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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수 있는 죽음? | ARTLECTURE

선택할 수 있는 죽음?

-<플랜 75> (Plan 75, 2022)-

/Art & Preview/
Tag : #플랜, #플랜75, #Plan75, #영화

선택할 수 있는 죽음?
-<플랜 75> (Plan 7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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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시타 유스케, 츠노 메구미, 후지무라 아키요, 이시카와 케이, 하야카와 치에, 총 다섯 명의 신예 감독이 각 단편의 연출과 각본을 맡고,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어느 가족>(2018)을 비롯한 유수 작품들을 연출하며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총괄 제작을 맡은 <10년>(2018)이 2019년 국내에 개봉된 적이 있다. 일본의 10년 후 미래를 그려낸 옴니버스 영화 <10년>에 수록된 단편영화 다섯 편은 신예 감독 다섯 명이 현실의 문제들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한 첨예한 시선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안락사’, ‘빅데이터를 이용한 AI 시스템이 통제하는 교육 현장’, ‘사후 유산의 디지털화’,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거주 문제’, ‘전쟁 및 징병제’를 다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중에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연출한 단편 ‘플랜 75’가 장편영화 개발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제작된 <플랜 75>(2022)는 초고령 사회의 인구 절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적으로 노인에게 죽음을 권한다는 충격적인 설정에서 출발한 영화로,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제도적으로 적극 보장하는 정책 ‘플랜 75’에 얽힌 네 사람 미치(바이쇼 치에코), 히로무(이소무라 하야토), 요코(카와이 유미), 마리아(스테파니 아리안)의 이야기를 담은 근미래 SF 드라마다. 작중 ‘플랜 75’ 신청 장려 광고 영상과 ‘플랜 75’ 담당 부서에서 근무하는 시청 직원들의 친절한 태도처럼 <플랜 75>는 외관적으로는 온화한 톤을 유지함으로써 이 정책이 삶을 인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외관적 태도에서 결여된 감정은 이 정책이 마냥 이상적이라고만 볼 수 있을지 곧바로 반박한다. 특히 기괴할 만큼 강조되는 ‘선택’이라는 단어는 이 정책이 ‘손 안 대고 코 풀기’ 식으로 더는 경제적 활동을 하기 힘든 노인들을 사회의 끄트머리로 밀어붙이고, 생명을 존엄성의 가치가 아닌 생산성의 가치로 판단하고 사회를 운영하겠다는 새로운 얼굴의 파시즘임을 이야기한다.






이를 단도직입적인 태도로 접근하기 위해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2016년 7월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가미하라 장애인 시설 흉기 난동 사건’을 모티프로 삼아 <플랜 75>의 오프닝 시퀀스를 완성했다. ‘사가미하라 장애인 시설 흉기 난동 사건’은 츠쿠이 산백합원에서 근무했었던 한 남성이 야근 중이던 직원들을 결박하고 시설 내 중증 장애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무려 19명이 숨지고 30명에 가까운 인원이 부상을 당했으며 사건 직후 경찰서에 자진 출두해 ‘장애인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중증 장애인을 구원했다’ 등과 같은 취지의 진술을 해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참사다. 모든 게 현대사회에서 팽배한 편협한 합리주의와 연관이 있음을 역설하고자 <플랜 75>는 경제적 문제를 포함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극심해진 사회 전반적인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대신, 분노에만 사로잡혀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으로 노인들을 삼아 사냥하는 괴한의 모습을 포착한다. 이와 더불어, 괴한이 자살하기 전에 남긴 “넘쳐나는 노인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이 받는다”“나의 이 용기 있는 행동을 계기로 이 나라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바란다”라는 유언의 기저에는 근시적인 문제 해결만 가능하다면 생명의 존엄을 파괴해도 무방하다는, 생산적인 측면에서의 정당회 논리가 자리 잡고 있어 크나큰 충격을 안긴다. 무엇보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과거에 발생한 실제 사건을 근미래적 시공간의 시발점으로 삼을 때 극적인 요소의 개입을 경계함으로써 <플랜 75> 속 펼쳐지는 가상의 사건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맞닿아 있음을 환기하고, 더 나아가 오프닝 시퀀스에 함축된 잘못된 가치 판단과 논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편협한 합리주의에 무관심하다면 펼쳐질 무참한 미래를 경계하는 <플랜 75>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면 곧바로 사회에 고립되는 미치를 포함한 75세 이상 노인들의 일상을 최대한 담아내고자 파고든다. 78세인 미치는 호텔 룸메이드로 성실히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동료가 호텔 화장실 청소 중에 쓰러지자 평판 훼손을 우려한 호텔 측의 노령 노동자 대상 정리 해고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 그 일이 있었던 직후 미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지만 번번이 실패할 뿐만 아니라, 동네 도서관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컴퓨터로 구직 활동을 해보지만 연령 필터가 적용되어 시스템적으로 채용을 거부당한다. 겨우 찾은 심야 교통 정리 보조 업무는 고령인 미치에게 상당히 버겁다. 설상가상으로 미치는 75세 이상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을 계약하려면 2년 치 월세를 내야 하나,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여건에 처한 미치는 거주 문제에도 봉착한다. 결국 버텨낼 수 있는 상황은 미치가 ‘플랜 75’ 상담 및 서비스를 신청하게 만든다. 특히 미치가 마지못해 삶을 포기하기로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국가의 ‘알고리즘과 순서도’ 문제 같은 설계에 의해 진행되기에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미치의 일상처럼 상세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히로무의 시점 숏에 담긴 히로무의 외삼촌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히로무의 외삼촌은 성치 않은 몸으로 겨우 환경 미화 일을 처리하고 있으나, 폐허와 다름없는 거주 공간은 그의 삶이 얼마나 변변하지 못한지 직감하게 한다. 끝내 놀이터에서 ‘플랜 75’ 담당 시청 직원들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음식을 씁쓸히 먹는 그의 모습은 히로무의 시선을 빌려 보는 이들마저 무기력감을 온몸으로 받도록 한다.






한편 <플랜 75>는 그들의 비참한 선택을 병렬적으로 그려내는 데 멈추지 않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하는 문제의 현실적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예언이 아닌 근미래를 향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우선 <플랜 75>는 필리핀 이주 노동자 마리아의 존재를 경유해 우회적으로 사회적 무관심을 건드린다. 마리아는 아픈 자식을 치료할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이주한 인물이다. 이방인이라서 마리아에게는 고민과 걱정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을 줄 알았으나, 필리핀 이주 노동자 커뮤니티가 항상 그녀의 이야기에 경청하며 위로뿐만 아니라 실질적 도움을 준다. 덕분에 마리아는 일본에서 버텨낼 용기를 얻는다. 반면 미치, 히로무의 외삼촌을 비롯한 75세 이상 노인들은 특정 수치 및 가치로 이뤄진 기계적 기준에 의거하여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어떤 도움도 요청할 수 없는 무관심의 테두리 안으로 밀려나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다. 사회적 무관심과 더불어, <플랜 75>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의 결여도 지적한다. ‘플랜 75’ 서비스를 안내하는 팸플릿 인서트 컷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대신 국가가 준비금 10만 엔, 개인별 맞춤 상담 서비스, 장례 절차 지원 등을 혜택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례 절차 지원을 받아 화장한 유골은 매장되지 않고 재활용된다는 사후 처리 과정도 상세히 명시되어 있다. 이는 생산적인 기여도에 함몰되어 생명의 존엄을 짓밟는 태도가 만연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 부재할 시, 사회 전체가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완연히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다.






허나 <플랜 75>는 미치와 히로무의 외삼촌을 중심으로 근미래의 초고령사회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동시애, 콜센터 직원 요코와 ‘플랜 75’ 담당 시청 직원 히로무를 중심으로 문제를 그레이존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한다. 평소 요코와 히로무 모두 본인에게 부여된 역할에 충실할뿐더러, 본인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감각을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해 왔다. 그렇지만 오프라인에서 잠깐 미치를 만난 요코는 인간다움과 삶에 관한 겸손함이 무엇인지 잊고 지내다가 계명되었으며, 히로무는 20년간 뵙지 못했던 외삼촌의 ‘플랜 75’ 신청서를 직접 받은 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했던 본인의 모습에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한다. 분명 두 사람은 악의를 갖고 맡은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가담하는 행위가 남기는 생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깨닫고, 옳게 사는 건 쉽지 않으나 나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기로 결심한다. 특히 OJT 교육을 받는 신입 상담원들이 아웃포커싱 되면서 요코의 눈물이 맺힌 눈동자와 굳은 얼굴을 포착한 아이 레벨 숏, 외삼촌이 인간다운 평안에 이를 수 있도록 국가의 시스템에 개입하기로 마음을 굳힌 히로무의 클로즈업 숏은 스크린 밖에 있는 관객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끝으로 <플렌 75>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을 일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햇빛 한 줄기를 향해 조금씩 걸어가는 미치의 이미지를 중첩시키며 감정의 파동을 조용히 일으키는데, 근미래에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위기 의식을 갖고 함께 살아가는 삶을 고민해 가길 바라는 간청이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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