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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감정을 아로새기며 삶은 계속된다. | ARTLECTURE

다채로운 감정을 아로새기며 삶은 계속된다.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어느 멋진 아침>-

/Art & Preview/
by 김현진

다채로운 감정을 아로새기며 삶은 계속된다.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어느 멋진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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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다가오는 것들>(2016)과 <베르히만 아일랜드>(2022)를 찍었던 감독 미아 한센 러브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이 전부 가족과 관련되어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최근 개봉작 <어느 멋진 아침>에서는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다룬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감독은 이 영화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았던 <다가오는 것들>의 리버스 숏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흔들리는 삶에서 우연적인 사건을 통해 관계와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섬세하게 포획하는 미아 한센 러브 감독. <어느 멋진 아침>에서도 감독은 주인공 산드라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상실과 사랑의 공존을 보여주며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영화 <어느 멋진 아침>에는 통번역을 하며 딸아이를 키우는 파리지엔느 싱글맘 산드라(레아 세이두)가 등장한다한평생 책을 가까이하며 철학을 가르쳤던 산드라의 아버지는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시력과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일과 아이아버지를 돌보느라 분주한 그녀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어느 날 그런 그녀 앞에 오랜 친구였던 클레망이 나타나고 그에게 빠져들면서 산드라는 삶의 기쁨을 되찾는다상실과 사랑을 동시에 품고 삶은 계속된다.




 

오프닝 씬에서 산드라는 파란색 스웨트 셔츠에 짙은 색 청바지낡은 백팩의 허름한 차림새다자신을 돌볼 새 없는 그녀의 형편을 옷차림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아버지를 찾아가 끼니를 챙기고 학교로 딸아이를 픽업하러 가는 산드라해야 할 일과 보살필 가족에 둘러싸여 분주하다상태가 악화된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옮기려 알아보지만사설 요양원은 턱없이 비싸고공공 요양원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시설과 서비스가 열악하다그녀는 원하는 요양원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병원에서 요양원으로 몇 차례 아버지를 옮기고아버지의 분신과 같았던 엄청난 양의 책을 처분하며 그의 거처를 정리한다.

 


죽음을 향해가는 삶을 잠잠히 응시하기

 

산드라는 자신을 잃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상심한다기억을 잃은 채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는 만날 때마다 혼돈스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익숙하게 보아왔던 그의 책에서 아버지의 영혼을 느낀다. ‘자아를 구성하는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상실한다면 그 사람을 과거의 그와 동일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기억이 없다면 한 사람을 그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무언가에 헌신하던 삶도 죽음 앞에서는 그 힘을 잃고 마는데죽음으로 향하는 삶에 드리우는 공허와 두려움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산드라가 느끼는 혼란과 슬픔에 공감하며 여러 질문을 던져 보지만 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어느 날 산드라는 아버지가 과거의 기억이 몰려와 전처와 자식과의 만남을 힘겨워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기억을 잃어가는 상황에서도 연인 레일라를 그리워하고요양원 생활에 적응하며 바뀐 일상에 고요히 젖어드는 아버지를 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자신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현재를 살고 있다고자신에게 중요한 것만은 마지막까지 움켜쥐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이렇듯 영화는 산드라의 시선으로만 아버지를 보여주지 않는다기억을 잃은 당사자와 그를 지켜보는 가족그 모두의 고통에 대해 균형을 유지하려는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미덕은 노년의 삶을 감추거나 배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이다산드라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요양원의 나이 든 사람들그리고 증조할머니까지다양한 노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 곁에 얼마나 많은 노년의 삶이 있는지 의식하게 한다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 소외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이 들어가는 일의 고달픔과 슬픔그럼에도 온당히 보호되어야 할 존엄과 품위에 대해 탐색해 볼 수 있다.

 

당장 돌봄이 필요하지만 요양원에 자리가 없어 고심해야 하는 영화 속 아버지의 현실은 노년 인구가 크게 증가했지만 해당 인구를 수용할 사회적 시스템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꼬집는다영화는 틀에 박히지 않은 방식으로 자기만의 삶을 사는 노년의 모습 또한 보여준다아버지와 이혼한 산드라의 어머니는 사회 저항 운동을 하며 젊은이 못지않게 혈기 왕성한 노년을 살고 100세를 앞둔 증조할머니는 여전히 홀로 살며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가끔은 힘들지산다는 게.

하지만 동정은 절대 안 돼내가 살아있다는 걸존재한다는 걸 보여줘야 돼.”

-증조할머니

 

98세의 증조할머니는 일상생활은 물론 집 밖으로 나가는 게 힘겨울 정도로 노쇠했지만 동정은 ‘No’라고 딱 잘라 말한다살아있는 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동정이 아니라 한 존재로 존엄을 인정받야 함을 강조한다이는 산드라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을 대변한다기억을 잃고 자리보전만 하다 죽음을 맞더라도 그 사람의 품위는 지켜져야 마땅하다고.

 

병원에서 요양원으로또 다른 요양원으로 옮길 때마다 카메라는 아버지의 짐을 꾸리는 모습을 담아낸다그때 눈에 띄는 것은 매번 가지런히 접혀 정리되어 있는 아버지의 셔츠다비록 자신에게 익숙한 책과 집을 상실하고 건강과 시력을 소실해가고 있지만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돌봄과 존중만은 지켜지고 있음을 잘 개켜진 셔츠가 말해준다그것은 죽음을 향해가는 대상에게 우리가 갖춰야 하는 예의란 힘겹고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이처럼 사소한 챙김과 온기 어린 손길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다가오는 감정을 포용하며 삶은 계속된다


 

나아질 일 없는 아버지의 병홀로 아이를 키우는 생활별 다는 기대 없이 살아가던 산드라는 우연히 마주친 클레망과 사랑에 빠지면서 삶의 기쁨을 되찾는다클레망과의 관계가 깊어 갈수록삶의 열정을 회복하는 산드라의 심리를 영화는 그녀의 의상으로 보여준다파란색 스웨트 셔츠파란색 셔츠와 니트 등 주로 푸른 계열 위주였던 옷은 선명한 빨간색 니트와 원피스로 바뀌어 간다.



 

사랑은 나랑 상관없는 일 같아” – 산드라


그녀의 지치고 침울하던 표정에도 서서히 밝은 기운이 스며든다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 우수에 잠겼던 그녀의 얼굴은 클레망의 연락을 받고 일순간 환희로 빛난다상실과 사랑이라는 모순적인 감정이 한 삶의 내면에 동시에 들어찰 수 있음을그 변화가 소리 없이 번져 한 인물과 그를 지배하는 삶의 빛을 다채롭게 물들일 수 있음을 영화는 세심하게 그려낸다. (산드라 역의 레아 세이두의 탁월한 연기가 한몫했으리라.)

 

상실을 마주하고 있더라도 삶은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을 어김없이 선사한다햇살이 쏟아지는 강변에서 딸아이와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으며 장난을 치는 산드라휴가지에서 게임을 하고 별을 보는 여름날가족들과 꾸미는 크리스마스의 산타 소동처럼이별을 동반하는 삶에도 피할 길 없이 웃음과 햇빛은 뚫고 들어온다벤치에 기대어 앉아 푸른 잎사귀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빛을 쬐는 산드라를 보면 안심이 되고 위로받는 기분이 드는 건조건 없이 주어지는 햇살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만으로도 기쁨이 차오르는 기적 같은 순간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나의 영화는 빛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슬픔과 재탄생상실과 새로운 사랑은 동시에 경험될 수 있다.”

-미아 한센 러브

 

가족의 상실이라는 슬픔에도 다가오는 사랑을 끌어안으며 산드라는 현재를 산다아버지 또한 기억을 잃어가는 중에도 연인 레일라와 자기 자신이라는 가장 중요한 존재만은 쉽게 놓지 않는다영화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재를 사는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오늘을 사는 일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산드라가 입었던 원피스의 색상이 인상적이다푸른색도 아니고 붉은색도 아닌파랑과 빨강초록과 주황노란색이 점점이 뒤섞인 원피스는 신인상주의파 화가 쇠라의 점묘화를 연상시킨다점묘법은 빛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기 위해 고안되었던 화법으로 여러 색을 섞을수록 탁해지기에 혼합하지 않은 개별의 색을 점으로 찍어 각각의 색은 밝게 유지하면서도 멀리 서는 색이 뒤섞인 듯 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그처럼 삶에는 혼합될 수 없는 개별적인 감정들이 경계를 맞댄 채 점점이 아로새겨져 있다한 순간에도 다채로운 감정이 공존하듯 죽음과 상실의 슬픔 안에서도 탄생과 사랑의 기쁨이 떠오르는 게 삶인 것을산드라의 원피스는 삶이 품고 있는 모든 감정을 온전히 포용한 형태 같다희석하고 부옇게 하는 대신 각각의 감정을 오롯이 감각하는 삶그럴 때 생은 언제든 우리에게 어느 멋진 아침을 선사할 것이다모든 감정을 끌어안고 점묘화를 그리듯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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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현진 (춤추는 바람)

작은 목소리로 작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삶은 미약하고 사소한 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