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15세기 이탈리아의 카피톨리노 박물관은 최초로 공공에게 컬렉션을 공개했다. 1471년부터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이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파리 살롱은 최초의 정기 공식 미술 전시로, 1667년부터 1890년대까지 약 224년간 지속되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최초의 국제 미술 전시로, 1895년부터 현재까지 약 129년의 역사가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 가장 오래 지속되어 오고 있는 한 전시가 있다. 바로 영국 왕립예술원의 RA Summer exhibition이다. 1769년에 시작된 이 전시는 올해로 256년째 단 한해도 빠짐없이 런던에서 개최되고 있다.
RA Summer Exhibition 2024, Royal Academy 외관 전경 I ⓒ Ayla J Lim
이 전시는 어떻게 256년간 지속될 수 있었을까?
RA Summer Exhibition 입구 계단, Burlington House 내부 전경 I 사진 ⓒ Ayla J. Lim, 2019
RA Summer Exhibition은 영국 왕립예술원(Royal Academy of Arts)이 매년 여름, 런던 피카딜리의 버링턴 하우스에서 주최하는 전시다. 매해 1,000여 점의 작품이 선정되어 전시되며, 이 전시에 응모하는 작가 수는 무려 16,000명, 출품작은 32,000점에 달한다. 이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 속에는 회화, 조각, 건축, 사진, 영상 등 거의 모든 매체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전시는 왕립예술원 회원(RA)과 그들의 제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열려있다.
누구나 출품할 수 있고, 심사를 거친 신진 작가와 유명 작가의 작품은 같은 벽에 나란히 걸린다. 큐레이션은 매년 한 명의 RA 출신 전시 코디네이터가 맡는다. 그리고, 전시된 모든 작품은 판매가 가능하다. 판매된 수익은 기관의 실질적인 운영에 사용된다. 다시 말해, 이 전시는 전시이자 마켓이며, 공공적이면서도 자립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미술관은 상업적이어서는 안 되는가?
그러나 이 전시는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미술계 일각에서 비판받기도 한다. 전시장에는 벽 하나 가득 수백 점의 작품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촘촘히 걸려 있다. 누군가는 이를 “예술계의 연례 중고품 세일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작품의 품질이 들쭉날쭉하다는 점, 지나치게 많은 판매용 작품이 전시된다는 점은 종종 “이 전시는 예술보다 시장에 더 가깝다”는 식의 논란으로 이어진다.
Banksy, 《Keep Ou》, RA Summer Exhibition 2019 (open submission 작품) I
사진 ⓒ Ayla J Lim, 2019
하지만 필자는 이 지점에서 오히려 질문이 생긴다.
미술관은 정말 상업적이어서는 안 되는가? 작품을 전시하고 동시에 판매하는 것이 예술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인가? 오히려 그 반대로, 작가에게 수익을 제공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며, 기관의 자립을 도모하는 것이 예술 생태계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식은 아닐까?
미술관의 현실과 생존 구조
실제로 오늘날 많은 공공 미술관과 비영리 예술기관, 특히 소규모 사립 미술관들은 재정난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의 지원은 제한적이고, 민간 후원은 불안정하며, 관람 수익만으로는 고정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상업적 수익 모델을 무조건적으로 배제하는 태도는, 현실을 지나치게 이상화한 시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작업에는 시간과 재료, 공간, 체력, 감정 등 수많은 자원이 투입되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작품을 판매하지 못하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다음 작업으로 이어갈 힘을 얻기도 힘들다. 최근 지방의 소규모 미술관 사례를 살펴보며, 작품 판매가 엄격하게 금지된 한국의 구조 속에서 미술관은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일부 국가는 제한적 허용이나 제도 외 운영을 통해 작품 판매가 가능)
예술 활동은 물리적인 생존과 직접 연결된 일은 아니다. 미술품을 일상의 ‘물건처럼’ 구매하기는 여전히 어렵고, 전시를 보러 가는 일도 여전히 특별한 일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대부분의 작가는 생존에 허덕이고, 대부분의 미술관도 버티기 어려운 현실에 놓인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전문성과 헌신에 비해 열악한 처우에 놓이는 경우가 많고, 결국 인력 유지가 어려워지면서 폐관에 이르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런데 왜 예술은 상업적으로 되어서는 안 되는가? 사고팔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예술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현실적 기반조차 비판받아야 하는 건 어떤 모순인가? 예술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 걸까?
RA Summer Exhibition의 운영 모델
RA Summer Exhibition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실천적 모델을 보여준다. 작품을 전시하는 동시에 판매하고, 그 수익으로 기관의 운영을 자립시키는 구조. 판매가 목적이지만, 출품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신진 작가와 저명한 작가의 작품은 한 전시장 안에 나란히 걸린다.
판매와 참여, 전통과 개방, 자립과 공공성 사이에서 이 전시는 상업성과 공공성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256년째 수많은 비판 속에서도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2019년, 이 전시를 처음 보았을 때, 빼곡히 걸린 수많은 작품 사이에서 이상한 균형감을 느꼈다. 어쩌면 이 혼잡한 구조야말로, 우리가 예술의 생존을 허용하는 방식인 것은 아닐까. 기관이 생존하고, 작가도 생존하는 구조. 나는 이것이 우리가 지금 살펴보아야 할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Anselm Kiefer, RA Summer Exhibition 2019 참여 작(Honorary Academician: 영국 외 예술가에게 수여되는 왕립예술원의 명예회원 자격으로 초청) I 사진 ⓒ Ayla J Lim, 2019
공공성과 상업성이 절묘하게 섞인 전시. 게다가 한해도 빠지지 않는 저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200년이 넘도록 한가지 스타일을 고수한다는 것. 영국 미술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기록하며, 정통성과 현대성, 상업성과 공공성, 보수성과 민주성을 균형감 있게 믹스시킨다.
RA Summer Exhibition 2019, 붉은 벽 갤러리 내부 전경 I 사진 ⓒ Ayla J Lim, 2019
RA Summer Exhibition은 256년 동안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어 왔다. 그 힘은 결국, 단단한 철학과 구조적 안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이 오래된 전시에서, 예술이 당차게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식을 본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바꿔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자세일 것이다. 판매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공적 역할을 놓치지 않는 RA Summer Exhibition의 구조는, 오늘날 미술관의 운영 방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판매를 통한 자립과 공공기관의 책임을 동시에 실현하는 모델,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과제이자 배워야 할 방향일지도 모른다.
RA Summer Exhibition 2019,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이 빼곡히 전시된 전시장 벽면
I 사진 ⓒ Ayla J Lim, 2019
미술관의 상업성 문제는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투명하게 설계하고 균형 있게 실현하느냐”의 문제다. 공공기관으로서의 사명을 유지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운영을 가능하게 하려면, 윤리적 가이드라인과 제도적 투명성이 함께 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관의 상업적 활동은 예술가와 기관 모두의 생존을 지지하고, 문화 생태계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구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RA Summer Exhibition 2024, 중앙 홀(The Wohl Central Hall) 전경
I 사진 ⓒ Ayla J Lim, 2024