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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낸다는 것의 위엄, 삶의 숭고함에 대해 _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 | ARTLECTURE

살아낸다는 것의 위엄, 삶의 숭고함에 대해 _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

-여성 작가의 삶과 예술-

/Art & History/
by 김현진
살아낸다는 것의 위엄, 삶의 숭고함에 대해 _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
-여성 작가의 삶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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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그녀의 출신 배경인 상류사회를 다룬 <환락의 집>과 <순수의 시대>보다 뉴잉글랜드 시골 마을을 다룬 <이선 프롬>과 그 쌍둥이 소설로 일컬어지는 <여름>이 그녀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유난히 길고 더디게 흐른다고 느껴지던 가을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한파가 몰아 닥쳤다.  12월 사이 몇 번의 눈을 맞으며 모든 것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추위의 위력을 실감한다. 날씨가 우리의 마음과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런 추위가 일년의 절반에 가깝게 이어진다면 어떨까. 겨울에 맞서느라 몸과 마음은 척박해질 테다.


길고 긴 겨울, 매서운 눈보라가 휘몰아치면 고립되고 마는 산간 마을 스탁필드¹, 그 고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불행에서 헤어날 길을 찾을 수 없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의 이름은 이선 프롬. 이디슨 워튼의 동명 소설 속 주인공이다.



매사추세츠의 겨울 풍경²



나는 아마도 그가 자기 혼자있다고 생각할 때 지을 법한 얼굴 표정을 보았습니다.

“그래 저 사람이 백 살을 산다는 말입니까? 벌써 죽어서 지금 지옥에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데요!”

하먼은 주머니에서 씹는 담배 한 덩이를 꺼내 쐐기 모양으로 잘라 가죽 주머니처럼 늘어진 한쪽 뺨 안에 밀어 넣었습니다.

“저이는 스탁필드에서 너무 많은 겨울을 난 것 같아. 똑똑한 친구들은 대부분 이곳을 떠나는데 말이지.”

“왜 저 사람은 떠나지 않았나요?”

“누군가 남아서 집안 식구들을 돌봐야 했거든. 이선 말고는 아무도 그럴 사람이 없었어. 맨 처음에는 아버지를…… 그다음에는 어머니를…… 또 그다음에는 아내를 말이야.”

10~11쪽 <이선 프롬> 이디스 워튼, 민음사, 김욱동 옮김



소설의 화자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부 산간 지방의 스탁필드에 있는 발전소로 파견된 직원이다. 그는 마을에서 만난 ‘폐인’과 다름없는 이선 프롬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절룩거리는 다리가 덜컹대는 쇠사슬처럼 제지하는데도 태평스럽고 강렬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가까이 접근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감도는 그 얼굴에 사로잡힌다. 눈이 심하게 오는 날, 이선이 태워주는 썰매로 길을 나섰다 꼼짝없이 그의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면서 화자는 이선과 함께 살고 있는 두 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 들었던 ‘충돌’과 이선의 과거를 짜깁기해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다. 화자에게서 완성된 ‘이선 프롬의 이야기’가 기이한 ‘환상’처럼 책 속에서 흘러 나온다.


불행을 타고 난 사람, 이선 프롬


“그는 말없는 우울한 풍경의 한 부분인 것만 같았고, 그 안의 온기와 마음은 표면 아래 꽁꽁 묶인, 말하자면 얼어붙은 슬픔의 화신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침묵에 어떤 적의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단지 쉽게 다가가기에는 그가 너무나 깊은 정신적 고립 속에 살고 있다고 느꼈을 뿐이에요. 또한 그의 외로움이 단순히 비극적이라고 생각되는 개인적인 곤경의 결과가 아니라 그 속에 하먼 가우가 넌지시 말한 것처럼 스탁필드의 허다한 겨울 추위가 엄청나게 축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8쪽


긴 겨울과 지독한 추위, 척박하고 고립된 환경이 한 사람의 인생이나 성격을 결정지을 수 있을까. <이선 프롬>의 화자는 ‘이선 프롬’의 얼굴에서 그 지방 특유의 겨울 추위가 축적되어 만들어진 얼어붙은 슬픔과 적의 어린 침묵을 읽는다. 온통 흰색으로 묘사된 눈 쌓인 언덕과 나무 숲, 인적 없는 마을을 가두는 혹독한 추위가 책 너머로 번져 나올 것 같다. 이 소설은 추위가 자연 현상을 넘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눈 속에 고립된 사회는 뜨거운 젊은이의 가슴을 서서히 얼어붙게 만들고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젊은 이선은 과학도를 꿈꿨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야했고,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목재소를 물려받아 꾸려간다. 뒤이은 어머니의 병과 죽음,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목재소의 상황이 그의 삶에서 희망을 앗아간다. 어머니가 병을 앓는 사이 이선은 사촌 누가 제노비아(지나)의 도움을 받는데, 어머니의 죽음 직후 농장에 홀로 남게 된다는 공포심때문에 이선은 자신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지나와 결혼을 선택한다. 그 지방을 지배하는 적막한 겨울처럼, 병에 걸린 어머니는 침묵에 빠져들었다. 침묵은 이선을 힘들게 했고, 지나가 그런 그를 구제해주는 듯 보였지만 그녀 또한 결혼 후 일 년이 지나 병과 함께 침묵에 잠겨 버린다.


사랑 없는 결혼에 병을 앓는 지나의 고집스런 침묵, 간혹가다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건 불평 불만 뿐이다. 농장 운영에 자질이 없는 이선은 대자연을 통해 경이감을 얻고 정신적으로 교감을 나눌 상대를 갈망하지만 불행한 결혼으로 고립감만 늘어 간다. 그러던 중 지나의 먼 조카, 부모를 잃고 가난에 처한 매티가 집안일을 돕기 위해 이선의 집에 머물게 된다.


이선보다 나이가 많은 지나는 움푹 파인 얼굴에 틀니까지 끼는 할머니와 다름없는 반면 한창 피어오르는 나이의 매티는 활기와 생명력이 넘친다. 매사 우울하고 부정적인 지나와 달리 생기발랄한 매티에게서 삶의 새로운 기쁨을 느끼는 이선. 자연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약간의 과학 지식을 매티와 공유하면서 이선은 즐거움을 발견한다. 매티라는 존재를 통해 삶의 희망을 회복한 이선에게 늙고 고집스러운 지나는 훼방꾼처럼 느껴진다.


이선과 매티 사이를 질투하고 의심하며 병색이 짙어가던 지나는 집안일에 서툰 매티 대신 헌신적으로 자신과 집안을 돌봐 줄 다른 아가씨를 구해 매티를 쫓아낸다. 이선은 지나의 독단적인 결정에 분개하여 이혼을 생각하지만 자신의 가난한 형편과 체면으로는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는다. 자존심 강한 그에게는 매티와 새 삶을 시작하는 용기를 내는 것보다 나이 든 아내에 대한 의무를 져버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하는 게 더 어럽기 때문이다. 떠나는 매티를 역으로 바래다주던 저녁, 눈 속에 파묻힌 두 사람은 열정에 휩싸여 위험한 결정을 내린다. 눈 쌓인 겨울이면 마을 사람들이 썰매를 타는 장소가 있는데 그 길 중앙에는 커다란 나무가 버티고 있다. 이선과 매티는 자살을 결심하고 썰매를 탄 채 그 나무로 돌진하고 만다.  


가족의 불운으로 꿈을 펼쳐보지 못한 채 겨울이 일 년의 반을 휩쓰는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마을에서 즐거움없이 살아가는 젊은 이선의 삶은 안타깝다. 그런 그가 매티라는 생기발랄한 여성을 만나 교감하고 환희를 느끼는 모습은 죽어가는 사람이 소생한 듯 반갑다. 하지만 그에겐 이미 책임져야 할 아내가 있다. 병을 앓아 고집스럽고 성마른 그녀의 존재는 이선의 불운을 부각시킨다. 


“여태껏 지나에게는 사람의 마음에 들만한 구석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무시하고 명령할 수 있는 한 적어도 무심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지금은 그녀가 남편을 지배했고, 그래서 그는 그녀가 미웠다. 매티는 아내의 친척이지 그의 친척이 아니다. 아내에게 매티를 이 집에 두도록 강요할 방법이 없었다. 좌절된 과거에서 비롯한 오랜 고통, 젊은 시절 실패와 쓰라림과 헛된 노력이 하나같이 그의 영혼 속에서 비통하게 고개를 쳐들고 가는 길마다 앞을 가로막던 여인의 모습으로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지금 모든 손실을 보상해 주는 그 하나마저 빼앗으려 들지 않는가. 한순간 마음속에 증오의 불길이 일어나 팔을 타고 흘러내려 그녀를 향해 주먹을 쥐게 만들었다. 그는 난폭하게 앞으로 발을 내딛다가 걸음을 멈췄다.”

109쪽


경제적 무능과 자존심 때문에 매티를 선택하지도 못하는 이선은 지나에 대한 분노와 악의를 키운다. 일순간 이선은 일그러진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체면을 앞세워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는 그는 가부장제가 만든 희생자이면서 가해자라는 모순 속에 있다. 지나의 모습도 비슷하다. 이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그의 삶을 불행에 빠뜨리는 가해자처럼 보이지만 그녀야말로 또 한 명의 희생자일 뿐이다.


외숙모를 보살피러 외딴 마을에 왔다 홀로 남은 젊은 이선을 보고 동정심에 결혼을 결심했을 지나. 낯선 환경에서 맞닥뜨린 매서운 추위와 그만큼 차가운 남편의 냉대에 그녀의 병은 깊어 갔다. 집 안에서의 생활이 전부인 여성에게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이란 감옥과 다름없는 것일 테다. 지나와의 결혼으로 이선이 불행해진 만큼, 이선과의 결혼으로 지나의 삶도 불행했다. 이선이 느끼는 만큼 그녀 또한 고립되었고 외로웠다. 그런 상황에서 조카 매티의 등장으로 남편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으니 그녀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매티를 내쫓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선에게 자신의 요구를 주장하는 지나를 무조건적으로 인정 없고 이기적인 인물이라고 탓할 수 없을 것이다. 이선과 매티는 서로의 영혼이 친밀하게 어우러져 기쁨으로 빛나는 순간을 누리기라도 했으니, 홀로 무관심이라는 견고한 추위 속에 버티어야 했던 지나야말로 이 소설에서 가장 불행한 인물이 아닐까. 지나의 질투심과 잔혹한 결정으로 이선과 매티가 비극적인 결단을 내리고, 그 결과 매티는 평생 불구로 지내게 된다. 매티를 내쫓고자 했던 대가로 지나는 평생 매티를 보살피며 산다. 매티와의 사고로 절름발이가 된 이선은 불행한 두 여자를 마주하며 매일 자신의 삶에 고통의 낙인을 찍는다. 각자의 불행으로 일그러진 세 사람이 스탁필드의 낡고 초라한 집에 머무는 모습은 자기만의 감옥에 갇힌 세 명의 수인과 다름없어 보인다.


“매티보다 더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은 본 일이 없어요. 그런데 너무 고생을 했어요……. 사람들이 매티더러 심술궂어졌다고 할 때마다 난 늘 이렇게 말하지요. 그리고 지나 부인으로 말하자면 언제나 시무룩했어요. 매티를 잘 참아 주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고요…….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요. 하지만 가끔씩 두 사람이 서로 말다툼을 해요. 그럴 때 이선 씨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 모습을 볼 때면 누구보다도 가장 괴로운 사람은 이선 씨가 아닌가 생각하지요……. 어쨌든 지나 부인은 아니에요, 괴로워할 시간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가엾어요.”

162쪽


누가 가장 불행한 인물일까 생각하다 의미없음을 깨닫는다. 불행이란 그 크기와 경중을 따져 순서를 나열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테니까. 각자의 불행은 각자에게 절대적인 크기로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이선 프롬과 지나, 매티, 세 사람은 각자의 불행 속에서 각각의 몫과 크기로 불행했다. 그런 그들이 옴짝달싹할 수 없이 좁은 집에 갇혀 살며 서로의 불행을 날마다 마주하해야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그 일은 불행을 깊어지게 했을까,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게 했을까.   


불행에 빠졌을 때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각자의 불행으로 버거운 세 인물이 함께 살아가는 일은 그래서 상상만으로도 숨막히게 한다. “삶이란 죽음 다음으로 가장 슬픈 것”이라고 말했던 이디스 워튼. 그녀의 삶에 드리웠던 불행은 어떤 것이었기에 이토록 기이하게 비극적인 인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이디스 워튼의 소설 <이선 프롬>은 우리에게 불행을 사유하게 한다. 불행 속에서도 우리는 타인을 연민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불행한 삶도 지속할 만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구도 비난할 수 없고 어떤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는, 구제불능으로 완벽한 불행이 이 소설에 그려진다. 헤어날 길 없는 불행의 완벽함이 이디스 워튼의 빼어남을 증명한다. 이선 프롬이 아닌, ‘나’라는 화자를 통해 ‘환상’인 듯 들려주는 이야기의 설정은 기이함을 부각한다. 인물 개개인의 설정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이디스 워튼의 치밀함이 출구 없는 미로를 완성했다.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디스 워튼³ 



미국의 부유한 가문 출신이었던 이디스 워튼(1862~1928)은 자신보다 열세 살 연상인 에드워드 워튼과의 결혼(1885) 후 사랑없는 결혼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이선 프롬>에는 그녀 자신이 겪었던 결혼의 비극과 모순이 담겨 있다. 결혼 후 만난 모턴 풀러턴과의 사랑으로 그녀 또한 이선처럼 삶의 새로운 기쁨을 맛보았을까. 하지만 그와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았고, 쉰 하나에 남편 에드워드와 이혼(1913)한 이디스 워튼은 파리에 정착해 창작을 이어갔다. 쉰 여덟에 발표한 <순수의 시대>로 퓰리처상을 수상(1921)하면서 미국 문학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녀의 출신 배경인 상류사회를 다룬 <환락의 집>과 <순수의 시대>보다 뉴잉글랜드 시골 마을을 다룬 <이선 프롬>과 그 쌍둥이 소설로 일컬어지는 <여름>이 그녀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결혼 후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저택 ‘마운트’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통해 그 지역의 풍습과 인간상, 자연환경을 소설로 재창조해냈다.   


이디스 워튼의 소설은 당시 팽배했던 생물학적, 환경론적 결정론을 믿는 자연주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랑없는 결혼, 도덕과 의무를 강요하는 사회, 타고난 출신 배경과 환경의 지배 아래 결정지어진 인간의 운명. 소설 속 인물들은 그 장벽을 허물거나 박차고 나오는 선택을 시도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깊이 인지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고뇌한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통해 주어진 삶을 기어이 살아낸다. 그녀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불가항력적인 외부 압력 하에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살아냄으로 인간의 존엄을 증명한다.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은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있다. 선택의 결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의 번민과 고뇌에는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싶다. 이선이 지나에 대한 도리를 쉽게 저버릴 수 없었던 것처럼 불구가 된 매티를 마지막까지 보살피는 지나의 모습은, 지극히 불행하지만 어떤 면에서 숭고하게 느껴진다. 운명의 거센 할큄에 무력하게 쓰러지는 대신 어떻게든 살아가는 일을 택한 그들에겐 위엄이 있다. 공감하고 이해해보려 시도하는 한, 우리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따른 번민과 고뇌를 통해 선택한 삶에는 무엇하나 가볍고 하찮은 게 없기 때문이다. 모두의 삶은 각자의 무게로 존중받아 마땅하며 삶이라는 그 자체로 위엄을 갖는다. 


이번 겨울의 추위는 얼마나 매서울까. 느닷없이 폭설이 내리는 어느 날, 소설 <이선 프롬>을 다시 펼쳐보고 싶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1993년에 만들어진 리암 니슨 주연의 영화가 있다니 눈 덮인 스탁필드의 풍경을 영상으로 확인해볼 수도 있겠다.   

(영화명:  에단 프롬 Ethan Frome Ethan Frome 1993)


¹ 미국 매사추세츠주를 배경으로 한 허구의 공간

² 사진 출처 

https://www.blendspace.com/lessons/DwbJ3Vdg1Wkc6g/the-starkfield-slick

³ 사진 출처

https://theberkshireedge.com/the-real-life-tragedy-that-might-have-inspired-edith-wha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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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현진 (춤추는 바람)

작은 목소리로 작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삶은 미약하고 사소한 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