밀어내다
클럽에서 우연히 러시아 거부의 아들인 이반을 만나게 된 아노라는 이반과의 돌발적인 결혼을 통해 잠시나마 상류계급으로 날아오르지만 얼마지 않아 이반의 부모에 의해 비참하게 끌려 내려온다. 이 과정에서 아노라는 이반 부모가 고용한 부하 중 한명인 이고르를 만나게 된다. 부잣집에 고용되어 험한 일을 하며 영어가 서툴 뿐 아니라 할머니의 집에 얹혀사는 러시아인 이고르는 처음부터 아노라에게 왠지 모를 따스한 눈빛을 보이지만, 아노라는 그의 따스함을 경멸한다.

러시아 거부의 망나니 아들 이반은 아노라에게 천금 같은 성공의 사다리로 작동한다. 부모의 막대한 부를 흥청망청 써대는 그의 곁에 있을 때 아노라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일종의 후광효과작용에 의해 자신역시 이반과 같은 계급에 속해있다는 착각과 망상에 쉽사리 빠져들었을 것이다. 망상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현실에서 유리시킨다. 아노라 역시 이러한 망상의 힘으로 가상현실을 만들어내고 그곳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보기 시작한다. 마침내 아노라는 사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게 된 것이다.
러시아 이름인 아노라보다는 애니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아노라는 모순되게도 러시아 거부의 아들인 이반에게는 자신을 쉽게 허락한다. 그러나 같은 러시아인이지만 이반 부모의 부하인 이고르에게는 혐오에 가까운 경멸감을 표시한다. 아노라의 이러한 태도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이반과 이고르를 가르는, 그 둘을 상반된 세계에 속하게 하는 것, 그것은 돈과 권력이다.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그것이 결핍되어 있음을 전제한다. 결국 아노라가 이반을 쫓는다는 것은 아노라의 결핍이 이반이 상징하는 돈과 권력에서 발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아노라 앞에 자신과 똑같은 결핍을 가진 이고르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존재만으로도 자신의 결핍을 상징하는 인물에게 아노라가 호의적일 수는 없었다. 그에게 호의적인 순간 아노라는 자신의 결핍을 수용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No Ever After
이반과의 결혼은 며칠간의 촌극으로 끝이 나버린다. 막강한 이반 부모의 힘은 아노라의 백일몽을 무참히 짓밟아 뭉개 버린 후 자신들의 세계에서 그녀를 내쫓아버린다. 이혼의 대가로 제공한 돈을 비참하게 받아 쥔 아노라는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앞으로의 아노라는 이반을 만나기 전의 아노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스트리퍼, 혹은 그들이 시종일관 칭하던 매춘부와의 급작스런 결혼은 이반의 부모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반과 아노라의 결혼은 즉흥적이었음에도 분명 합법적이었지만 그들은 법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여 아노라를 이혼무효소송에 서명하게 만든다. 높이와 추락의 고통은 정비례하고 추락의 원인에 따라 비상의 꿈을 또 다시 품거나 영원히 품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세상의 정점에서 날개가 부서진 채 추락한 아노라가 또 다시 비상의 꿈을 가질 수 있는 날은 올까?
왕자와 공주가 나오는 전통적인 동화의 엔딩은 그 둘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영어로는 애버 애프터 (ever after) 즉, ‘그 후로도 계속’이라는 이 단어는 이처럼 동화 속 행복한 여주인공의 이야기에 상투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동화 속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에게 힘든 현실이란 해피엔딩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일 뿐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현실이 장애물이 되는 이야기란 더 이상 동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노라는 일시적으로 동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착각했지만 실상 그녀가 한 일은 동화나라의 입구에서 잠시 안을 들여다본 것에 불과했다. 누군가가 살고 있는 버젓이 실재하는 동화나라, 그러나 자신은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는 절대 일원이 될 수 없는 그 나라의 실제를 확인한 아노라는 더 이상 예전의 아노라로 되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 지금의 아노라는 동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