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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개인전 《피다》 | ARTLECTURE
  • 이장욱 개인전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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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피어나는 순간



  이장욱의 작업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만, 그가 탐구하는 것은 의미의 전달이 아니라 언어가 스스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그는 화자의 입을 통해 나간 말의 의미가 듣는 상대에게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된다고 믿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완전히 도달하지 못한 채 지연되고, 발화되는 순간 이미 다른 의미로 미끄러진다. 이장욱의 작업은 바로 이 어긋남과 지연의 지점에서 언어가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세디먼트(sediment)〉시리즈에서 작가는 포석정의 곡수유상(曲水流觴)에서 착안해, 흐르면서 동시에 쌓이는 언어의 속성을 조형적으로 드러냈었다. 언어는 물처럼 흘러가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침전물처럼 잔여를 남긴다. 배의 형태를 띤 구조물은 이동과 축적을 동시에 품으며, 언어가 시간 속에서 의미와 흔적을 남기는 과정을 물질화한다. 이 작업에서 언어는 고정된 기호가 아니라, 끝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과정으로 존재한다.

  전작 달고나 작업에서 언어는 더욱 급진적으로 해체된다. 참여자들이 선택한 단어는 설탕 위에 찍히고, 곧 깨물려 부서지고 삼켜진다. 단어는 읽히기보다 파괴되고, 의미는 전달되기보다 사라진다. 그러나 바로 이 파괴의 순간, 언어는 데리다(J. Derrida)가 말한 ‘차연(différance)’의 상태에 놓인다. 의미는 결코 완결되지 않으며, 발화와 소멸 사이에서 끊임없이 연기되고 변형된다. 단어를 먹는 행위는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라, 언어가 신체적 사건으로 전환되는 장면이다.


  신작 전시 〈피다〉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장 응축된 방식으로 제시한다. 〈피다〉의 영상은 조형적 변형의 과정을 담아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치 그래픽 이미지처럼 인식되는데, 작가는 ‘꽃이 핀다’는 의미를 지닌 ‘화(華)’라는 글자를 한자, 한글, 히브리어의 문자 형상으로 오려낸 라이스 페이퍼를 끓는 기름에 튀긴다. ‘화(華)’는 이 작업에서 언어가 발화되며 피어나는 순간을 가시화하는 기호로 작동한다. 열과 기름을 통해 라이스 페이퍼는 급격히 부풀어 오르고, 문자로서의 가독성을 잃게 된다. 기호는 더 이상 읽을 수 없지만, 그 의미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의미는 다른 감각적 상태로 이행한다.

  이 튀김이라는 행위는 언어가 기능을 멈추는 특수한 순간을 만든다. 이는 아감벤(G. Agamben)이 말한 ‘비작동성(inoperativity)’의 상태에 가깝다. 언어는 더 이상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로 작동하지 않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기호가 기능을 상실할 때, 언어는 그 본래의 잠재성을 드러낸다. 부풀어 오른 형상은 원본의 파괴이자, 동시에 또 다른 생성이다. 

  작가에게 이 변형의 순간은 의미가 사라지는 지점이 아니라, 오히려 단어의 진심에 가장 가까워지는 찰나다. 의미가 명확히 규정되기 이전, 혹은 이미 어긋난 이후에야 도달할 수 있는 감각적 진실 〈피다〉는 그 불안정한 경계 위에 머문다. 

  이러한 언어의 발화와 변형의 구조는 공간 설치로도 확장된다. 작가는 대나무를 한 줄로 연결해 휘어 감는 설치를 통해, 언어가 직접적으로 발화되지 못하고 우회적으로 표출되는 구조를 공간적으로 드러낸다. 대나무는 작가가 반복적으로 사용해 온 재료로, 대나무 숲에 대고 비밀을 토로하던 옛이야기에서처럼 억눌린 말과 은폐된 발화를 상징한다. 벽과 천장을 따라 이어지는 대나무의 선 위에 매달린 튀겨진 문자들은 기능을 상실한 언어의 흔적이자, 이미 변형된 발화의 결과물이다.

 

  이장욱의 작업은 언어를 해체함으로써 언어의 조건을 드러낸다. 그의 언어는 흘러가고, 쌓이며, 부서지고, 부풀어 오른다. 그 과정 속에서 의미는 고정된 메시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지연되고 변형되는 사건으로 존재한다. 〈피다〉는 언어가 기호로서의 기능을 잠시 내려놓는 순간, 그 잔여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감각의 가능성을 조용히 제시한다.


-황규진 (전시비평)

  Accepted  2025-12-2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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