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동그라미 두 개와 그를 잇는 선을 두 개 긋는다. 동굴, 빨대, 담배 필터, 연필, 레디에이터의 열관, 전기담요의 열 선, 자동차 엔진의 실린더, 영국 가정집 가든의 호스, 이 모든 사물은 동그라미 두 개와 그를 잇는 두 선에서 시작한다. 길고 짧은, 수직이나 수평의 ‘튜브Tube’는 비동시성과 공시성을 지니는 관계망의 단위로 보인다. 김한솔 작가의 개인전 《교차점: Turmoil Tube》는 난기류처럼 진동하고, 낡은 배관의 마감처럼 어긋난 채 명확한 인과성이 없는 듯한 사건의 편린들을 시침질하듯 듬성듬성 꿰어낸다.
작가 김한솔을 ‘동그라미와 선’처럼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옷 그리고 옷을 둘러싼 시류와 문화, 시적 은유와 사회적 진단 까지를 아우르는 모든 것에 몰입한 상태로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에게 옷은 매일을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일상의 알레고리allegory이자 몸과 직접적으로 닿는 레토릭rhetoric이다. 그의 작업은 주로 당위나 핍진성이 결여된 이미지와 사건들을 옷이라는 렌즈를 경유하여 다시 볼 때야 비로소 떠오르는 지점에서 추동한다. 김한솔은 옷과 패션을 엄밀히 구분一옷은 입을 수 있는 모든 사물, 패션은 옷이 만드는 사회적 표현이나 유행一하는 동시에 각 단어가 갖는 통상적인 양식과 기법의 수준에 국한되어 사고하기를 지양한다. 브라이튼에서 공예를, 네덜란드에서 콘텍스츄얼디자인을 배운 후, 다시 영국 런던으로 돌아가 조각을 전공한 작가의 배경에서 미루어 보듯, 그는 실용과 무용, 서사와 서정, 생산과 소비, 변신과 고착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지점에 천착한다. 조각이나 설치로 분류되어 온 김한솔의 작품들은 패션처럼 유동적이고, 옷처럼 구조적이다. 또한, 형태-질료의 개념을 담지한 ‘재단’이나 ‘윤곽’과 같이 형태적, 기능적 경계를 가로 지른다. 일견 그의 작품은 패션의 문법을 차용한 채 미술로 틈입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숭고함’이나 ‘스펙터클’과 같이 미술이 쫓아온 가치를 규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그 모든 의의를 해체한 후 새로운 어떤 것으로 재조립 재구성해 나가는 과정이 그가 선택한 전술tactic이다.
이번 전시에서 김한솔은 다종다양한 튜브를 낱낱이 파헤친 후, 신체와 공간에 걸쳐본다. 튜브는 원통의 모든 것을 아우른다. 〈Electric jacket divider〉(2025)는 전기담요 내부에 은닉된 열선의 궤로를 표면 위로 인양한다. 이때, 직물 속의 얇은 튜브는 기능적 구조물에서 독립된 조형의 곡선으로 변모한다. 드러난 선들은 바깥을 감지하는 신경망이자, 순환이 란 임무를 맡은 장기처럼 공간 속에 놓인다. 이 형태는 〈Electric jacket divider shell〉(2025)로 주조되어 고유의 물질성과 용도를 배반한 채 투명한 껍질로, 전복된 내부의 외피로 진화하거나 격하되어 공간을 부유한다. 마치 어떤 저항을 이용해 발열하는 금속선이 지나간 길을 투과한 엑스레이처럼 외부에서 확인할 수 없는 튜브의 패턴을 시각화한다.
앞선 두 작업이 공중에서 흐른다면 〈Upper/Lower cross stitching cycle〉(2025)은 전시실 지면을 뚫고 사라졌다가 다시 솟아오르는 모종의 움직임, 운동의 리듬을 만든다. 작업을 단면으로 잘라놓으면 마치 하나의 그래프처럼 읽히는데, 요동치는 곡선의 차트는 ‘유행trend’를 은유하는 듯하다. 유행이라는 흐름에 올라탄 아이템은 가파르게 상승하다 이내 열기가 식고, 잊을 만하면 부활하며 공회전을 거듭한다. 결국 소비가 가능한 패션과 미술, 가치와 유행은 따로 떼서 볼 수 없다. 사람들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구축한다.1 현대인의 자아가 소비를 통해 구성된다고
하면 패션은, 나아가 취향을 통해 선별되는 미술은 더욱이 그 핵심일 것이다.2 보여주고자 하는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분해한 재료들을 재봉합하는 과정은 작가가 작품을 설계하는 절차와도 닮았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이 패션(디자인)과 구분되는 이유는 일견 견고하게 합의된 멋을 추격하기보다는 끊임없이 균열과 가하고, 틈새를 파고드는 질문을 생산하고 입체를 만듦으로써 그 질문에 응답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미술 범주 안에서 조각가로 호명하기엔 소략한 패셔너블함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먹고, 입고, 보는 감각의 영역에서 한 시절에 다수가 동의한 공동의 미적 성취, 문화적 응집은 동그라미가 굴러가듯 환원되고, 긴 선처럼 끊임없이 다음의 시류로 이어진다. 《교차점: Turmoil Tube》는 유행이라는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덫이 놓였던 자리를 추적하고, 새로운 장소를 주시한다.
옷의 문법을 탈취한 조각, 유행을 견지하는 미술 사이에서 김한솔은 여러 노선의 환승과 연승 그리고 역행을 거친 후 어디로 도약할까. 그 여정은 팽팽하게 펼쳐진 튜브, 찌그러져 방향을 바꾸는 튜브 속을 통과하는 일처럼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횡단을 지속하는 그가 완수 해야하는 임무는 동그라미와 선처럼 성립된 질서를 지독하게 의심하고, 상호 분리된 유형을 뭉뚱그리는 일임이 틀림없다.
글 이지언 (독립 기획자)
김한솔 Hansol Kim
김한솔은 대한민국 서울에서 출생하여 현재 영국 런던을 거점으로 거주/활동하고 있다. 옷에 관한 끊임없는 애정과 집착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의 주 매개체이자 방아쇠로 작용하는 의복이 사회, 정치 및 문화적 관점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며 어떤 형태적 가능성을 지니는지 연구한다. 그는 옷의 형태를 해체하고 다시 직조의 행위를, 예술 실천의 태도를 가지고, 옷이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고 의태, 변이, 진화 및 기생이라는 자연물의 생존방식을 옷에 적용함으로써 옷에
대한 사변적 접근 및 그 고유의 가치를 탈맥락화시켜 작업을 제작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조형적인 작업은 의류와 물체, 생물 및 미생물의 접점 궤도에 놓이며, 각 물체 및 생물 카테고리의 전형적인 특징들과 경쟁하며 완전히 새로운 범주로 분류될 가능성을 확대해 간다. 김한솔의 작업은 패션, 조각, 리서치를 넘나드는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 옷이라는 매개를 통해 새롭게 재구성된 사회적 풍경을 상상하게 한다.
그는 개인전 Like a Cloth to a Frame (Sothu, 취리히, 2022), Anatomies in Limbo (Het Nieuwe Instituut, 로테르담, 2020) 을 비롯해, Stitch ‘i’ Story (압사라 스튜디오, 런던, 2025), What Things Dream About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4), Tasty Shield (Industra, 브르노, 2024), After Hours (ONE AND J. 갤러리, 서울, 2024)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기획: 김정은
서문: 이지언
그래픽디자인: Gaile Pranckunaite
북디자인: 이건정
진행: 현가비
주최, 주관: 더레퍼런스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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