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향도의 움직임이 점차 무르익을 무렵인 70년대 중순, 프랑스에서는 이에 역행하는 흐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네오-뤼럴리즘(Néo-ruralisme, New-ruralism)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영토성을 기반으로 사람과 그들의 생물사회적(bio-social) 환경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변화를 제안하는 움직임이자, 모종의 사회-경제적 동기보다 다소 철학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동기를 앞세운 채 도시에서 지방으로의 이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행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네오-뤼로(Néo-ruraux), 즉 신(新)-이주민들은 이전까지의 도시생활 양식을 저버리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체화한 감각을 일부 유지한 채, 목가적 환경에 알맞게 응용하여 혼종된 삶의 방식을 택한다.
전시 ≪Burning Bridges≫는 이러한 현대의 신(新)이주 방식으로부터 발견한 「중앙으로부터 벗어나 지역 간 경계를 가로지르고 혼종하기」적 움직임을 조형언어로 체현하는 실천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지역 감수성의 자극과 확장을 제안한다.
어디선가 나고 자란 존재들이 필요에 의해 중심부로 모여들고, 중심부에서 적응한 감각으로 다시금 주변부로 떠나는 퇴행적 확장은 환경과 지역에 대한 감수성을 어느정도 유지하고자 하는 전략이자 타협적인 동선을 그린다. 이 동선 앞에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환경을 선택하고 조성해나가게 되는데, 지역 사이의 다소 허술한 위계 앞에서 주춤하다 결국 어떤이는 중심부로 향하거나, 어떤이는 주변부에 머무르기를 택한다. 도시와 농촌, 중심부와 주변부, 서울과 지방으로 응당 그러하게 나눠온 사실들을 생경하게 참작해보면, 이들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도사리는 듯 하다.
일본의 물리학자 다카기 진자부로는 《녹색평론》에서 ‘환경’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되짚는다.
“ 환경이라는 말은 인간을 싸고 돌아가는 경계입니다. 이를테면 이 말은 영어에서 ‘Environment’라고 하는데 이것도 인간을 둘러싸는 것이라는 뜻이고, 독일어의 ‘Umwelt’도 둘레의 세계라는 뜻이니까 인간이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게 아니라 우주와 전 자연이 있고 그 중의 아주 작은 일부가 인간이라는 뜻이 되어야죠. ” (생명의 자리에서 원자력발전을 생각한다, 녹색평론 통권 제118호, 다카기 진자부로, 김원식 옮김)
다카기의 환경과 인간, 그리고 존재들의 관계를 전복하는 식의 해석은 중심부를 축으로 삼아 답습해온 지역에 대한 수직체계를 거부하고, 평평한 사회로 지역을 감각해야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전시의 제목은 장엄히 불에 타고있는 어느 다리 사진으로부터 노을지는 풍경의 다리를 떠올린 사소한 연상으로부터 근원하고 있다. 관계를 끊어내어 이전 상황이나 관계로 돌아갈 수 없게 한다는 비극적 이미지로서 불타는 다리가 실은 뜨고 지는 태양과 교량이 만들어내는 절묘하고도 낭만적인 노을풍경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린 것인데, 이로서 끊어진 다리 이미지의 농락은 일순간 우리에게 공포와 위기감을, 다시금 온전한 다리로의 직시(直視)는 모종의 해방감을 연이어 선사한다. 이러한 역설적 상상은 엉뚱하게도 두 상황에 급격한 낙차를 만들어내고, 단절에 대한 시점을 전복시킨다.
멀리서 보기에 화마인지 노을인지 분간할 수 없는 불확실한 경계에서 개인차원의 예술을 공적으로 치환하고, 다소 낙관적인 사유로 어디든지 능히 섞여들어감이 바로 불타는 다리 너머로 목격하고자 하는 궁극적 움직임이다.
참여하게 될 5명의 예술가들은 각자 프랑스와 한국을 기점으로 활동중으로 지역의 감수성을 유지한 채, 다만 특정 지역성을 전반에 내세우기보다는 재료와 매체를 통해 각자가 감각해온 지역의 흔적을 미묘하게 표출해내어 각자 잊혀진 공간을 아카이브하고, 먼지쌓인 물건을 담아내고, 아래로부터 추적해나가며, 지역 공동체이자 영토로서의 몸들을 엮어 낸다.
이들은 마치 불타거나 노을을 뒤로하는 다리와 같이 작용하여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얽힌 고향의 파편들을 유기적으로 매개한다. 지방과 주변부라는 개념을 지형적인 정의에 그치지 않고, 보다 감각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역에 대한 관심을 업데이트하는 이들의 실천을 통해 고향의 역사에 대한 (비)물질적인 성과로의 환원을 포착한다. 도시에 박혀버린 축에 의해 단절되고 배제된 채 맴돌던 지역성은 참여작가 개인의 지형도를 조명하며 기존의 제도 중심의 사유를 경계하고 구심점에서 주변부로 퍼져가기를 자처한다. (머피염)
참여작가: 테오 콤발뤼지에(Théo Combaluzier), 고영찬(Youngchan Ko), 플라비 로호(Flavie Loreau), 박유키(Yuki Park), 베르니 포아카네(Bernie Poikāne)
기획: 머피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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