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부득이함에 대하여
왜 그것을 보게 되었을까. 공원의 가로수, 놀이터. 방음벽이나 담 근처에 핀 잡풀 이들은 따로 찾지 않아도 가까이에 있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거나 남겨진 풍경이다. 당연해서 특별하지 않은 모습은 그것이 항상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
담1
몇 해 전 우연히 본 방음벽의 풍경은 경이로웠다. 멈춰서 한참동안 출렁이는 담쟁이를 바라보았다. 그날 본 것은 빛과 바람 이었다. 가만히 잎사귀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움직임이 모여 큰 물결을 만들었다.
담2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작은 쉼터가 있다. 작은 물레방아가 있었고 몇 년 전까지도 졸졸 물이 흘러내렸다. 어느 해인지 물레는 사라졌고 돌담만 남았다. 잠시 앉아 쉬며 돌담 너머의 나무와 아파트를 본다.
붓질
종이, 붓, 먹은 그림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함께였다. 글씨를 쓰시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그랬고 이제는 나의 작업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민의 흔적과 호흡이 그대로 드러나는 오래된 표현방법이다. 붓으로 그리는 일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늘 하던 것처럼 기술적이고 반복적인 운동의 결과로 느껴졌다. 한동안 더 세밀하게 붓의 자취를 숨겨 그렸다. 예전처럼 붓을 쓰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늘 가던 길, 늘 마주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림으로 옮기기 위해서 다시 붓질을 시작했다. 특별하지 않은 것과 특별하지 않았던 방법의 만남이다. <윤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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