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언제나 지금이고 여기일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몸은 주변에 반응하고 공간으로 확장하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항해사이다. 이미지 경험의 장으로서 전시를 상상하며 <여름한정>은 몸과 여름의 열기가 만나고 도시로 이어지는 움직임을 위한 연결사(copula)가 되고자 한다.
회화의 오래된 언어인 색의 표현에 천착하는 신현정은 자연이 머무르는 살아있는 몸(corpus)으로서 회화를 열어왔다. 카메라가 아닌 자신의 몸으로 도시를 기록하는 다비드 베르제는 몸이 경험하는 도시의 시간성을 설치, 퍼포먼스, 프로젝션과 같은 매체의 속성을 통해 조율해왔다. 도구가 아닌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두 작가의 몸은 작업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객체가 되기도 하면서, 이미 정의 내려진 매체의 규정을 넘어 회화와 사진의 순수한 구성 능력을 물질화한다. <여름한정>은 이러한 두 작가의 작업 속에서 이미지 생산의 매체 혹은 의미 생산의 전통적인 개념으로서 사진과 회화가 점차적으로 사건생산의 현장으로 전이되고 있음을 부각시키면서 매체의 수행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여름한정>은 아마도예술공간에 남아있는 기형적인 가옥의 구조에 주목하면서 아마도예술공간의 집이라는 내부구조와 현대미술기관이라는 형식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추상적인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한때는 가사활동이 중심이었을 아마도예술공간의 오래된 체질, 개조와 보수를 통해 축적된 젠트리피케이션의 시간을 추적하면서, <여름한정>은 2018년 여름으로 이어지는 도시의 열기를 응집하는 전시를 구성한다.
화면과 틀의 오랜 관계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면서 회화의 평면성과 입체감을 고민해온 신현정은 아마도예술공간의 지상층에 황동 격자판의 구조를 세워 여름 꽃과 열매, 이온음료 등으로 염색된 여러 종류의 천을 널기도 하고, 곰팡이가 가득한 그린 하우스의 천장에 수채물감과 스프레이로 뿌려진 종이 파편을 붙이기도 하면서 여름 색의 향연을 펼친다. 신현정은 황동 구조물의 미로에 매달린 색들 사이사이에 용해된 공간으로 관객을 초대하면서 살아있는 몸으로서 회화의 표면, 그 입체적인 질감을 드러낸다.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에서 인지되는 시간의 결을 항해하는 베르제는 아마도예술공간의 지하층 복도가 건물복원이전에 두 채의 집을 가르는 길을 환기시키면서 도시의 실재성과 뜨거운 열기를 체현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아마도예술공간에 남아있는 도시구조물들을 드러냄과 동시에 외부에 실재하는 도시구조물들을 내부로 옮기면서, 공간의 안과 밖을 통합한다. 이 설치작업은 이태원 일대를 침묵 속에 걷는 베르제의 <워크 피스 Walk Piece>에 참가하는 관객의 몸을 통해 다시 한번 더 도시로 연장된다.
<여름한정>은 여름이면 쏟아져 나오는 여름한정판의 쿨하고 패셔너블한 이미지 안에 내재된 한시적이고 한정적인 속성으로 눈을 돌려본다. 한정판은 언제나 지금이고 여기일 수밖에 없다. 한정판은 그 조건의 제약이 강하면 강할 수록 더 특별해지는 생명력을 가지며 어느 한 순간 소비의 주체를 소외시킬 정도로 배타적이다. 한정판의 이러한 파괴적인 취약함은 경제원리의 일반적인 수요공급 곡선을 스스로 거부하면서, 오히려 논리에 의해 보안된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그대로 노출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한시적이고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동시대에 생산되는 모든 사물들의 한계. 끊임없는 자기갱신을 통해 사라져야만 지속되는 우리 모두의 운명처럼 말이다.
2018년 연일 최고를 기록하는 여름의 온도를 지켜보며 우리는 어느 때 보다 더 절실하게 지구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더 높고 더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인간의 문명이 자초한 올 여름의 잊지 못할 폭염을 견디며, <여름한정>은 도구와 기술의 가능성을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살아나는 몸의 파편들을 태양의 열기와 연결해본다. 그리고 잠시나마 피부와 내장, 뇌와 골반 그리고 대기와 땀 사이의 균형감각(poise), 그 추상적인 상태를 회복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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